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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올라 Feb 14. 2024

[여기는 모스크바입니다.] 식빵 두 덩어리

나보다 큰 그릇의 딸을 키우고 있다.

 매주 수요일 둘째가 방과 후 클럽 활동을 하는 한 시간 동안 첫째 딸아이와 가는 비밀 장소가 있다. 학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푸드몰인데, 백화점 푸드코드처럼 자그마한 음식점들이 열다섯 곳 남짓 나열된 곳이다. 이 시간엔 몸에 좋은 것 안 좋은 것 따지지 않고 딸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간식을 사서는 둘만의 달콤한 시간을 갖는다. 주로 크림과 시럽이 잔뜩 올라 간 와플과 생과일 주스를 먹으며 뭔가 비밀스러운 둘만의 시간을 만끽하곤 한다.

 지난 두 수요일도 어김없이 그곳에 들러 간식을 먹고, 미안한 마음을 조금 덜어 낼 아들 브리또까지 사 들고 한 시간을 마무리하려는 찰나, 갓 구운 호밀식빵집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내일 아침 빵 칼로 쓰윽 쓰윽 썰어 토스트에 구워 커피와 먹을 생각을 하니 이미 설레었다. 커다란 호밀빵을 하나 다 살 꺼니 반만 살 꺼니 묻는 아저씨에게 반만 주세요라고 딸을 시켜 전했다. 반으로도 네 식구가 충분히 한 끼 채우고도 남을만한 크기였기에. 그러다 아들과 클럽활동을 같이 끝내고 나올 한국 아이가 생각났다.

 “한 개 다 주세요. 반으로 잘라서 따로 담아주세요.”

 다른 가족에게도 한 끼의 가벼운 식사거리를 챙겨 줄 기분 좋은 마음으로 학교 앞까지 딸아이와 손 잡고 깔깔 낄낄 호호 걸어갔다.

’ 아차. 오늘 다른 집 한국 아이도 새로 클럽을 시작하는데.‘

 학교 앞에 서 있는 두 엄마를 보고 순식간에 아 그냥 둘 다 가져가 우리 애들 이틀에 나누어 먹여야겠다라고 생각을 정리하고,

 “어쩌지? 재인이네도 오늘 클럽 시작하는 걸 잊었네? 그냥 우리가 둘 다 가져가야겠다. “

하자마자 딸아이가

 “엄마, 그냥 하나씩 드리면 되잖아. 우린 엄마가 빵 잘 만드니까 만들어 먹어도 되고, 다음 주에 또 사러가도 되고. “


 아 그렇게 나누면 되는구나. 하나를 더 가져오려 했던 나였는데, 하나를 더 나누어 주려는 딸이었다.

 나를 챙기는 마음은 참 중요하다. 나부터 생각해야 할 일들도 참 많다. 하지만 그 순간은 별거 아닌 식빵 한 덩어리 때문에 내비친 내 딴에 배려라 일컫는 마음과 별거 아닌 식빵 한 덩어리 나누려던 마음을 그저 하나 더 나누는 배려를 생각한 딸 앞에서 부끄러웠다.

 아이들은 나보다 생각이 깊다. 부끄러워질 때는 네 생각이 맞는 거 같아. 엄마가 이번엔 부끄럽다. 알려줘서 고마워. 항상 엄마를 배우게 해 줘서 감사해.라고 말해준다. 저 큰 그릇의 아이들 앞에서 오늘도 엄마의 그릇도 함께 키운다. 좋다. 너희들의 엄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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