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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망 Jan 29. 2023

남편의 시선으로 본 첫 아이와의 만남  

2023년 1월 27일의 기록

2023년 1월 27일, 오늘은 10달 동안 기다리던 깡순이를 만나는 날이다. 새벽녘에 잠이 들었고 의외로 깊은 잠을 잤다. 나는 깨자마자 구일이가 잠을 푹 잤는지 물었고, 말똥말똥한 목소리로 웃으며 '아니'라고 했다. 설렘과 기대로 을 지새웠던 구일이가 안쓰러웠지만 그때의 나도 긴장감에 압도되어 구일이를 잘 케어하지 못했다.


오전 5시 50분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조금의 여유를 부리다 7시까지 나갈 준비를 마쳤다. 장모님 장인어른이 집에 도착했고 미리 싸놓은 짐을 들고 집을 나섰다. 장인어른 차에 짐을 모두 싣고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조금 긴장했던 탓에 평소보다 말을 아끼던 나에게 장모님은 내가 더 긴장한 것 같다며 웃었다. 내가 가진 긴장감이 구일이의 긴장으로 전파되지 않도록 급하게 부정하며 말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병원에 도착해 입원 수속을 마치고 병원 1층에서 장모님 장인어른과 인사를 했다. 인어른의 잘하고 오라는 담백한 격려와 장모님의 걱정 어린 눈물이 잠시 뒤섞였고 우리는 애써 웃는 얼굴을 보이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수술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듣고 입원할 1인실의 청소가 끝나길 기다리며 4인실에서 잠깐 대기했다. 일사천리로 관장과 제모를 하고 소변줄을 꽂았다. 아기를 출산하는 것 또한 생소한 일이지만, 아기를 출산하기 위해 미리 해야 할 것들 또한 참 민망하고 생소한 것들이 많다.


12시 제왕절개를 위해 11시 30분에 수술실에 내려갔다. 척추마취를 할 때까지는 구일이와 동행을 할 줄 알았것만. 갑자기 수술실 앞에서 남편은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급하게 구일이와 수술 전 마지막 인사를 했고 아쉬운 마음에 수술실로 가는 문을 통과할 때마다 눈을 마주치며 손을 흔들었다.


구일이가 급하게 들어가고 난 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의 초조한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 로비에 설치된 TV에서 아침 막장 드라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겁 많은 구일이가 깡순이를 낳아 보겠다며 홀로 수술실에서 고군분투해야 한다는 사실이 뭔가 서글펐다. 나라도 옆에서 구일이의 손을 잡아 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내지 말라고, 아프지 않게 깡순이가 잘 태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수술실에 남편출입을 못하게 막아 놓았는지,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10분, 20분, 그리고 30분이 흘렀고, 시간은 너무 더디게 흘러갔다. 누군가 시간의 발목에 밧줄을 묶어놓은 것 같았다. 수술 예정시각이었던 12시 정각에 담당 의사 선생님이 수술실 앞에 있는 나에게 인사를 했다. 너무 초조해하지 말고 마음 편히 기다리라는 응원의 말과 함께 홀연히 수술실로 들어갔다. 위로의 말씀으로도 마음을 다스린다는 게 쉽지 않았다. 렇게 위로를 한 귀로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의사 선생님이 술실로 들어간 뒤 시간은 더욱 더디게 흘러갔다. '제왕절개 후기를 읽어보면 수술 시작 후 2,3분 뒤면 아기가 나온다던데, 왜 이렇게 소식이 없지?' 수술실 바로 앞에 있는 소파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마취과 선생님, 레지던트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들이 수술실을 들락날락할 때마다 가슴이 찌릿찌릿했다.


그러던 중, 수술실 저 너머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깡순이 울음소리다. 깡순이가 태어난 수술실과 내가 서 있는 대기실 사이 여러 겹의 문들을 다 뚫어버리는 큰 울음소리.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딱히 무언가를 걱정한 것도 아니었지만 막연한 걱정이 사라지며 눈물이 또 한 번 핑 돌았다. '저렇게 큰 울음소리를 가진 아이가 구일이와 나의 사랑을 받고 자랄 아이구나'하는 실감이 났다. 갑자기 책임감, 그리고 더욱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내야겠다는 의지가 솟아났다.


울음소리가 수술실 너머에서 3,4분가량 지속되었다. 울음소리를 들으며 구일이를 걱정했다. 수술 때 무섭지는 않았을지, 척추마취의 답답함은 잘 견뎌냈는지, 우량아일 깡순이가 엄마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 얌전히 잘 나왔을지, 걱정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수술실을 걸어 나오는 선생님에게 구일이의 상태를 물어봤고, 지금 수술이 잘 끝났고 후속처치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조금 안심했다. 나중에 구일이가 마취에서 깨어나면 너무너무 고생했다고 꼭 말해줘야지, 다짐했다.


그리곤 약 5분 뒤, 플라스틱 투명 케이스 안에서 자고 있는 깡순이가 미끄러지듯 대기실로 왔다. 10달 동안 구일이의 자궁 속에서 귀여운 발차기로 우리와 소통했던 깡순이. 깡순이가 나오기 전 머릿속으로 깡순이에게 해줄 말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빠가 자녀에게 건네는 첫 덕담이니 만큼 의미 있는 말을 전달하고 싶었다. '건강하게 세상에 나온 것을 축하해 깡순아'라는 말을 머릿속으로 50번은 넘게 되뇌며 연습했다. 하지만 깡순이를 보는 순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내가 생전 내보지도 않았던 이상한 추임새와 함께 감탄만 연발했다. 3.94kg에 54cm가 넘는 우량아였고, 깡순이는 생각보다 더더 귀여웠다.


병실에서 구일이는 마취도 덜 깬 채 나와 함께 열심히 깡순이와의 첫 만남을 복기했다. 재잘재잘 깡순이와의 첫 만남이 어땠는지를 말하는 구일이의 모습을 보고 조금 남아있던 긴장도 봄 햇살에 눈 녹듯 사라졌다. 다가올 제왕절개의 후불 고통은 아직 구일이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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