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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과 공예, 잠들어 있던 근대 건축물의 문을 열다

오픈대구에서 열리는 기획전 INSIDE DOORS, 한 걸음 문을 열면

by K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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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부터 대구 최초의 여성기술학교(영남여자고등기술학교)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 중인 ‘오픈대구’. 이곳에서 오는 6월 1일까지 열리는 전시 <INSIDE DOORS, 한 걸음 문을 열면>은 시간과 시간을 잇는다. 시대를 거슬러 사랑 받아온 가구부터 창작자의 시간이 담긴 다채로운 장르의 작품이 근대를 품은 공간에 놓이는 순간, 새로운 풍경의 문이 열린다. 작품들은 화이트 큐브가 아닌, 1950년대 건축 특유의 붉은 벽돌과 목조 기둥이 어우러진 공간에 설치된 모습으로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전시가 진행되는 1층부터 4층까지 각 층에 오르는 순간마다 새로운 시간의 겹이 펼쳐지며 관람객을 말랑말랑한 사유의 세계로 이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에임빌라’ 이경신 대표를 통해 전시에 담긴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Interview with 이경신

에임빌라 대표



이번 전시는 특정 갤러리가 아닌, 가구 브랜드가 기획한 전시라는 점에서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나아가 가구 외에도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브랜드와 작가를 한 곳에 불러 모았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고요. 단순히 작품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 공간적인 맥락을 이해하며 작품을 전시한 의도가 잘 전해졌고 토크와 클래스 프로그램까지 풍성해요. 한마디로 제대로 기획했음이 느꼈습니다.

전시 소개에 앞서 에임빌라가 지향하는 가치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에임빌라는 이름에 담긴 ‘aim’ 그대로, 늘 방향을 묻고 답하는 브랜드입니다. ‘어디로 향할 것인가, 어떻게 일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우리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종국에는 대표인 제가 없어도 ‘지속될 수 있는 좋은 브랜드’가 되기를 꿈꿉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믿어요. 제게는 서로 다른 형태의 삶을 가진 사람들을 연결해 준 것이 바로 빈티지 가구였습니다. 오래된 가구가 내포한 시간의 흔적은 무한한 이야깃거리를 선사하고, 일상에 취향을 담아내는 여정의 나침반이 되어 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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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임빌라

앉거나 눕고 수납하기 위한 기능적인 사물 이상의 의미가 가구에 담겨 있다고 보면 될까요?

내가 먼저 쓰고 싶은 가구여야 한다’는 신념 아래, 우리는 소비자가 가구와 함께하는 생활을 상상합니다. 이 가구가 주는 기능과 즐거움은 무엇일까, 언제까지 함께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매개를 통해 사람들과 어떤 ‘나눔’을 지속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이 에임빌라의 디자인과 메시지를 이끌어 가죠. 진정 좋은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에 관한 공부가 선행되어야 하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어요. 그래서 우리는 직접 가구를 가지고 사람들의 공간으로 찾아가고, 습관처럼 리서치를 이어가며, 상상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aim’은 ‘조준하다, 목표를 설정하다’라는 사전적 뜻도 갖고 있는데요. 앞서 말씀드린 과정을 통해 에임빌라는 매 순간 자신만의 ‘방향’을 조준하고, 함께하는 이들과 즐거움을 나누는 지속 가능한 브랜드로 거듭나고자 해요. 이번 전시는 가구를 통해 즐거움을 나누는 에임빌라 활동의 연장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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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임빌라

가구를 통해 즐거움을 나눈다는 목적 아래 경계 없는 활동을 펼치는 것이군요. 에임빌라는 주로 부산을 기반으로 브랜드 활동을 이어왔죠. 이번 전시가 대구에서 열린 점 또한 의외였어요.

이번 전시는 ‘시간성’에 주목합니다. 시간을 거슬러 여전히 우리 곁에서 사랑받는 가구들이 같은 맥락에서 긴 시간을 담은 공간이 놓이면 어떨지 생각해 왔어요. 그러한 장소를 찾고 찾던 끝에 조우한 곳이 바로 대구의 ‘오픈대구’입니다. 1950년대 대구 최초 여성기술학교로 지어진 이 근대 건축물은 붉은 벽돌과 목조 기둥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역사적 배경을 제공하죠. 그 물리적 공간 위에 14팀의 브랜드·작가들이 각기 다른 시간의 층위를 지닌 오리지널 디자인 퍼니처, 기물, 회화 작품을 펼쳐 놓습니다. 총 16일간 이어지는 전시에서 관객은 공간이 지닌 시간의 울림과 작품 속 시간이 만나 켜켜이 쌓인 서사를 경험하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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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임빌라

사실 <INSIDE DOORS, 한 걸음 문을 열면>이라는 전시 제목을 봤을 때 디자인·공예 전시가 바로 연상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더욱 함축적인 의미가 담긴 제목일 거로 생각했습니다.

옛 여성기술학교는 꿈과 비전을 이루기 위한 가능성의 공간이었습니다. 우리는 건물이 품은 ‘가능성의 문’을 열고자 했어요. 이번 전시에서 이 근대 건축물은 대구, 부산, 서울 각지에서 모인 브랜드와 작가들이 저마다의 시간을 담은 작품을 선보이며 새로운 협업의 장이 됩니다. 전시장 문을 활짝 밀고 들어서는 순간 관객과 작가 모두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마주하길 바랐습니다. 특히 전시가 열리는 1층부터 4층까지 각 층을 ‘문’으로 형상화했어요.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경험을 선사하고자 했죠. 이러한 메시지를 담아 비주얼 디렉팅을 총괄한 송유미 작가님과 전시 제목을 완성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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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임빌라는 전시 기획뿐만 아니라 작품으로 전시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작품을 선보이나요?

에임빌라가 2021년에 선보인 디자인 ‘타임스툴(Time Stool)’과 이번 전시를 위해 준비한 ‘에임미러(Aim Mirror)’를 소개하고 싶네요. 먼저 타임스툴은 시간의 흐름을 품은 가구를 의미해요. 베지터블 레더와 오크 목재를 사용해 제작합니다. 다소 소박한 일상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는데요. 신발을 신을 때 가볍게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드로잉을 해보던 중 자연스럽게 탄생했죠. 우리에게 익숙한 ‘뜀틀’에서 형태의 모티브를 얻었어요. 스툴형과 의자형 두 가지 버전으로 구성되어 일상 속 다양한 상황에 맞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당시 저희 딸이 막 걸음마를 배우던 시기였는데, 손으로 짚고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이 스툴은 그 작은 동선에 함께 놓이곤 했어요. (웃음) 시간이 지나며 손자국이 눌리고, 가죽이 에이징되어 짙어진 스툴의 표면을 바라보면 그 위에 우리 가족의 시간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타임스툴은 함께 나이 들고 이야기를 축적해 가는 동반자 같은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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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임빌라

‘에임미러(Aim Mirror)’는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선보이는 알루미늄 주물 에디션으로, 80~90년대 브라운관 TV에서 영감을 받은 유려한 프레임이 특징이에요. 레트로한 감성과 동시대적 미감을 아우르며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이질감 없이 공존하는 디자인을 고민했죠. 모래 주물 특유의 표면 질감과 은은한 광택은 시간의 흔적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전시장 안에서 더욱 깊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의자나 조명 옆에 무심히 기대어 놓고 장면을 상상하며 완성한 이 거울은 감정을 머금고 풍경을 완성하는 하나의 장면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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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임빌라 외에도 디자인과 공예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많은 브랜드와 작가가 모였습니다.

이번 전시는 ‘나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의 한 페이지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총 14팀의 브랜드·작가들과 함께 촘촘하게 기획했습니다. 메시지를 더욱 깊이 전하고자 참여 브랜드와 작가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도 풍성히 준비했어요. 대구에서 전시가 열리는 만큼 로컬의 이야기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스페셜 토크 프로그램에서 도시 브랜딩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하는 대구 기반 플랫폼 ‘어반바이브’가 로컬 브랜드의 스토리를 깊이 있게 들려줄 예정이에요.


<INSIDE DOORS, 한 걸음 문을 열면>

전시 기간: 2025.5.16(금)–6.1(일) 11AM–6PM *월요일 휴관

전시 장소: 대구 중구 북성로 80-1 오픈대구

참여 브랜드/작가: 심지선, 유미 쏭(송유미), 키요(김심결), 은성민, 오얏, 에임빌라, 어컴퍼니(프레데릭 루시앙) , 프루프루콜렉터, 에크루, 쓰쓰쓰, 오브제후드(김연홍, 김혜영, 오혁진), 풀오키드, 오퐁드부아, 할타보카

주최: 대구시

주관/기획: 에임빌라

디자인: 송유미

자료협조: 에임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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