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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망 Sep 05. 2022

아직도, 아직도 사람에 적응 중입니다

2022년 9월 5일의 기록

2021.7.15 / 제주도 / sony a7r2 / sony 55mm f1.8


처서가 지나자 한 여름의 더위는 거짓말 같이 자취를 감추었다. 열대야에 뒤척이던 나날을 보내다 하루아침에 얇은 이불을 끌어안게 된다. '이제 선풍기를 씻어 넣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계절은 하루아침에 변했고 변한 계절에 잘 적응해가고 있다.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이토록 자연스러운데 새로운 직장 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왜 이토록 어려운 건지.




새로운 부서에서 근무를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8년간의 직장생활 동안 이곳저곳 부서를 많이 옮겨 다녔고 그만큼 다양한 업무를 했다. 인사이동을 많이 겪은 만큼 다양한 성격의 사람을 많이 겪었고 나름 잘 적응하며 지냈었다. 한 달 전 새로운 부서에서 한 사람을 만나기 전 까지는. 꾸역꾸역 잘 해왔다고 생각한 내 앞에 세상이 '응 아니야'하며 커다란 벽을 가져다 놓은 기분. 한 사람이 나의 직장 생활과 일상생활을 좀먹고 있다.


신입시절부터 느꼈던 우리 회사 업무의 장점은 직급과 직위와는 별개로 업무가 독립적이라는 점이었다. 내가 업무를 주도해 처리하고 규정에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나의 의견과 판단이 존중받는 조직문화가 좋았다. 하지만 그 한 사람은 우리가 가지는 그 조직문화의 장점들이 아니꼬왔나 보다.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이라 업무를 느리게 처리하지도 않는다. 참 이런 말을 스스로 하기 부끄럽지만 주변에서 '좀 쉬엄쉬엄 해'라며 앞만 보고 업무처리를 하는 나를 조금 안쓰럽게 보는 편이다. 그런 나에게도 그 사람은 업무를 부여할 때마다 불가능한 데드라인을 정해준다. 본인이 부여한 업무만 처리한다면 어찌어찌 처리할 수는 있겠지만 나는 그 사람이 지시한 업무 말고도 쌓인 업무가 산더미이다. 순간 욱한 나머지 합당한 이유를 들어 그때까지 처리할 수 없다고 말하면 갑자기 분위기는 군대 훈련소가 된다. 본인의 의견에 반하는 의견을 표출하면 반쯤 돌아버린 눈을 마주하게 된다. 30대 중반이 되었지만 여전히 상사의 저런 눈은 참 무섭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 눈을 피하기 위해 무리해서라도 업무처리를 하게 된다. 당연히 업무 스케줄은 꼬이게 되고 그것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어쩌다 본인이 주도한 전체 회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직원이 생기면 쌍욕을 주절거린다. '일주일 전에 고지를 했으면 개인 사정이 생기더라도 무조건 참석해야지 이.. XX'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자녀를 키우다 보면, 그리고 자녀를 양육하지 않는 미혼 직원들이라도 각자의 사정이 있는 것인데. 속으로 '군대에서도 저렇게 강압적이지는 않았는데..' 나도 주절거렸다.


본인이 생각하는 업무 처리 방식이 회사 규정에 반하는 것이라도 본인이 우기는 방식으로 처리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듯하다. 새로운 부서에 발령받자마자 이 문제 때문에 갈등이 생겼더랬다. 끝까지 본인이 맞다고 우기는 바람에 5분으로 끝날 업무 처리가 본점에 질의 후 당연한 답변을 받느라 2시간으로 늘어났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본인이 지시한 업무 외에도 참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참 열거하기 민망한 에피소드들이 많다. 나이가 들수록 지성과 인격이 무르익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이번 인사발령으로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다행히 유독 나에게만 그런 것은 아니다. 덕분에 이 사람의 횡포에 당한 직원들이 똘똘 뭉쳐 이런저런 푸념을 해 보지만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귀를 약간이라도 열어 놓은 사람이라면 용기 내어 이것이 잘못된 것 같다, 의견을 전달할 수도 있을 텐데 이 사람은 귀  없이 입으로만 생활하는 사람이다.


직장생활 8년 차에 참 극복하기 쉽지 않은 사람을 만나 함께 근무하고 있다. 시련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고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 경로가 결정된다고 한다. 분명 이 시련도 1년, 아니 2년 뒤에는 웃으며 말할 수 있는 한낱 가벼운 에피소드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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