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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올라 Feb 16. 2024

[여기는 모스크바입니다.] 압정을 밟았다.

엄마는 말하지 않은 엄마의 소식

2023.5

 “악!”

아이들을 배웅하고 현관에 들어서다 실내화를 신기 직전 압정을 밟았다. 발바닥의 여린 피부를 뚫을 기세로 들어온 날카로움에 비명이 절로 나왔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몇 번을 문지르고 호호 불고 피 한 방울 안 나는 발이었지만 혹시나 통증이 오래갈까 싶어 수면 양말을 가지러 가면서는 심지어 쩔뚝거리기도 했다. 그깟 압정하나에. 오래돼 끝도 뭉툭해져 할 일을 다한 그깟 압정 하나에 찔려놓고는.


지난주 새벽 엄마와 한 동네에 사는 사촌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에 카톡조차 주고받지 않는 사이였기에 좋지 않은 일이라 짐작했고, 잘 연결되지 않아 몇 번을 서로 다시 걸었다 끊겼다 하는 동안 마음이 바빴다. 동생의 부모님 건강얘기로 서두를 시작 하며 말을 길게 늘이는 조심스러움도 답답해 배려도 예의도 싹 거두고 물었다.

 “결론만 얘기해줘 봐, 우리 엄마 아파? “

엄마가 아프다. 괜찮냐고 옆에서 손을 잡아 줄 수 조차 없는 먼 곳에서 엄마가 아프다.

7년 전, 엄마 아빠의 살덩이나 다름없던 한 살짜리 큰 아이를 떼내어 이곳에 데려와 키우던 때 엄마의 머리에 자라고 있는 혹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10년 전, 엄마의 목숨보다 귀했던 딸이 결혼해 모스크바로 떠나던 날, 엄마는 내가 입던 잠옷을 부여잡고 가슴이 뜯겨나가는 아픔과 싸우며 며칠을 몇 달을 소리 내어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또 함께 살다 이 번엔 그 귀하던 딸은 비할 것도 아닌 손녀를 모스크바로 보내며 버텨내야 했을 그리움은 차라리 심장을 잠시 밖에 꺼내두는 게 나았을지도 모를 범접 불가의 아픔이었으리라 짐작만 해 본다.

그래서였을까. 엄마의 몸이 받아내 본 적도 없는 묵직한 그리움이 거침없이 몰아쳐 그곳에 뻔뻔하게 싹을 튼 거였을까. 딸이 먹을 과일 주스를 갈고 손주 먹을 이유식을 만들고 남편 먹을 아침을 만들며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쯔음 “할무” 하고 방문을 열고 나오는 돌쟁이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하루아침에 고요함으로 바뀌며 느껴졌을 그리움이 숨을 턱 막히게 했을까.

한 동안 그 자리에 조용히 머물기만 했던 그 뻔뻔한 혹이 이번에 많이 자랐다고 한다.

작년 한 해 신랑이 사업을 시작하며  6년째 반복되던 “내년엔 한국 가.”라는 말을 이제는 할 수가 없게 됐다. 이번엔 일 년이면 될 줄 알았던 헤어짐이 언제 끝이 날 줄 모르게 된 것이다. 딸이 그리고 온 사랑을 차곡히 채워 매 순간 퍼부어 주던 두 손주가 모스크바에 무한히 남겨져 있게 될 것을 받아들이며 엄마는 또다시 아팠던 것일까.

엄마는 수술 소식을 나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단다, 절대. 손주들이 한국에 나와있는 동안 즐거운 생각만 하고 즐거운 것만 보고 아무 걱정 없이 있다 돌아가야 한다며 의사가 정해준 수술 날짜를 우리가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가는 다음날로 미뤘다고 한다. 바로 다음 날.

사촌동생은 하루빨리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걱정이 돼서 연락했다고 했다. 수술과정을 찾아보니 머리 앞과 뒤에 네 개의 나사를 박아 혹에 감마 광선을 쏜다고 하는데 무려 세 번을 해야 한단다.

나사를 네 곳에나. 그 소식을 듣고 며칠 동안 나사 조이는 과정만 내가 할 수는 없을까 그럴 순 없을까 계속 되뇌었다. 따뜻해진 봄바람에 파란 하늘을 올려보다가도 “그 나사조이는 거, 그거, 그거 내가 하면 안 될까”라고 혼잣말을 쏟아내며 울고 또 울었다.

그러던 날 중에 하나, 압정을 밟고 나는 그 난리를 피웠던 거다. 그 몽똑한 압정에 스치듯 찔려놓고는 그 유난을 떨었다. 그 압정에도 악 소리 나게 아픈데 엄마는 그날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두려울까 얼마나 별 생각이 다 들까 란 생각에 콸콸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마흔에 발레를 시작했고, 엄마는 예순여섯에 그림을 시작했다. 나는 오십에 공연을 꿈꾸고 엄마는 일흔에 전시회를 꿈꾼다. 누군가는 다 자라지 못한 자립이 덜 된 모녀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 복잡한 용어들로 우리 관계를 평가받고 의심하고 싶지 않다. 탯줄보다 힘찬 끈으로 연결되어 함께 꿈꾸고 함께 사랑의 에너지를 주고받는 소울메이트라고 하면 되려나. 엄마가

견뎌야 할 아픔이 얼마만큼이던 아마도 우리를 떠올리며 차분히 버텨내실 것을 안다. 버텨 내어 또 함께 꿈을 꾸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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