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평범하였으나 부유하지는 못한 가정에서 자랐다.
성적은 좋았으나 부유하지는 못해 의대를 가지 못하고 공대를 간 아버지.
친구들이 학원을 다닐 때 돈이 없어 다니지 못한 어머니.
30살, 26살의 젊은 부부는 그렇게 첫째 딸을 낳았다. 예쁘고 똑똑한 딸로 자라길 원해서 4살부터 학습지 공부를 시작으로 공부를 열심히 시켰다.
그리고 둘째를 계획하였으나 속상하게도 유산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다시 유산을 할까 걱정되어 침대에서만 생활을 하였고 결국 건강한 아들(그게 바로 나다!)이 나왔다.
어렵게 낳은 아들이기도 하고 공부는 첫째 딸이 잘하니 아들은 중학교 때까지 공부는 안 시키려 했다.
그리고 계획대로 정말 예쁨만 받으면서 컸다. 오죽하면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 한글을 배우지 못했고, 입학을 하자마자 급하게 한글을 가리켰다. (결국 첫 받아쓰기 시험까지 받침은 배우지 못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도 학습지와 학원을 통해 국어, 수학, 영어 전문학원을 다니던 친구들과 다르게 한 가정집에서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께 수학과 영어를 배웠다.
배우러 가기보다는 아주머니가 주는 간식을 먹으면서 놀고 오는 시기였다.
나머지 시간은 공원에서 BB탄총을 쏘면서 뛰어다녔고 가끔 태권도 학원에 가는 정도였다.
그렇게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부모님께서 이사를 가자하셨다. 대치동으로.
물론 내 교육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누나는 전교에서 손가락 안에 들었고 교육 1번가로 불리는 대치동에서 더 많은 교육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사춘기 시기였던 누나는 친한 친구들을 떠나고 서울로 오게 되었고,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많다 보니 성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1등을 놓치진 않았다.)
그러다 결국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고등학교 2학년 때 폭발을 하여 공부를 때려치웠고 등수는 바닥으로 자유 낙하했다.
학원을 간다 하고 친구들과 놀기, 싸우고 다니기 등등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매형은 모른다. 미안해요 형.)
부모님은 원래 내가 중학교를 들어가면 공부를 계획적으로 시킬 계획이셨지만 방황하는 첫째 딸을 신경 쓰다 보니 둘째를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놀았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그리고 같은 반에 싫어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외고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며칠씩 아프다는 진단서를 내고 자습을 하였고 매번 틱틱거리는 친구였다.
그 친구도 나를 제법 싫어했는지 어느 날 내게 자극적인 말을 한마디 했다.
"공부도 못하는 게 ㅋ"
발끈했지만 맞는 말이기에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내가 외고를 가서 눌러주겠다.'
그래서 종례를 마치자마자 집으로 후다닥 뛰어가서 "엄마! 저 외고 갈래요!" 라 외쳤다.
내가 부모였으면 당황했겠지만 우리 어머니는 "그래"라고 하셨고 바로 다음날부터 나는 외고 준비 학원과 독서실을 가게 되었다.
학원에서 정말 열심히 수업을 듣고 복습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요령이 없어서 효율이 없었다.
남들은 몇 년 동안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시험을 몇 달만 준비했는데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떨어졌다. (ㅎㅎ)
싫어하던 그 친구는 외고 중에서도 탑 3안에 드는 좋은 곳으로 갔다. (김동X 잘 지내니?)
물론 아주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험지에 나오는 모든 문장을 달달 외웠고, 리스닝을 계속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리스닝과 문법까지 익히게 되었다.
그걸 알게 된 건 고1로 올라가기 전 영어학원에서 고3들이 보는 시험을 봤는데 1등급이 나왔기 때문이다.
너무 쉽게 풀어서 놀란 나는 선생님께 한 질문이 아직도 기억난다.
"선생님 이거 고3형들이 푸는걸 쉽게 바꾼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