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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K Dec 16. 2021

내가 휠체어를 타고 있는 이유

휠체어 생활 10년 차

'근이영양증'의 발병은 나의 인생을 한순간에 바꿔놓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다른 아이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뒤뚱뒤뚱 걷는 경우가 많았고, 계단을 오를 때면 손을 짚고 올라갔다. 종아리는 마치 운동하는 사람의 다리처럼 비대해져 있었다. 그렇지만 부모님께서는 아이의 성장이 더딘 것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셨다.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무렵에도 그런 상황들이 지속되자, 나는 부모님과 함께 서울대병원으로 검사를 받으러 갔다. 우리는 병원에서 뜻밖의 결과와 마주하게 되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검사 결과를 보여주시면서, '근이영양증'이라는 희귀 난치성 질환이 발병했다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이 병에 걸리게 되면 우리 몸의 모든 근육이 서서히 빠져나가게 된다고도 하셨다. 사실 어린 나이였기에 그때의 상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부모님의 심정은 어떠셨을지 짐작이 간다. 아들이 원인도 모르고 치료제도 없는 무서운 희귀병에 걸렸다는 사실은 부모님을 얼마나 괴롭게 만들었을까. 그렇게 나는 3500분의 1의 확률로 발병한다는 '근이영양증' 환우가 되었다.


사춘기 시절, 평생 휠체어를 탄 채 살아가야 된다고 생각하니 앞날이 막막했다.

 의 무서움을 본격적으로 실감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무렵이었다. 문득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몸이 무겁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 이틀 지나가면서 다리 힘이 빠진다는 것이 느껴졌다. 결국 중학교 1학년이 되면서 휠체어를 타야 할 정도로 상황은 악화되었다. 내가 휠체어 생활을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이다. 처음 휠체어를 타고 밖을 나갔을 때 느꼈던 감정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주위 사람들이 쳐다본다는 생각에 수치스러웠고, 마음속에는 절망감이 가득했다. 필이면 휠체어를 타기 시작한 무렵에 사춘기도 함께 찾아오면서 더욱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정체성의 혼란을 많이 겪었다. 특히 나는 체육 시간 그렇게도 다. 른 친구들이 체육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사람인지라 솔직히 웠다. 그래도 힘든 감정을 내색하고 싶지는 않아서,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겨우 그 시간을 버텨냈다. 나는 중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때까지도 장애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종의 열등감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내게 먼저 다가와줬던 좋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치고, 사람들을 먼저 밀어냈. 그때는 나 스스로도 장애를 받아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홀로 대학생활을 하면서, 장애를 조금씩 받아들이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했다.

 그랬던 나는 대학생활을 하게 되면서, 장애를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부모님께서 항상 따라다니시던 시절과는 달리, 대학교 생활은 혼자 부딪혀봐야 했다. 한 시간이 훌쩍 넘는 학교까지 애인 콜택시로 통학을 하고, 때로는 위험할 수도 있는 지하철을 타는 것도 여러 번 도전했다. 렇게 금씩 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성취감과 함께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대학교에서 만난 좋은 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 그분들 덕분에 잊지 못할 추억을 함께 쌓고, 마음의 상처도 치유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내 건강이 허락해주지 않았다면, 대학생활이라는 것은 절대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또래의 근이영양증 환우에 비해서 병의 진행속도가 느린 편이라, 비교적 건강하게 대학생활을 보냈다.


 방황의 시기를 거쳐, 이제는 휠체어 생활 10년 차를 앞두고 있다.
 

 어느덧 내가 휠체어 생활을 한지도 올해로 10년 차가 되어간다. 나의 휠체어 생활은 변하지 않았지만, 10년 전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장애를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장애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속상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휠체어를 타고 있다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 그리고 장애있는 나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휠체어 생활이 계속될수록, 나는 점차 성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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