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답게 일한다는 것' 중
한 강연에서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누군가 침묵을 깨고 일어나 지갑에서 무언가 꺼내어 보여주었다. 명함이었다. 어느 회사의 어떤 직함을 가진 아무개라는 타이틀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데 이 작디작은 종이 한 장이 정말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물건이 될 수 있을까?
중요한 건 직장이 아니라 직업이다. 당신은 무엇으로 밥을 벌어먹는 사람인가.
아주 오랜 기간 나(저자 최명화)를 설명해주고 있는 명제가 있다. '나는 마케터다.'
물론 나를 담는 그릇은 계속 바뀌어왔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회사의 컨설턴트였던 적도 있고 한국 대표 기업의 임원이었던 적도 있다. 지금은 내 사업을 이끌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글을 쓰고, 기업들을 자문한다.
이렇게 나를 담은 그릇은 계속 바뀌었지만 나는 언제나 마케터였다.
오랫동안 아무 의심 없이 내 직업을 잘 알려진 회사의 회사원이라고 밝히고 살았다. ㅇㅇ회사를 다닌다는 것이 나의 업을 설명하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옳은 정의였을까? 만약 회사를 떠나거나 나만의 사업을 하게 된다면? 아예 일을 안 하게 된다면? 나에게 직업이란 무엇인가?
뒤늦게 나는 깨달았다. 내가 의지하고 있었던 것은 위부에서 편의에 따라 분류해 놓은 타이틀에 불과하다는 것을. 중요한 건 직장이 아니라 직업이다. 어느 직장에 다니는가가 아닌 무엇으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인지, 무엇을 잘하고 앞으로 더 잘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그 '업'에 대한 정의가 나를 설명해 준다. 이것이 바로 '뉴 프로페셔널리즘'이다.
책 '인생학교 : 일'에 19세기 프랑스 작가 샤토브리앙이 일에 대한 말한 다음 구절이 나온다.
진정한 삶의 고수는 일과 놀이, 노동과 여가, 몸과 머리, 공부와 휴식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그는 두 가지 중 뭐가 뭔지도 잘 알지 못한다. 무엇을 하든 그저 탁월함을 추구하고 그에 걸맞게 완성할 뿐, 그것이 일인지 놀이인지는 타인의 판단에 맡긴다. 그 자신은 언제나 두 가지를 모두 하고 있다.
타이틀이 바뀌어도 일은 그 자리에 있다. 꾸준히 내 것으로 만들고, 나아가 탁월하게 만들어야 할 대상이다. 내 인생은 나의 일을 통해 풍요로워지고 나의 일은 내 인생과 동행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