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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15. 2022

귀하에게 사랑 올립니다 (1)

첫 번째 편지



나의 귀하에게


 미안합니다. 당신 얼굴 볼 때마다 벅차는 마음을 사랑한다 세 글자에만 비좁게 구겨넣었습니다. 안일했습니다. 린 시절, 흔히 널린 나뭇가지 하나로 수 백 가지의 마법을 부릴 줄 알았던 내가 사랑을 사랑으로 밖에 말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군요. 사람의 성장은 무엇이든 닳고 닳아 덤덤해지는 과정인가 봅니다. 나는 요즘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나는 어떤 사람니까?

  내가 사는 동안 잃어버린 동경과 순수함 만큼 내면 어딘가 단단하고 견고한 구석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당신의 손을 잡기 전까지의 나는 어떤 충격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 강인함 만이 삶을 평탄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용광로의 뗀 불이 쇠붙이를 구부리게 만드는 것처럼, 이제는 당신의 앞에서 갈대처럼 유연히 나부끼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편지를 씁니다. 나의 생각과 마음을 종이 위에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재주를 가진 것은 우연이 아니겠지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들과 표현들을 별 모래처럼 소중하게 모으고 다듬어 당신에게 보냅니다. 나의 문장으로 당신의 입가에 미소 한 번 띄울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이 글자들이 당신에게 흘러 거창한 위안 아닌 소박한 위로라도 건네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나는 의심하지 않고 내가 가진 시간과 정성을 쏟은 다음에 조금도 후회하지 않으렵니다.

오늘부터 나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변명 대신 사랑을 고해하는 편지를 쓰겠습니다.


 나는 지금 12월의 중간 자리에 걸터앉아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을 떠나 보낸 이후로 날씨는 점점 더 추워지고만 있습니다.

오늘은 어땠나요?너무 많이 춥지는 않던가요.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몸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마음과 정신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

'사랑해' 세 글자 만큼이나 단순하고 잦은 안부에 이제는 더 이상 대답할 거리도 없을테지만 나는 묻기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당신의 안녕을 바랍니다. 특별하고 좋은 경험이 부재하더라도 평안하고 무탈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사회에 발을 딛고 가장 어려웠던 것이 행복하기 보다도 평범하기 였어요. 타인의 행복과 불행의 기준을 멋대로 판단 내릴 수 없는 것처럼 , 평범을 논하기도 몹시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오늘 당신의 어깨가 무거워 투정과 함께 눈물을 짓더라도, 매 순간의 호흡이 버거울 만큼 가쁘고 명랑한 시간을 보냈더라도 나는 그 자리에서 온전히 그대의 얼굴을 끌어 안겠습니다. 달의 앞면도 이면도 모두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지요. 언젠가는 지금보다 진실된 모습을 보게 될 때도 오겠죠. 기약할 수 없는 때를 향해서 나는 설레발도 걱정도 없이  영영히 있겠습니다. 그것만이 내가 바라는 일상입니다. 그리고 그것만이 내가 정의하고 싶은 평범입니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창 밖을 내다보다 미처 끝내지 못한 업무 연락에 핸드폰을 들여다 보아야 했던, 당신의 어깨와 등에 귀를 붙이고 가만히 기대어서 몰래 훔쳐 듣던 숨소리와 고동을 설레게 기억합니다. 거품처럼 뿌옇게 흰 하늘 아래 흩날리던 눈발 사이로 호탕히 추위를 뚫고 나선 당신의 웃음을 기억합니다. 아, 나도 당신을 사랑하기로 작정한 날부터 웃음이 많아졌습니다. 귓전에 남아있는 나의 웃음 소리는 당신이 시도했던 모든 농담들이 실패하지 않았다는 증거이죠. 뿐만 아니라 당신이 아무 의미 없이 내뱉은 속삭임까지 나를 미소짓게 만들었을 때 나는 당신과 이대로 함께하고만 싶어졌습니다.


 내어주고도 아까워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던 당신은 받기보다 주기를 선택하며 살아온 사람이라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죠.

같이 있는 시간 동안 항상 나에게 무엇이든 먼저 해주려고만 하던 당신의 태도로 하여금 당신이 밟아 온 삶의 풍경을 알 것만도 같습니다. 받는 고마움 보다도 주는 보람을 먼저 배워야만 했던 당신의 삶을 존중합니다. 그러니 부디 의 기꺼운 마음을 예쁘게 봐주세요. 당신이라면 소중한 사람에게 베푸는 기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내가 행복을 만끽할 수 있도록 마음 한 칸만 허락해주세요.


 당신은 그럴 자격이 충분합니다.


 그것은 내가 당신을 아끼는 마음과 별개의 일 입니다. 나는 과분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우리는, 모두가 더 좋은 대접을 받아야만 합니다. 지구에서 오직 혼자 사는 것이 아닌 우리는 더 친절해야 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에게 가장 친절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그저 당신을 용서하세요. 그러면 나는 그런 당신을 응원하고 위로하고 사랑하겠습니다.


 타인을 향하는 마음은 낮추고, 당신의 가치와 품격을 높이세요. 날카로운 언성은 줄이고, 연민하는 언어를 늘려보세요. 감정이 요동칠 때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마세요. 그리고 이미 저지른 과거의 결정을 돌아보며 후회하지 마세요.

 뭐든 함부로 미워하지 맙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온정만 나누기에도 지나치게 짧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내가 배워 유용하게 찾아 쓰던 문장들을 당신에게 동봉합니다.


 아, 눈이 내립니다.


 오늘 아침은 세상에 나온 모든 것이 공평하게 덧칠되고 있습니다. 사람도, 길도, 나무도, 건물도 하얗게 그려지네요. 나는 고단했던 어제의 흔적을 모두 가릴 만큼 소복하게 쌓인 백색 결정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출근길에 마주한 풍경이 마치 어린 아이가 마구 흔들어 놓은 크리스마스 글로브 같습니다.

 날씨가 매섭게 추워질 수록 한 없이 포근해지는, 내가 사는 도시의 풍경을 당신에게 전하며.




 2022년 12월 15일,

당신의 사랑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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