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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an 10. 2023

귀하에게 사랑 올립니다 (6)

 할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오늘은 나의 할머니에게 씁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인사를 마치고 돌아와 업무에 집중하며 감정을 떨쳐내려 애를 쓰고 있는데 쉽지가 않네요. 우는 얼굴을 보여서 죄송합니다. 내가 울면 우리 할머니 걱정이 태산처럼 불어나는 걸 아는데, 나를 보던 당신은 표현도 못하고 얼마나 답답하고 속상했을까. 기꺼이 눈물 닦아 주고, 품에 안고 싶었을텐데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못하는 심정은 또 어땠을까. 할머니, 사랑하는 내 할머니. 마지막 내 모습이 씩씩하지는 못했을지 몰라도 제발 부디 걱정 말아요. 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 나는 행복하고 건강해요. 할머니가 준 사랑 만큼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됐어요.

 기억나죠. 할머니는 늘 나를 예삐라고 불렀잖아요. 예쁘다고 예삐야, 하고 나를 불렀어요. 할머니가 마음을 쓴 만큼 곱고 아름다운 어른으로 자라났답니다.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주셨음 좋겠어요. 내가 갓난 아기 때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은 엄마 대신 나에게 엄마가 되어주셨던 당신에게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할머니를 향한 내 마음이 감사하다 못해 사무칩니다.


 사랑해요. 더 많이 말하지 못해서 괴롭고 숨이 막힐 정도로 사랑해요.


 철이 조금만 더 일찍 들었더라면, 후회를 삼가하는 내 신념이 무너질 정도로 아쉬운 감정만 가득한데 내가 어떻게 당신을 보낼 수 있을까 벌써부터 막막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적으며 엉킨 실타래처럼 꼬여버린 내 마음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한참 어릴 때는 몰랐어요. 할머니가 세상에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하루 아침에 쓰러져 두 번 다시 말하지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몸이 되어버릴 거라고는. 그러고 십 몇년 동안 고통받게 될 거라고는 짐작 조차도 못했고요. 사회 생활도 못하고 간병에 몰두하느라 지치고 힘들다고 투정한 제 자신이 미울 정도로 지금 할머니 곁을 지키지 못하는 게 한이 되어요.

 우리 할머니 요양원 보내드리자마자 코로나가 시작되어서 그치지 않은지 몇 년이 지났습니다. 면회도 함부로 하질 못하고 그렇게 세월만 지났습니다. 하염없이 그리워만 하고 또 보고싶어만 했어요. 매일 같이 요양원에 찾아가 사는 이야기도 들려 드리고 TV 프로그램도 같이 보고 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멀어지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할머니가 느꼈을 외로움을 생각하면 하늘이 무심하다 못해 잔인하게 느껴지지만, 독실한 신자인 할머니는 그마저도 미련 없으시겠죠. 서럽고 고통스럽습니다. 역병이 도는 와중에 코로나 때문에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도 신경쓰지 못하는 은연 중의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내가 알고, 이렇게 글로 적으면 누구 한 사람이라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그런 심정도 있습니다.


 내가 옆에 있어야 하는데. 내가 옆에 있어야 하는데.

 얼마 전에 제 생일이었어요. 내가 아직 학생일 때 할머니는 그때만 해도 걸음을 걸었고, 글씨도 잘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시에 말도 못 하고 음식의 간도 보질 못하는 상태의 할머니가 손녀의 생일을 챙겨준다고 만들었던 미역국이 생각납니다. 말도 못하게 짜고 맛이 없어도 내색 한 번 못하고 웃으면서 울었던 어린 내가 떠오릅니다. 동네에서 요리를 제일 잘 한다고 손에 꼽혔던 할머니가 해준 미역국이 맛이 없어서. 나는 아마 앞으로도 매년 나의 생일마다 그 날의 기억을 잊지 못할 겁니다. 바닷물처럼 짜디 짜던 미역국에 담겨 있던 할머니의 사랑 만큼은 영원히 잊히지 않겠죠.


반면에 필사적으로 기억하려고 노력해도 잊히는 것이 있더랍니다.

 간병하는 것도, 투병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것도,  할머니의 목소리를 까먹는 과정보다 힘들진 않았어요. 나를 "예삐야." 부르던 목소리. 잠들지 못하는 밤 나긋하게 불러주던 자장가와 찬송가. 귀찮았던 잔소리도 나를 아끼던 칭찬도, 영원할 줄 알았던 목소리가 점차 기억나지 않게 될 때마다 마음이 천 갈래로 갈기 갈기 찢어지는 것과 같이 아팠습니다. 추억은 변하지 않을 거라 굳게 믿었는데요. 다들 그렇게 말하길래 그럴 줄 알았거든요. 세상이 나를 속인 건지 아니면 시간 앞에 장사가 없는 건지 모르겠어요.


 할머니, 혹시 그런 내 마음을 눈치 챈 거에요?


 나의 마지막 인사에 "응."하고 대답해주신 거요. 할머니 한 마디에 망각하고 있었던 소리의 기억들이 모조리 흔들려 깨어나면서 오열을 멈출 수가 없더군요. 고마워요. 정말로 고마워요. 할머니는 몇 년 동안 대답도 하지 못할 정도로 지쳐 있었잖아요. 숨도 제대로 쉬질 못하고 가쁘게 울기만 했잖아요. 그런데도 나한테 그렇게 대답을 해준 거에요. 떠나는 사람은 당신인데, "이제 나 가볼게."하고 인사를 할 수 밖에 없는 나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그렇게 했어요. 사랑이죠. 분명히 사랑이겠죠. 사랑이 만들어낸 힘이자 기적이겠죠.

 할머니가 만들어낸 선물이자 마법같은 순간을 이번에는 오래 잊지 않도록 나는 평생을 필사적이겠죠. 힘들게 쥐어짜 낸 소리 한 음절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말보다 이다지도 슬프고 감동적이며 애탈 수 있다니요. 아주 감사합니다. 대답을 들어 안심입니다. 할머니의 대답 아래 나와 우리는 조금 더 초연하게 이별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병상에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긴 시간동안 함부로 발길을 돌리지 않으신 까닭은, 당신이 사랑하는 내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신 거라 생각합니다. 당신의 공백에 내가 너무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래 버티신 거라 생각합니다. 15년 가까이 되는 이 준비 시간에도 마음이 채 갈무리 되지 않아 속상한데. 더 이르게 가셨으면 슬픈 게 아니라 절망스러웠을 거에요. 우리들은 너무 많은 각오를 했어요. 사실, 마음으로는 수십 번이나 할머니를 떠나 보낼 각오를 한 것 같아요. 당신이 급하게 구급차를 타고 큰 병원으로 옮겨갈 때마다 가족들과 나는 그랬어요. 오르락 내리락 변화하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전문 의료인이 아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할머니의 죽음에 각오하는 수 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당신 몰래, 할머니를 수 십번 떠나 보내고 이별을 연습하면서 충분히 무뎌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별 앞에서 덤덤할 수 없는 내가 충분히 강인하질 못한 건가요. 아니면 그간의 연습 덕에 이렇게라도 버티는 건가요.

 예기치 못한 병으로, 당신의 딸을 먼저 떠나 보내야만 했던 할머니만 할 수 있는 대답 같은데요. 할머니가 꿈에라도 나와 정답을 알려줬음 좋겠습니다.


 네. 이렇게 안녕을 준비하네요. 사람의 앞 일은 모르는 거라 할머니가 수 개월을 더 버텨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아니면 당장 내일 아침에 눈을 감을 것만도 같고. 속이 복잡하고 갈피를 못 잡겠어요. 그냥 보고싶어요. 그냥, 그냥, 그냥 옆에 있고 싶어요. 이 지긋지긋한 역병이 종식되어서 나와 같은 처지와 입장에서 고통받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것을 경험하는 게 내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그냥, 그냥.


 모르겠어요. 가슴에 맺힌 말이 너무나 많은데 직접 할게요. 더 버텨달라고 떼를 쓰진 않을 건데요. 그래도요.

그래도 직접 할게요. 내가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힘들면 기다리지 말고 그냥 먼저 가요. 내 걱정 말고 푹 쉬어요. 괜찮아요. 정말로 괜찮으니까 더 이상은 힘들지 말아요. 난 할머니가 앞으로는 힘들지 말고 아프지 말고 속상하지도 말고 외롭지도 말았으면 좋겠어, 그동안 너무 많이 아프고 힘들었잖아.


 나도 때 맞춰서, 너무 이르지도 않고 늦지도 않게 꼭 만나러 갈테니까.


 2023년 1월 10일,

 할머니의 딸, 할머니의 귀염둥이, 할머니의 손녀, 할머니의 사랑,


당신의 예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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