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드랍, 제품 실패 분석과 소회
1. 프로젝트 드랍
2. H.X 마케팅 기획을 마치며
3. 매칭 사업에 대한 소회
결론부터 말하면 10월부터 준비하고 막 드라이브가 걸리던 프로젝트가 드랍됐다. 아이템 선정부터 임원 보고를 통한 프로젝트 승인까지 온전히 내가 메이드하던 프로젝트였다. 드랍된 배경에는 크게 조직의 내년 사업방향, 내부적인 이슈, 비즈니스 임팩트, 그리고 프로젝트 관리자의 파워 부족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프로젝트가 발제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조직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비록 시장 규모는 작을지언정, 현재 고투마켓을 하고 있는 유관 조직의 중요한 초기 제품이 사용자 경험적으로 온전한 제품 사이클을 만들고, 비즈니스 임팩트를 확대하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8월에 내 팀에서 출시한 인재 매칭 솔루션(H.X)이 8~10월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피봇할 방향을 찾고 있었는데, 이때 시도해 볼만한 방향이란 판단이 섰던 것도 있다. (동시에 약 한 달 정도 느슨해진 팀의 에너지를 다시 쪼이기 위함)
프로젝트가 이루어진 과정을 돌아보면 아래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듯:
1. 아이템 탐색 및 선정: 임원·조직 보고, 내 제품의 상황, 유관 조직의 상황을 바탕으로 아이템을 선정했다.
2. 프로젝트 가승인: 임원, 리더 협의를 통해 프로젝트를 설계할 명분을 획득했다.
3. 초기 리서치 및 프로젝트 컨셉 스케치: 리서치 데이터를 바탕으로 프로젝트의 이해관계자부터 로드맵 그리고 산출물(제품)의 컨셉추얼한 디자인을 스케치했다.
4. 보고 및 조직 컨센서스 정렬: 임원 보고를 진행하며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진행할 명분(힘)을 얻었다.
5. 타조직 협업을 위한 킥오프 미팅 및 실무: 타조직 협업을 위해 사업 조직, 다른 제품 조직과 킥오프 미팅을 진행하고, 본격적인 기업 고객 인터뷰 준비, 제품 상세 기획을 진행했다.
6. And so on..
위 경험에서 나온 산출물이 굉장히 많다. 대부분은 10월~11월 중순까지의 내 영혼이 들어가 있는 것들. 12월 동안 딥하게 정리해 놓을 계획이다. 프로젝트가 결론적으로는 드랍된 것뿐이지, 그 과정 자체에서 얻은 경험이 매우 값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따로 글로 발행했다. 자세한 내용은 이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brunch.co.kr/@327roy/143
11월엔 인재 매칭 솔루션 'H.X'의 마케팅 전략도 수립했다. 시장의 반응을 검증해야 하는 단계에 제품이 머물러있는데, 10월까지의 성과를 바탕으로 내린 판단은 '초기 반응이 올 만한 고객 세그먼트를 더 명확히 하고, 그들을 데려오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아직 H.X는 마케팅을 제대로 집행한 적 없고, 진행해 볼 명분과 여건이 됐기 때문에 (예산도..), 올해가 가기 전 마케팅을 실행해 보기에 적절한 타이밍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난관은 H.X는 PC 환경에서만 온전하게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제품이라는 점. 기업의 채용 담당자가 사용하는 제품인 만큼 전략적으로 모바일화를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마케팅 기획 시모바일 접근에 대한 별도의 전략을 고려해야 했다.
한정된 예산과 'PC 전용'이라는 제약 사항 속에서 나는 두 가지 핵심 전략을 세웠다: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SA(검색광고)나 일반 DA(배너)는 후순위로 미뤘다. 대신 'HR 고관여 타깃'이 모여 있는 버티컬 매체(월간 HRD 등)의 eDM에 집중하는 것으로 방향을 설정했다. 단순 노출보다는, 실제 채용 리스크를 고민하는 담당자에게 '검증된 인재를 바로 매칭해 준다'는 메일이 도착했을 때의 전환율이 훨씬 높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단순 유입(Traffic)보다 실질적인 행동(Action)을 이끌어내는 데 집중한 믹스였다. 위 채널은 선택하는 과정에서 과거 유관부서 마케팅 히스토리를 모두 뒤져보고, 마케터에게 자문을 구했다.
가장 고민했던 지점은 '모바일 광고를 보고 들어온 유저'였다. 경험상 근무 시간에 보내는 eDM은 PC에서 소비될 확률이 높지만, 그래도 모바일에서 소비되는 케이스가 존재한다. 또한 우리 제품은 PC에서 써야 온전히 그 가치를 누릴 수 있다. 여기서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를 설계했다.
모바일 진입 시, 강제 차단 대신 '제품 소개 페이지'로 리다이렉트 처리
간편 폼 제출 유도 → 'PC에서 1분 만에 추천받기' 가이드 메일 발송
모바일 유입을 즉시 이탈시키지 않고 잠재 고객 리드(Lead)로 전환시킨 후 PC 재진입을 유도하는 전략이다. 개발 대응이 필요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가장 매끄러운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아래 같은 마케팅 캠페인 타임라인을 세운 후 업체와 견적 및 일정 협의를 진행 중이었는데, 1번 회고와 같은 이유로 이 전략 또한 실행 직전에 멈추게 되었다. 치열하게 고민했던 가설들을 시장에서 검증해보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준비했던 캠페인이 빛을 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꽤 아쉬움이 컸다.
그래도 직접 과거 성과를 분석하고, 적절한 매체를 선택해 미디어 믹스와 캠페인 타임라인을 수립하고, 업체와 컨택해서 협의하고 고민하는 과정 모두가 내 경험과 조직의 자산으론 남았으니, 그래도 긍정적인 면으로 볼 수 있는 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경험 또한 언젠가 빛을 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며칠 전 '인재 매칭'을 다루는 다른 플레이어(캔디드)와 커피챗을 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H.X)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하는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지난 몇 달간 우리가 가졌던 가설과 시장의 현실 사이의 간극을 고민할 수 있었다.
H.X는 잠시 멈추지만, 이 프로젝트가 남긴 전략적 교훈은 꽤 묵직하다. 특히 '효율화'라는 명분 아래 우리가 간과했던 것들을 복기해 본다.
1. 우리는 '사람'을 너무 빨리 '데이터'로 치환하려 했다.
복잡한 채용 과정을 기술로 압축하고 효율화하는 것이 우리의 가치를 고객에게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포장'을 통해 우리가 진짜 전달하고 싶었던 건 '인재의 역량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매칭(구인 설득)이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갈무리하는 시점에서, 나는 우리가 시장의 특성을 너무 단순하게 정의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2. 기업 향(B2B)에만 치우쳐 '양면 시장의 균형'을 놓쳤다.
H.X의 무게 중심은 명확히 '구인 기업'에 쏠려 있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빠르고 잘' 찾아주는 데 집중하다 보니, 구직자를 케어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많이 생략되었다. 하지만 채용은 기업 혼자 하는 쇼핑이 아니다. 기업과 구직자가 서로를 선택해야 하는 관계다. 구직자의 커리어 패스를 고민하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결국 기업에게 내밀 수 있는 카드(좋은 인재)도 없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3. 데이터 너머의 진짜 고객을 읽지 못했다.
또한 '매칭의 퀄리티'를 결정하는 페르소나 분석의 실패도 존재한. 우리는 기업이 입력한 JD(직무 기술서)를 절대적인 기준점으로 삼았다. 하지만 현실의 채용에서 텍스트로 된 JD는 빙산의 일각이다. 기업의 조직 문화, 팀장의 성향, 당면한 비즈니스 과제 등 'JD에 적히지 않은 요구사항'이 진짜 기업이 채용하고 싶어 하는 '인재 페르소나'를 구성한다.
우리는 이 복잡한 맥락을 파악할 방법을 기술적 자동화 안에서만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직접 만나서 묻고, 파고들며 정의해야 할 문제를 '효율적인 방법'으로만 접근해 해결하려다 보니, 결과적으로 기계적인 매칭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지 못했다. 고객이 진짜 원했던 건 '조건이 맞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팀에 맞는 사람'이었을 텐데 말이다.
4. 너무 이른 PLG(Product-Led Growth) 전략.
우리는 너무 섣불리 PLG(제품 주도 성장) 모델을 도입하려 했던 게 아닐까? 서비스를 런칭하면 고객이 스스로 들어와 가치를 느끼고 확장되는 '온라인 자동화'를 꿈꿨다. 이는 확장성 측면에서는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채용 시장은 본질적으로 High-Touch(고관여) 서비스 영역이다. 신뢰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자동화된 제안은 고객에게 '스팸'이나 '가벼운 정보'로 인식되기 쉽다.
경쟁사들이 '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맨투맨 마킹을 하며 신뢰 자본을 쌓을 때, 우리는 이를 구시대적인 방식으로 치부하고 너무 빨리 '시스템'으로 건너뛰려 한 게 아닐까? '사람이 직접 해서 검증된 모델' 없이 '소프트웨어'만으로 시장을 뚫기에는, 채용이라는 행위가 가진 무게감이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던 것 같다.
결국 H.X에서의 시도는 "고객의 문제를 진짜로 해결해 본 '충분한 노동' 없이는, 그 어떤 AI나 자동화도 진가를 발휘하기 힘들다"는 레슨런을 남겼다. 기술은 본질이 단단할 때 비로소 추진력이 되어준다는 것. 앞으로 어떠한 비즈니스를 시도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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