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un Nov 16. 2024

더 나은 환경을 디자인하는 공간, 원써드 ②

지역성, 친환경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향한 디자이너의 고민이 담긴 곳

서울의 황학동. 이곳은 ‘황학동 = 주방 가구 거리’라는 인식이 가장 먼저 떠오를 만큼 40여 년 세월을 품은 서울의 대표적인 상권이다. 중고 가구가 높이 쌓인 미로 같은 황학동 거리를 지나다 보면 골목 한쪽에 이번에 소개하는 그 가게 원써드가 나타난다. 원써드는 지역성, 친환경 그리고 지속가능성에 박선영 디자이너의 고민과 실험이 가득 드러나는 공간이다. 특히, 제조업에서 배출하는 탄소가 전체 탄소 배출량의 1/3을 차지한다는 것에 큰 문제의식을 느낀 박선영 대표는 불필요한 소비와 생산을 줄일 것을 제안한다. 디자이너로서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원써드를 채우는 모든 집기는 공간 반경 800m 이내 주방 가구 거리에서 공수한 중고 물품이며, 발품을 팔아 선별한 중고 가구와 소품들을 업사이클 디자인해 전시하고 판매한다. 이 외에도 환경에 해를 덜 끼치는 소비문화를 만들고자 전시와 커뮤니티 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카페라는 공간의 본질에도 충실해 시그니처 메뉴를 개발하고 근사한 음료 맛을 선보이기 위해 열정을 쏟는다. 이렇듯 원써드를 통해 펼치는 활동 하나하나에 진정성을 가지고 나아가는 박선영 디자이너를 만나 그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1편에서 이어집니다.


내부 전경 | ©Kunhee Lee

— 최근 지속가능성, 제로웨이스트 등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이를 디자인에 반영하는 디자이너와 기업도 늘어나고 있지만 이는 여전히 일부에 불과하죠. 반면에  디자이너님은 제가 본 어떤 디자이너보다 환경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멋지고 글래머러스한 디자인이 아닌, 환경에 대한 이야기부터 제게 꺼냈죠. 디자이너로서 어떤 계기로 이렇게 깊이 환경에 대해 생각하게 됐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네요. 

새롭게 디자인한 제품을 판매하는 것도 디자이너로서 정말 뿌듯한 일이죠. 판매라는 두 글자 안에도 무수히 많은 이들의 노력과 시간이 담겨 있거든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 한 번의 소비로 끝나는 것보다는 소비자들이 집에 돌아간 이후의 삶에도 지속해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게 더 보람 있는 일로 느껴졌어요. 지금 하는 일이 제겐 그런 것이었죠. 그리고 환경에 대한 고민은 제가 어려서부터 친환경 사업을 하는 아버지에게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아버지는 환경에 대해 늘 이야기하셨고, 언제나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제 삶에서 환경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 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원써드를 브랜딩했죠. 손님들이 원써드의 중고 제품, 업사이클링 제품을 구매하셔서 종종 SNS에 좋은 리뷰를 남겨 주시는데요. 그런 피드백도 제게 큰 동기 부여가 돼요. 

메이커톤 프로젝트 | ©중구문화재단

— 원써드에서는 환경을 생각하는 다양한 커뮤니티 프로그램도 기획한다고 들었어요.

대표적으로 서울문화재단, 중구문화재단과 함께한 메이커톤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싶어요. 메이커톤은 메이크와 마라톤의 합성어인데요. 아티스트들이 마라톤처럼 계속해서 창작을 이어 나감을 의미해요. 구체적으로 8명의 아티스트와 황학동을 돌아다니며 아이템을 발굴했어요. 아티스트들은 우리가 찾은 물건에 드로잉이나 조각 등 각자의 색을 입혀 업사이클 디자인을 했죠. 이렇게 재탄생한 황학동의 물건들을 원써드에서 전시했고요. 이 외에도 아르코 미술관과 중고 그릇들을 업사이클 디자인해서 미술관 내 아트숍에 납품하기도 했어요. 앞으로도 환경을 주제로 다양한 아티스트와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에요. 

원써드 앞에서 머무시는 어르신 | ©one-third
원써드 내부 공사를 도와주시는 이웃 상인분 | ©one-third

— 황학동 주방 가구 거리는 40여 년 역사를 가진 오래된 상권이죠. 수년째 이 거리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분들이 원써드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가요?

저는 지속가능성이 환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제게 지속가능성이란 지역과 상생하며 나아가는 것 또한 포함하죠. 그런 의미에서 가게 이웃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원써드 입구 앞에는 벤치가 있는데요. 주변 어르신들은 거리를 지나다 특별한 이유 없이 저 의자에 앉아 숨을 돌리고 가시죠. 짐이 많으신 분들은 저기 앉아 정리도 하시고. 저는 그런 풍경이 참 좋아요.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자리. 우려와 다르게 이웃 사장님들도 저를 좋게 봐주셔서 가게 공사도 모두 함께 도와주셨어요. 옆 가게 사장님께서는 원써드의 모든 용접 작업을 맡아 주셨고, 바로 앞 주방 가구 가게 사장님께서는 가구 설치를 도우셨죠. 서울에 이런 곳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정이 넘치는 분들이세요. 지나가다 종종 이유 없이 아이스크림 하나 사다 주시기도 하고요. (웃음) 아무래도 오래된 상권이라 그런 것 같아요.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저는 또 지역 상인분들과 지속해서 어떻게 상생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어요. 

황학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테인리스 그릇으로 만든 트레이 | ©one-third

— 와이뉴Why new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해주신다면요?

원써드가 하나의 대주제라면 와이뉴는 그 안에서 펼쳐질 크고 작은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의미해요. 대표적으로 황학동에서 찾은 중고 상품들에 원써드만의 메시지를 입혀 판매하고 있어요. 이건 제가 처음 만든 애증의 소품 트레이에요. 황학동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소재인 스테인리스를 활용해 바로 옆 금속 제작소에서 용접해서 만들었어요. 그리고 트레이에 1/3만 채색해서 브랜드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했죠.

원써드 시그니처 삼분의 일 커피 | ©one-third

— 카페 메뉴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계시죠. 대표 메뉴를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원써드의 시그니처 메뉴는 삼분의 일 커피, 골동커피, 황학동커피 총 세가지가 있는데 가장 인기 많고 추천드리고 싶은 메뉴는 삼분의 일 커피에요. 다분히 저의 할매입맛 취향을 녹여 만들었는데, 볶은 율무 베이스의 고소한 크림을 올려 완성했어요. 어디에도 없던 시그니처를 만들고 싶어 크림에 넣을 재료들을 참 많이도 연구했죠. 이 크림이 전체의 삼분의 일을 차지해서 붙인 이름이기도 해요. 첫 입에 씁쓸한 에스프레소가 먼저 입에 닿은 후에 고소하고 묵직한 크림 맛이 느껴지죠. 마지막엔 깔끔한 우유 맛이 나요. 단계마다 차례로 입에 들어오는 맛이 재미있고 또 생각나는 커피랍니다. 삼분의 일 커피는 섞으면 이 맛을 느끼기 어려운데요. 몇몇 손님들께서 커피에 빨대를 꽂아 섞어버리면 마음이 아프기까지 해요. (웃음)

내부 전경 | ©Kunhee Lee

— 공간을 찾는 분들이 원써드를 어떻게 기억하길 바라세요? 

제가 원써드를 준비하며 노트에 적은 바람들이 있어요. 계속해서 재밌는 일과 변화가 일어나는 곳. 그리고 다녀오면 기분 좋은 여운이 남는 곳.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 마지막으로 밀린 일들이 마무리되는 공간이길 바라요.

와이뉴 프로젝트 | ©one-third

— 원써드의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요? 

오픈 후 첫 1년 동안은 일방적으로 저희의 가치와 방향성을 보여주고 알리는 데 집중했어요. 두 번째 해에는 우리의 가치에 공감하는 더 많은 사람, 아티스트와 함께 콜라보레이션, 전시 그리고 살롱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에요.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와이뉴 프로젝트를 통해 선보이는 제품들을 온라인에서도 판매하려고 해요. 이제 막 숍와이뉴 인스타그램을 만들어서 소개하기 시작했죠. 황학동 거리 사진에 제 낙서를 추가해 콘셉트를 잡았어요. 많은 응원 부탁드릴게요! 


원써드

주소 | 서울 중구 마장로15길 16

운영 시간 | 11:00~21:00(월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더 나은 환경을 디자인하는 공간, 원써드 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