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의 마지막 테넌트가 되더라도...
태오양 스튜디오(대표 양태오)가 선보이는 향 브랜드가 세운상가에 론칭했다. 전자기기 매장들이 미로처럼 얽히고 섥힌 곳에 자리한 시낭은 주변 상점들과 통일된 형태의 외관으로 자연스레 존재한다. 하지만 시낭 내부는 지구로 떨어진 운석의 파편처럼 낯설고 이질적이다. 한편 쇼룸을 가득 채운 향은 기존의 조향사가 아닌 웹을 통해 향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향이라는 감각적 매개체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담론을 제시하는 시낭. 브랜드를 기획한 양태오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전한다.
1편에서 이어집니다.
_ 수많은 제품 카테고리 중 향에 주목한 이유는요?
저는 공간을 만드는 사람인데요. 완벽하고 깊이 있는 공간이 되려면 보이지 않는 것들의 장식이 필요해요. 음악, 조도, 향과 같은 오감을 만족시키는 요소는 공간에 특별한 감성을 부여하죠. 그래서 늘 보이지 않지만, 꼭 필요한 것들에 대해 탐구해 왔어요. 미래, 디자인, 그리고 공간을 채우는 요소에 대한 제 생각과 고민이 모두 모여 결국 향에 집중한 브랜드가 탄생한 거죠.
_ 이번에는 장소에 관해 이야기를 해볼게요. 보는 왜 세운상가를 자신의 공간으로 선택했을까요?
제가 본 세운상가는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품고 있는 곳이에요. 옛 건물임에도 직접 가서 살펴보면 상당히 미래적이에요. 힙하고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묘한 특징을 지니고 있죠.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세운상가는 그래서 찾기도 쉬워요. 하지만 막상 내부로 들어가면 굉장히 미로 같은 형태가 나타나죠. 이렇듯 세운상가는 상반된 개념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서울의 몇 안되는 미스테리한 공간 중 하나라고 생각해 왔어요. 그래서 여기에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마음을 늘 갖고 있었고요. 한편 을지로라는 지역은 지금도 급변하고 있는데요. 세운상가는 그 변화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서 있죠.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 거예요. 그 때문에 제가 소설을 구상할 때도 주인공 보가 숨어 사는 공간은 이곳 세운상가일 수밖에 없었죠.
_ 시낭에서 선보이는 다섯 가지 향 중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는 인공 자연Artificial Nature과 인권 문제를 논하는 브이루빈V.Rubin이라는 향을 소개하고 싶어요. 베라 루빈Vera Rubin은 천문학자로서 우주 연구에 관한 지대한 업적을 세웠는데요. 우주 물질 중 ¼를 차지하고 있는 암흑 물질의 존재를 입증한 장본인이죠. 우주를 공부하면 베라 루빈의 연구와 발견을 피해 갈 수 없어요. 그가 천문학자들에게 미친 영향은 실로 엄청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차별을 받았어요. 노벨 물리학상 후보로도 올랐지만, 여성이기에 결국 수상하지 못했죠. 브이루빈은 암흑 물질의 존재 여부를 떠나 순수한 열정으로 아름다웠던 베라 루빈에게 헌정하는 향수예요. 또한 브이루빈을 통해 우리들의 의식에 대해 논하고자 했죠. 말씀드린 인공자연과 브이루빈은 향과 그 안의 이야기를 통해 환경과 인권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브랜드로서 시낭의 중요한 특징이 드러나는 향이에요.
_ 시낭은 어떤 브랜드로 기억되기를 바라세요?
단순히 아름다운 향에 치중하는 브랜드가 아닌 의식과 감성을 전달하는 향 브랜드로서 기억되고 싶어요. 시낭을 통해 의미 있는 미래를 찾아가길 바라죠.
_ 디자이너님은 국내외 다양한 디자인 프로젝트 외에도 브랜드 이스라이브러리, 이스턴에디션, 그리고 시낭까지 운영하고 있죠. 이렇게 많은 프로젝트를 전개하는 원동력 혹은 영감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저는 단지 디자이너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해요. 제 눈 앞에 어떠한 문제 혹은 고민거리가 생기면 이것을 빨리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며 토론하고 이야기하려 해요.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뒷전으로 숨기기보단, 이를 직시하고 디자인으로 공유하는 과정에서 원동력을 얻는거죠. 이스라이브러리와 이스턴에디션으로 예를 들게요. 한방은 우리나라 학문의 한 분야죠. 한방을 구시대의 산물로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문제의식을 담아 이를 동시대적으로 표현한 브랜드가 이스라이브러리예요. 이스턴에디션 역시 한국의 미학 중 조선시대 후기 미학을 더욱더 알리기 위해 시작한 브랜드고요. 이처럼 저는 제가 마주한 문제의식을 어떻게 브랜드로 표현할 수 있을지 끊임 없이 질문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공유하며 영감과 원동력을 얻고 있어요.
시낭
주소 |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159, 가동 4층 바열 440호
운영 시간 | 오전 10시 - 오후 7시 (일, 월 휴무)
문의 | contact@the-sinang.com
홈페이지 | https://the-sin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