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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Nov 29. 2023

간식 혁명단

실행은 빠르고 단호하게!

어린이는 자유롭게 먹을 권리가 있다.

- 맞다. 건강하고 신선한 음식을 균형적으로 먹어야 한다.


어린이는 마음껏 먹을 권리가 있다.

- 맞나? 마음껏에서 걸린다.


어린이는 하교 후 사탕, 젤리, 과자를 마음껏 먹어도 된다.

- 어??  하교 후에 먹는 것은 되나?


뿐만 아니라 컵라면, 봉지라면, 시리얼, 빵, 햄버거, 소시지를 먹을 권리도 보장해 달라.

- 뭐라고?


과연 그럴까?  학교 갔다 와서 힘드니까 과자 한 접시(또는 한 봉지) 공부할 때 당떨어지면 집중 안되니까 사탕 한 개(또는 여러 개) 친구들과 학교 문방구에 잠깐 들러 사 먹는 젤리 등등 아이들이 먹는 간식은 너무나 풍족하게, 너무나 당연하게 아이들 곁에 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싱크대 한쪽 서랍이 모두 아이들 간식으로 가득 차 있다. 언제 산지도 모를 종류도 너무나 다양한 사탕들과 (막대사탕, 알사탕, 우산모양 통에 튼 사랑, 화이트데이라고 샀던 대형 츄파*스, 마이*, 빵집에서 산 롤리팝) 젤리(하리*, 마이구*, 죠스* 모양 젤리, 햄버거 모양 젤리 등), 껌은 기본이다. 각종 봉지에 담겨 있는 과자와 파이류(오예*, 초코파*), 통에 들어있는 감자과자, 쿠키류, 아파트 장터에서 산 뻥튀기와 우유, 요거트에 타 먹을 각양각색의 시리얼까지 싱크대 서랍을 열면 우수수 떨어지는 과자 봉지에 스트레스도 쌓이지만 나도, 아이들도 워낙 과자를 좋아해서 조금조금 산 것들이 가득 채울 정도로 많다.


간식을 많이 준다고 생각은 안 했다.

일단 학교, 유치원에 다녀온 아이들에게 접시에 넘치지 않을 정도로 과자를 담아주었다. 낱개 포장되어 있는 과자류를 선호하지만 봉지에 들어 있는 과자도 몇 번씩 나눠 줄 때가 많았다. 과자뿐만 아니라 아파트 장터에서 파는 슬러시나 꽈배기, 핫도그 등도 간식으로 주곤 했다. 아이들은 으레 간식을 먹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하교 후 간식이 보이지 않으면 어디 있냐고 전화할 정도다.


간식을 챙겨주는 시각은 보통 내가 퇴근하고 나서이므로 5시 이후에 줄 때가 많다. 문제는 이때 먹은 간식 때문에 아이들이 저녁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녁 식사를 보통 7시쯤 하는데 그때쯤이면 간식을 먹었더라도 딸은 밥도 야무지게 잘 먹는다. 하지만 입 짧은 아들은 간식 먹은 후 곧이은 저녁 식사는 당연히 잘 먹지 않는다. 그래서 식사 시간이 영 고통스럽다.

열심히 준비해서 나물을 무치고 국을 끓여도 아이들은 도통은 손을 대지 않는다.


시어머님이 보내주신 각종 채소들을 없는 솜씨로 요리를 했다. 무청시래기를 삶아서 된장에 조물조물 무치고 시금치도 마늘 없이 조선간장과 들기름만 넣고 고소하게 버무린다. 두부 잔뜩 넣은 청국장에 총각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엄마 아빠는 행복한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앞서 적은 시래기, 시금치, 청국장 담은 그릇엔 젓가락은 한산하고 애들 입맛에 맞춘 계란말이나 계란찜, 햄구이, 김 등에만 손이 바쁘다

 

아이들이 먹기에 난이도 있는 음식인 것은 알지만 꾸준히 해주고 있는데도 여전히 먹기를 거부하고 있는 모습에 울화가 치밀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날도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 동동 거리며 몇 가지 반찬을 해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어묵국도 맛있고 장조림도 밥반찬으로 딱이었다. 문제는 시래기무침이었다. 아이들 맛이나 보라고 반찬 접시에 딱 한 젓가락만큼만 놔두었다. 딸은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한 두 개 집어 먹었다. 평소 시래깃국에 넣은 그 시래기라고 하니까 다른 반찬이랑 같이 우걱우걱 씹어 넘겼다.


아들은 그렇지 않았다. 자기 좋아하는 반찬만 골라먹은 후 남은 나물들은 손도 대지 않은 채 식사를 마치려 했다.


-나는 국에 있는 시래기만 좋아해. 이렇게 초록색인 것은 먹기 싫어.

-나는 초록색은 다 좋아하는데(공룡, 곤충 등) 채소는 초록색 싫어.

-시금치도 싫어. 파도 싫어. 다 싫어.


그날따라 아이의 반찬 투정에 태연했다. 아이의 징징거리는 소리에 곁에서 덩달아 짜증 부리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물 몇 개 먹어야 하냐고 방으로 들어오는 아이에게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으라고 이야기했다.

겉으로는 차분한 척! 내가 할 일을 마치고 식탁에 갔는데 여전히 반찬을 바라만 보고 있는 아이에게 그릇을 치우라고 말했다. 그리고 움직였다.


쓰레기봉투를 찾은 후 서랍장을 열어 보물상자처럼 쌓여있는 모든 간식들을 꺼냈다. 이런 것이 여기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쌓여있는 간식들이 2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로 2개가 나왔다. 며칠 전에 산 신상 곤충 젤리와 껌들도 다 내 돈 주고 샀는데 내 손으로 쓰레기봉투에 넣으려니 마음이 쓰렸다.


-버리는 척만 할까?

-어디에 숨겨 두었다가 나중에 나라도 먹을까?


쓰레기봉투가 가득 찰수록 이미 벌어진 일 끝을 맺자는 생각에 꽉꽉 눌러 담았다.

미리 예고하지 않은 점은 미안했지만 홧김에 한 행동이긴 했어도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겠다는 마음이었다.


-엄마는 이제 너희들에게 간식을 주지 않을 거야. 그동안 학교, 유치원 갔다 오면 과자나 사탕을 줬는데 이제 그러지 않을 거야. 이유는 간식을 먹으니까 밥을 제대로 먹지 않기 때문이야. 밥을 먹더라도 입에 맞는 달고 짠 음식들만 먹고 있어서 영양 섭취가 잘 안 되고 있어. 엄마가 저녁마다 해주는 여러 반찬 중에 특히 채소 반찬을 잘 먹길 바라. 간식은 너희들이 다양한 음식을 잘 먹게 되면 그때 다시 주도록 할게.


11월 27일 저녁 우리 집에서 간식 혁명이 일어났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간식을 스스로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사 먹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도할 수 있었다. 만약 아이들이 고학년이었다면 엄마 아빠 앞에서는 알겠다고 하겠지만 자기 용돈으로 충분히 사 먹을 수 있을 테니까... 어쩌면 식습관을 바꾸는데 지금이 적기일지도 모르겠다.


첫째가 어릴 땐, 아이가 너무나 작고 가냘파서 뭐라도 많이 먹으면 좋겠다 싶었다. 밥도 잘 안 먹어서 김밥을 해줘야 겨우 몇 개 먹고 주걱에 붙은 밥알 떼먹는 것을 좋아해서 일부러 주걱에 밥을 떠주기도 했다. 입이 짧아서 정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젠 라면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한다.


둘짼 이유식부터 가리는 음식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첫째는 먹지도 않는 치즈나 김치도 잘 먹어서 대견했는데 얘는 뱃골이 작아도 너무 작다. 배가 쉽게 부르고 금방 꺼진다. 이 아이도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라면이다.


간식 혁명 이후 이틀째. 첫날은 하원 후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아이가 사탕을 찾아서 주머니에 하나 남은 마이*를 꺼내줄 뻔했다. 다행스럽게 집에 가니 공격성(?)이 조금 잦아들어 저녁 먹기 전에 치즈 하나와 직접 만든 요구르트 한 컵을 줬다. 그래서 그랬을까?

저녁 식사 시간을 6시 반으로 당겼는데 식사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밥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씻느라고 조금 늦게 온 아빠가 먼저 먹으라고 하자 허겁지겁 밥에 달려든다.

효과가 있었다.

무생채도 오독오독 씹어 먹고 문제의 시래기 무침도 밥 위에 올려서 한두 개 먹었다. 한없이 늘어졌던 둘째의 식사 시간도 단축되었다. 물론 채소 반찬을 다 먹진 않았지만 군말 없이 알아서 먹는 모습이었다.


한때 나도 젤리만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슨무슨 깡으로 끝나는 과자는 다 좋아한다. 아이스크림, 크림빵은 거의 중독된 것처럼 좋아하던 때도 있었다. 그런 간식들이 순간의 허기를 달래줄지 몰라도 마음의 허기는 달래 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저렴하고, 고열량인 데다가 합성첨가물이 잔뜩 들어있는 간식을 내가 좀 편하자고 아이들 입에 먼저 들이밀었던 지난날을 철저히 반성한다. 결국 그 입맛을 만든 사람도 나니까...


간식 혁명! 시작했으니 후회하지 않는다.

실행은 빠르고 단호하게!

3일 차인 오늘이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게 일단 아이들을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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