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망 Feb 04. 2023

남편이 쓴 제왕절개 후기

2023년 2월 2일의 기록


2023년 1월 27일(제왕절개 1일 차)

제왕절개를 마친 구일이가 병실로 왔다. 구일이의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느린 것을 보니 아직 수면마취에 약간 취한 듯했다. 병실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의 출산 축하 메시지로 구일이의 폰이 연신 울려댔다. 전화는 내가 대신 받아 구일이에게 축하의 말을 전해주었고, 축하 메시지에는 구일이가 느리게라도 직접 답장했다.


카톡을 조금 하다 보니 마취가 서서히 풀려가는 게 느껴졌다. 마취가 풀리며 수술부위에 복통을 느끼는 것 같아 간호사실에 전화해 엉덩이 무통주사를 요청했다. 구일이의 몸은 다행히 무통주사를 잘 받아들였다. 무통 주사를 맞은 지 30분이 되자 다시 조금 안정을 찾았다. 그 이후 이따금 찾아오는 고통에 페인버스터와 무통 링거를 스스로 주입하며 대응했다. 저녁 즈음에는 효과 좋은 무통주사를 또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제왕절개를 하고 난 뒤 12시간 동안은 물을 마실 수 없다. 3,4시간 잘 버티던 구일이는 5시간이 넘어가자 극도의 갈증을 호소했고 미리 준비했던 손수건에 물을 적셔 구일이의 입에 가져다 댔다. 그것으로도 갈증과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을 때는 시원한 생수로 가글을 했다. 물론 몸을 일으킬 수 없어 누운 채로 구부러진 빨대로 물을 빨아들였고, 조금 입에 머금은 뒤 다시 빨대로 뱉어내기를 반복했다.

 

수술 2시간 정도 뒤 마취가 풀리며 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된 구일이는 빠른 회복을 위해 다리를 양 옆으로 움직이거나 무릎을 들어 올리는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첫날에 그런 움직임은 무리라며 말렸지만 구일이는 말을 듣지 않았다. 다음날 바로 깡순이를 직접 보러 가기 위해 빨리 회복해야 한다며. 평소 아픔에 대한 두려움이 누구보다 많은 구일이이기에 그런 모습이 참 낯설었다. 모성애는 정말 위대하다.


제왕절개 첫날은 수술의 고통과 의료기술의 발전에 따른 무통주사의 효과가 극심하게 대립하는 듯했다. 조금만 방심하면 극심한 수술의 고통이 찾아왔다가도 무통주사와 무통링거에 조금 고통이 누그러짐의 반복.

 

침대에 누워 애써 웃어 보이는 구일이가 참 안쓰러웠다. 수 없이 읽고 보았던 제왕절개 1일 차 후기보다는 잘 견뎌냈다며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하는 구일이가 참 어른스러웠다.


2023년 1월 28일(제왕절개 2일 차)

구일이는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고 했다. 새벽 1시에 드디어 물을 마실 수 있었지만 24시간 수분을 섭취하지 못한 갈증은 물 한 모금에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갈증과 수술의 고통, 약기운과 병원 침대의 불편함, 깡순이를 보기 위해 빨리 회복해야 한다는 강박이 뒤섞인 감정으로 구일이는 병원 건물 안 누구보다 긴 밤을 보냈다.

 

아침 7시에 혈압과 체온을 체크한 뒤 구일이는 본격적으로 앉고 서는 연습을 했다. 1시간의 연습 끝에 구일이는 나의 부축을 받고 두 발을 딛고 설 수 있었다. 물론 배가 찢어질 듯한 고통과 함께. 구일이가 서 있는 모습을 본 간호사는 놀라며 '어머, 벌써 섰어요?'라며 감탄했다. 나도 속으로 감탄을 했지만 표현하지는 않았다. 어제 마취가 풀리자마자 열심히 다리운동을 할 때부터 '오늘 구일이의 회복이 빠르겠구나'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선 채로 양치와 고양이 세수도 했다. 깡순이를 처음 만나는 만큼 이뻐 보여야 한다며. 깡순이가 크면 엄마가 이렇게 깡순이와의 첫 만남을 설레어했다는 것을 꼭 말해줘야지 생각했다.


깡순이 면회를 함께 가는 길이 참 길었다. 병실은 5층에, 신생아실은 3층에 있어 엘리베이터만 타면 금방이지만 이제 막 서기 시작한 구일이에게는 참 기나긴 여정일 수밖에 없었다. 면회시간 전 무통주사를 맞고 무통 빨(?)을 충전한 구일이는 씩씩하게 한걸음 한걸음 내디뎠다. 팔과 복부에 여러 약물을 달고.


깡순이를 처음 제대로 본 구일이는 연신 감탄을 했다. 나는 사진을, 구일이는 영상을 맡았다. 사진 찍으랴 영상 촬영하랴 깡순이와 눈인사하랴, 직장에서만 하던 멀티태스킹을 열심히 했다. 그렇게 2분이 훌쩍 지나가고 깡순이를 보기 위해 8시간을 더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구일이가 겪는 제왕절개 둘째 날은 첫째 날보다는 조금 더 수월해 보였다. 여전히 무통 주사와 무통 링거에 의지한 채 시간을 보냈지만 더러 넷플릭스와 유튜브도 보며 웃곤 했다. 물론 소리 내어 웃거나 하면 배가 찢어질 듯 아팠기에 눈으로만 슬쩍슬쩍 웃어가며.


2023년 1월 29일(제왕절개 3일 차)

구일이의 컨디션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젖몸살이 오기 전까지는. 무통 주사는 한 번이면 충분했다. 혼자 걸어서 양치와 세수도 하고 시간은 좀 걸렸지만 혼자 누웠다 일어나는 것도 가능했다. 첫째 날 열심히 운동한 덕분인 것 같았다. 회복이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고, 구일이의 입에서 '제왕절개 할 만하네'라는 말까지 나왔다.


오후 4시경 수유 교육을 다녀오더니 유축기와 젖병, 젖병 깔때기를 가져왔다. 오늘 오후 9시부터 유축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유 먹이는 것에 대한 강박이 없어 미리 유축과 젖몸살에 대해 찾아보지 않았던 우리는 또 다른 고통이 우릴 찾아올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2023년 1월 30일(제왕절개 4일 차)

유축을 하자 젖몸살이 심하게 찾아왔다. 바로 병원에서 받을 수 있는 젖몸살 예방 마사지를 받았지만 마사지 효과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아플 운명이었던 것인지, 구일이의 젖몸살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동안 술의 고통은 잘 참아왔던 구일이었는데 젖몸살의 고통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이 고통이 언제 사라지는지 알 수 없다는 막연함이 구일이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 같다.


젖몸살을 하는 구일이와 새벽까지 이야기를 했다. 대화로써 구일이의 고통을 조금 나눠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아지기를 바랐다.


2023년 1월 31일 이후

젖몸살을 앓던 구일이는 제왕절개 6일 차부터 차츰 나아지더니 제왕절개 8일 차인 오늘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럽게 깡순이에게 초유를 먹이는 중이다. 제왕절개 7일 차 되던 날 수술부위의 실밥을 풀고 시카밴드를 붙였다. 조리원 입소를 한 뒤 깡순이를 언제든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한 마음도 가지게 되었다.


조리원 입소 2일 차에 1시간의 모자동실 시간을 가지며 깡순이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불편함, 기쁨, 짜증, 배고픔, 시원함, 피곤함 등을 표현하는 깡순이의 조막만 한 얼굴을 보며 웃고 걱정하고 안절부절못했다.

 

구일이는 조리원 입소 후 제왕절개 상처 때문에 하지 못했던 샤워를 했다. 아직 완벽하게 몸을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몸도 마음도 점점 회복하는 중이다. 멀쩡히 샤워를 하고 나오는 구일이를 보며 생각보다 더 아무렇지 않게 출산을 하고 씩씩하게 모든 과정을 이겨내고 있는 것 같아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깡순이가 우리 집에 오는 날부터 또 다른 일상을 보내게 되겠지만, 걱정보다는 기대감이 앞선다. 힘들어하다가도 깡순이 웃음 한 번에 힘듦을 꾹 참고 버티는 그런 미련한 아빠가 될 것만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의 시선으로 본 첫 아이와의 만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