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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Dec 04. 2023

다정한 사람

다정한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

주말에 시댁에 다녀왔다. 어머님 생신이기도 하고 김장도 해야 했다. 해마다 김장철이면 주로 남편이 혼자 가서 하거나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아파서 참여를 못했는데 올해는 가게 되었다. 커다란 김치통을 미리미리 씻어서 말렸다가 차에 잘 실었다. 그 많은 배추를 다 절이고 양념도 손수 만드시느라 고생하셨을 어머님께서는 힘드시다는 내색도 없이 오랜만에 온 우리들을 반겨주셨다. 아이들은 이제 내가 보지 않아도 즈이들끼리 잘 논다. 작은방에서 쑥떡거리며 노는 틈을 타서 곧바로 김장에 돌입했다.


절인 배추를 거실로 옮겨 와서 한쪽에 놓고 김치통 뚜껑을 모두 열었다.

양념을 버무릴 훌륭한 매트도 준비되어 있었다. 커다란 솥단지 가득 양념을 퍼와서 매트에 쏟으면 이제 치대기만 하면 된다. 가만히 앉아서 절인 배추를 부채처럼 펼치고 양념을 묻혔다. 바로 먹을 김치는 양념을 아낌없이 치대고, 두고두고 먹을 김치는 시원하게 먹으려고 양념을 듬성듬성 묻힌다.

오랜만에 하니 이제 맞나 싶었지만 벌써 몇 년간 김장에 도가 튼 남편이 익숙하게 하는 모습에 덩달아 나도 열이 붙어 열심히 했다. 그렇게 세 시간 조금 안되게 정리까지 마무리를 했다. 우리 가족, 어머님네, 둘째 형님네 김치까지 하니 100 포기라고 했던 절인 배추가 모두 동이 났다.


올해는 내 할 일을 다 한 것 같아 마음이 편했다. 해마다 김치를 받아 우리 가족뿐 아니라 친정아버지까지 나눠 드렸는데 적어도 내 할당량은 채운 것 같았다. 그렇게 조금 누워 잤다. 시댁은 오래된 단독주택이라 공기가 달랐다. 어려서 부터 찬 공기엔 이골이 난 터라 별 상관없나 했는데 저녁을 먹고 바로 잠자리레 들어 10시간 이상 푹 잤는데도 개운치가 않았다.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도 일어나기 버거워서 다리로 이불만 휘휘 감아 모로 누워있었다.

동이 트고 아이들도 일어날 때쯤 나도 할 수 없이 일어났는데 오한이 들기 시작했다. 어머님께서 차려주신 아침밥을 먹고 짐을 챙겨 나와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 멀었다.

잠은 오지 않고 어디선가 스멀스멀 들어오는 겨울바람에 히터를 들었음에도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잠을 자다 말다 반복하기를 서너 번. 드디어 집에 들어와서 옷도 벗지 않고 바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감기였다. 안 그래도 목이 까끌거리고 콧물이 나길래 약을 먹고 있었는데 된통 오한이 들었다. 자고 있는데 남편이 약을 먹으라며 챙겨 주길래 온갖 인상을 쓰면서 약을 먹고 다시 잤다. 오들오들 사지가 덜덜 떨리던 시간이 지나고 조금 편안해지자 잠이 들었고 한낮에서 저녁으로 하루가 저물었다.


누워 있으니 세상 모든 소리가 뚜렷하다.

베란다에서 세탁기는 쉴 새 없이 돌아가고 건조기도 장단을 맞춘다. 거실에서는 남편이 딸과 부루마블을 하는지 돈 계산하는 소리, 주사위 굴리는 소리, 말 옮기는 소리가 들린다.

아들은 같이 하다가 싫증이 난 모양인지 곁에서 레고를 하고 있다. 없는 레고 조각을 찾느라 여기저기 뒤지면서 찾아달라고 떼쓰는 소리가 귀에 꽂혔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눈을 껌뻑이다가 좌우를 살폈다. 어제오늘 빨래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아 개키려고 일어났는데 어지럽다.


다시 모로 누워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려는데 아이들 어릴 때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100일, 돌 사진, 때마다 찍은 가족사진, 연애할 때 찍었던 사진, 아빠 엄마 사진들이 작은 액자에 

그 자리 그대로, 그 시간 그대로 멈춰 있다.


바깥은 일요일 저녁이라 시간이 잘만 가는데 혼자 누워있는 시간은 참으로 느리다.

아이들, 남편이 하는 한마디에 나도 한마디 덧붙이고 싶지만 아직 내가 깨어났는지 모르는 아이들은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건조기랑 세탁기가 멈춰서 이제 일어날까 싶었는데 알람 소리에 남편이 안방으로 들어와 빨래를 가득 안고 나갔다. 그 틈에 딸이 내 얼굴을 살핀다.


-엄마 괜찮아?

-응.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자 딸은 다시 나갔다가 한참있다 다시 돌아온다.

내가 아프면 비상이라더니 나 없어도 자기들끼리 밥도 잘 지어먹고 잘 씻고 잘 논다.

안방과 거실을 왔다 갔다 하는 딸과 달리 아들은 안방에 발길을 딱 끊고 자기 논다고 정신이 없다.

조금 얄밉지만 아플 땐 건드리지 않는 게 도와주는 거니까 괜찮았다.

아플 때면 이렇듯 혼자여서 다행이지만 그럼에도 쓸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자나 싶었는데 잠자리 들어가기 전 딸이 다시 곁으로 오더니 그림 한 점을 건네준다.


-엄마 아프지 마.

-고마워. 엄마가 너무 이쁜데!?



큰소리로 아이들을 채근하며 방으로 들어간 남편이 한참을 지나고 나오지 않아 거실로 나가보니 소파도, 식탁도 깔끔하다. 아이들 장난감이나 책으로 어수선하지 않고 정리가 잘 되어 있다. 물도 주전자 가득 끓여놓았고 시댁에서 가져온 각종 반찬과 김치도 제자리를 찾았다. 한번 더 입어도 되는 아이들 겨울 옷은 잘 개켜져서 서랍 속에 들어가 있고 음식물 쓰레기 하나 없이 개수대도 깔끔하다.


딸은 마음을 쓰고 그려서 표현하다.

아들은 제 마음이 뭔지 몰라 소리치고 묻고서야 발견한다.

남편은 제 할 일을 다 한다. 표현 방법도 제각각이다.

식탁 한편 아이가 몇 시간 동안 만든 우주선이 놓여 있다. 엄마한테 보여주려고 자기 방에 갖고 들어가지 않고 식탁에 둔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다가온다.


다정한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

나를 아프게도 힘들게도 하는 사람들이지만 결국엔 나에게 사랑으로 남을 사람들에 내 곁에 있다.

약 기운이 아니라 다정함이 나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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