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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Dec 25. 2023

크리스마스 대작전

이토록 어려운 산타 지켜주기 미션

드디어 끝이 났다.

길고 길었던 성탄절 연휴가 끝이 나고 아이들이 잠들었다. 이번 연휴 3일뿐만 아니라 12월 내내 크리스마스였던 것 같은 피로감이 몰려들었지만 그래도 끝끝내 지켰다. 무엇을? 산타할아버지의 존재 말이다.


12월이 되자 아이들에게 산타 할아버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물어봤다. 딸은 비밀이라면서 산타 할아버지만 볼 수 있게 편지로 쓴다고 했다.

음.. 그래 알았어( 알아내기 쉽지 않겠군. 계속 물어봐야지) 하며 아들에게 물어봤더니 의외의 대답을 했다.


-이 세상에 산타는 없어!

-(헉!)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작년에 산타 할아버지가 준 선물 포장지가 아빠 방에 있는 걸 내가 봤거든!


아뿔싸! 아들의 관찰력을 무시한 대가가 1년이 지나 쓰나미가 되어 돌아왔다.  사건의 경위는 간단하다.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포장하고 남은 포장지를 처리하지 않고 작은 방 책장 위에 둔 것이다. 겨우 110cm도 안 되는 녀석이 그 위까지 볼 줄이야. 방심했는데 아이들의 관찰력과 기억력은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어른과는 비교가 안된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뭐 포장지는 같을 수 있잖아. 그렇다고 산타가 없다는 것은 너무하지.

-그래도 산타는 없어. 엄마 아빠가 산타야.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으니까. 아이들의 마음을 모두 알고 그 아이들이 갖고 싶은 것을 다 아는 사람은 산타가 아니라 엄마 아빠잖아.(정확히 이런 말은 아니었지만 이런 뉘앙스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우리 아들은 이제 7살이다. 유치원 형님반의 위용이 이런 식으로 드러날 줄은 몰랐다. 소리 지르고 떼쓸 줄만 알았는데 의심이 많은 아이가 논리력까지 갖추니 할 말이 없었다. 올 1년 내내 엄마, 누나, 아빠까지 가족 모두와 말싸움을 시도 때도 없이 치른 아이의 말빨은 어휘력, 문장력, 논리력 삼박자를 갖추며 일취월장했나 보다. 산타를 믿을 수 있는 아이들만의 특권을 이렇게 스스로 무너뜨리는 이유는 뭐 알 것도 같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선물 받기는 힘들다고 판단했을까? 이런 면에서는 정직하니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산타 유무 논쟁은 12월 내내 지속되었다.


며칠 전 유치원에서도 크리스마스 행사가 있었다. 학부모 단톡방에 선생님께서 영상을 하나 올려주셨는데 대강 보고 말았다. 산타로 변신한 교감선생님께서 선물 꾸러미를 들고 교실에 들어가는 영상이었다. 소리를 켜지 않고 봤기에 별생각 없이 그냥 아이들 좋았겠거니 했는데 나중에 다시 본 영상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교장선생님이다! 교장선생님이죠? 산타 아니죠?


마냥 웃으며 신기해하는 아이들 모습들 틈새로 가시처럼 삐죽이는 소리의 주인공은 다시 들어도 우리 아들이었다. 교장선생님은 아니고 교감선생님께서 애써 목소리까지 변조하시고 수염에, 의상까지 완벽한 모습으로 등장한 바로 그 순간! 산통을 깨버리는 그 소리를 하는 아이가 우리 아들이었다니.


크리스마스를 맞아 교실도 대변신! 교감 선생님이 선물을 가득 들고 멋지게 등장하며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되새기려 기획했을 크리스마스 행사를 망친 주인공이 내 아들이라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물어봤다.

-오늘 산타 할아버지 보니까 어땠어? 정말 신기하다! **이네 반에 산타 할아버지가 오시다니!

-산타 할아버지 아니야! 교장선생님이야.

-(헉)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내가 봤는데 빨간 옷 속에 다른 옷을 입었어! 그리고 목소리도 많이 들어본 목소리야.

-산타 할아버지가 추워서 옷을 많이 껴입으셨나 보지.

-수염도 가짜야. 얼굴에 붙어 있지 않았어.

-그랬어? 면도를 하셨나 보지. 수염은 멋으로 달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야! 확실히 가짜야. 애들도 다 가짜래.


아들은 진심으로 산타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가 본 것만 진짜라고 생각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마냥 아니라고 할 수 없기에 일단 넘겼다. 그리고 이번 크리스마스는 보통 준비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일단 선물은 아이들이 평소에 관심 있던 것들을 추측해서 주문했다. 포장지도 마트 장보기할 때 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 나는 것으로 주문했다. 선물들이 착착 배송이 되면 아이들 눈을 피해서 숨겼다가 전날 포장하려고 했다. 그런데 간과한 것은 둘째는 나와 같이 집에 오지만 딸은 나보다 빨리 온 다는 것이었다.


집에 먼저 도착한 딸이 보낸 문자..

-엄마 이거 뭐야?

딸이 택배 상자 송장까지 읽어볼 줄은 몰랐다. 동생 줄 선물이라는 것을 눈치챈 딸은 자기 것은 없냐며 눈물을 글썽이길래 동생은 혹시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 못 받으면 실망할까 봐 주문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일단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음날 마트 배송이 왔는데 너무나 적나라하게 포장지가 마트 배송 포장지 위에 꽂혀 있었다. 아들은 그것을 보자마자 집어 들고 칼싸움을 시작했다. 이게 뭐냐는 딸의 질문에 2차 위기에 빠졌지만 학교에서 쓸 거라며 말을 돌렸다.


그래 몰랐을 거야.. 눈치 못 챘을 거야..


애써 위로했다. 정말 눈치 못 챘을까?

아이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산타 할아버지 드릴 거라면서 편지도 예쁘게  꾸며서 쓰고 있었다. 산타를 믿지 않는다던 아들도 편지를 쓰고 있길래 말은 그렇게 해도  짜식.. 기대하고 있었구나.

눈에 보이지 않아도 있는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만화 영화도 보면서 크리스마스이브가 저물었다. 남편은 더 철저했다. 어플까지 사용해서 산타가 우리 집 거실에 있는 사진을 준비했다.

그래도 믿지 않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참이었다.


대망의 크리스마스 날 아침!

아이들의 즐거운 소란을 들으니 중요한 것은 산타의

존재가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선물이면 된 것 같았다. 나중에 읽어보니 아이들이 원했던 선물과는 약간 오차가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어 하며 크리스마스 대작전은 끝이 난 것 같다. 아이들이 이토록 허술한 엄마 아빠의 작전에 속았는지? 아니면 속는 척을 하는 건지는 알 길 없다. 일 년에 한 번 착한 아이들에게만 준다는 선물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주고 싶은 마음과 언제까지고 우리 곁에 작은 아이로 남길 바라는 마음이 뒤섞였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구체적인 선물을 요구하는 아이들의 뻔뻔함에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만큼은 능청을 떨며 산타 할아버지가 있다고 우길 수 있는 이런 시간들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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