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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망 Apr 21. 2023

연차와 자만심이 비례해서는 안된다.

2023년 4월 20일의 기록

집 앞 카페 / 2023.4.20 / sony a7r2 / sony 28mmf2.0

직장인 9년차가 되면서 업무시간의 대부분을 익숙한 업무 처리에  있는 듯 하다. 그러다보니 반복되는 업무에 대한 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예전에는 조금이라도 헷갈리는 업무처리를 할 때면 규정을 보며 꼼꼼하게 처리했다면 요즘은 생각없이 습관적으로 처리하곤 한다. '예전에 이 규정을 봤었었지'하며 확신이 부재된 가정과 상상을 기반으로. 물론 9년간의 경험이 헛되지 않았기에 대부분의 업무 처리는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 있지만 가끔씩 삐걱대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이 참기가 힘들다. 꼼꼼하게 업무처리를 했을 때 실수한 것과 생각없이 업무처리를 했을 때 실수했을 때의 기분은 분명 다르다. 후자의 경우 내가 한심해서 견딜 수 없다.


시완이가 태어나고 육아와 일을 병행하다 보니 24시간 쉼 없이 나의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도 사람이었던지 드디어 직장에서의 슬럼프가 찾아 온 것 같다. 야근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정규 업무시간에 강도 높은 업무를 처리할 수 밖에 없고 만의 전투를 벌인지 벌3개월째다. 고갈될 에너지조차 남아 있지 않은 기분이다. 업무시간에 집중이 잘 되지 않고 자연스레 잔실수가 나오게 된다. 나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업무처리를 하는 것이 어려워져 근무 만족도도 떨어지고 성취감을 느끼기도 힘들다. 




평소에는 참 징하다 싶을 정도로 꼼꼼하게 업무처리를 하곤 했다. 같은 규정을 두 번 세 번 찾아보고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심사서 승인을 올릴 때면 오탈자가 없는지 내가 작성한 의견을 보고 또 봤다. 나 스스로도 조금 심하다, 생각했던 업무 습관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업력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레 익숙한 업무들이 많아져서일수도 있겠지만 분명 그럴 만한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은 것 또한 원인이 된 듯 하다.

 

오늘은 내가 4월 초에 올린 심사서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 전화로 심사서의 오탈자와 규정상 틀린 부분을 말씀해주시는데 쥐구멍으로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심사시 어렵거나 까다로웠던 부분을 틀렸다면 나 스스로도 이해하고 죄송하다는 한마디와 함께 얼른 심사서를 수정해 전송했을 것이다. 피드백을 받은 부분은 참으로 자잘한 부분들이었고, 피드백을 들으며 '내가 저때 무슨생각을 하며 심사서를 작성했을까'라며 자책하게 되었다. 그만큼 참 한심한 오류들이었다.

 

더 심각한 것은 그 다음 부분이었다. 분명 예전의 나였다면 수정을 한 뒤 심사서를 출력해서 내가 입력한 수정사항이 정확하게 반영이 되었는지 확인을 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수정을 요청하셨던 부분을 수정하고 난 뒤 pdf파일로 변환하고 그냥 그 파일을 첨부해 메일로 보내버렸다. 급한일도 아니었지만 누군가 나를 떠미는 듯이. 분명 나답지 않았지만 나의 심사서를 더 볼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다. 갑자기 귀차니즘이 어디서 발동했는지 알 수 없다. 예전의 지독하게 꼼꼼했던 내가 아니었다.


지금은 메일을 보내고 급하게 퇴근하는 기차 안이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어 내일 오전에 출근하게 되면 심사서를 뽑아 다시 한 번 읽어보며 최종적으로 완벽한 심사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조금은 수고롭더라도, 나 다움을 지키는 것이 나의 정신건강에 좋다. 내가 쏟을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나답지 않은 업무처리를 하다 보면 진짜 그 모습이 나의 모습을 굳어지게 된다. 그나 스스로가 싫어지는 악순환에 올라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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