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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by 다시

모든 인생은 고통이다.

-쇼펜하우어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이라지만 정말 한 치 앞도 모르고 살았다. 지난번 글에서 완벽한 주말 어쩌고 저쩌고 늘어지게 한갓진 글을 썼는데 그 글을 쓴 지 채 며칠이 되지 않아 일이 터졌다.


수요일 오후 퇴근 시간이 되었는데 아들이 내 교실로 오지 않고 바로 하교했다는 알림톡을 받았다.

그전날 유독 버릇없이 행동하고, 누나와 엄마에게 짜증을 부리는 아들을 혼내고 난 후 냉전이 이어지는 와중, 같이 하던 하교를 먼저 해버리니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집에서 기다리고 반성하고 있을 테지. 교실 정리를 천천히 한 후 집으로 가서 아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려고 들어섰는데 덜렁 쪽지 하나만 있다.


"엄마 나 자전거 타고 올게. 6시 35분에 들어오고."


이 녀석이 엄마 허락도 안 받고 또 나갔어?

속 안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마음 하나.

그래 놀아라! 놀아! 마음 하나.

워낙 예상 밖의 일을 많이 하는 아들인 탓에 크게 놀라지 않았기에 아파트 장터에서 과일도 사고, 청소기도 돌리며 퇴근 후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과일을 사러 가던 길에, 그래도 한번 아이가 놀고 있을 놀이터에서 몰래 보고 올까? 하다가 냉전 중인 사이를 다시금 떠올리며, 가던 발길을 집으로 돌렸다.

2학년이 되고부터 놀이터에서 노는 맛을 알아버린 아들은, 최근 들어 자전거를 탈 때도 아슬아슬 차도와 인도를 넘나들었고, 놀이터에서 놀 때도 원형 미끄럼틀 위를 성큼성큼 올라타고 있는 장면을 볼 때가 많아 경고를 수차례 날렸던 차였다.


특히 횡단보도에서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가지 않고 타고 가는 장면이나, 놀이터와 인도를 넘어 아파트에 출입하는 많은 차들이 들어오는 찻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땐 자전거 금지령까지 내렸었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을 받아냈기 때문에 믿었었다.


잘 놀고 있을 거라고, 지금 엄마한테 혼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그렇게 위험하게 놀고 있겠어! 저도 양심이 있으면 금방 들어오겠지? 속 편한 생각을 하며 샤워하고 시원하게 씻은 복숭아 하나를 씹어 먹고 있을 때였다.


음-------음------

휴대전화 진동이 울려 들어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평소 같으면 받지 않았겠지만 왠지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예~ 여기 놀이턴데요. 애기가 많이 다쳐서 구급차를 불렀어요. 와보세요.


모르는 아저씨의 느릿한 말투였다.

말투로는 하나도 안 급해 보였지만 귀에 내려 꽂히는 낱말은 구급차! 많이 다쳤다! 놀이터!였다.


-네!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대충 운동복으로 옷을 챙겨 입고 나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바로 앞에서 놓친 엘리베이터가 내려가고 있을 때, 머릿속으로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어디가 다쳤다는 거지?

뭐 하다 다쳤을까?

구급차까지 부를 정도면 심각한 건가?

놀라긴 했지만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생각에 나름 침착하게 놀이터로 갔다.

아이를 본 순간 침착함은 산산이 깨져버렸다.


아이는 놀이터 옆 공터 연석에서 혼자 손목을 움켜쥐고 앉아있었다. 주변에 또래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순간 확대되어 보니 반듯하게 뻗어있어야 할 손목이 흐물흐물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벌게진 얼굴로 엄마를 보자 울상을 짓는 아들을 보니 탄식이 절로 나왔다.


절대 괜찮지 않을 상태의 아이를 보면서 괜찮아? 어쩌다 그랬어? 물어봐도 달라지지 않을 질문만 연신하고 있었다.


사람 팔이 저렇게 늘어질 수 있구나, 길게 빼서 힘없는 가래떡처럼 손목이 늘어져 있으니 아이가 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손으로 만지려고 하니 소리를 질러 부축하기도 어려웠다.


옆에 계시던 아이의 유치원 친구의 할아버지께서 전화를 주셨던 것이다.


-구급차에서 연락 왔어요. 받아 보세요.


전화기를 건네주셔서 받아보니, 지금 계속 가야 하는지, 어쩌다 그랬는지, 상황을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일단 나도 잘 파악을 못한지라 놀이터에서 놀다가 그랬다고 하고, 어서 와달라고 이야기했다.


아이가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놀고 있다가(지탈이라고 부르는 놀이) 술래를 피하려고 미끄럼틀 연결통로 옆 손잡이를 잡고 매달렸는데, 힘이 빠져서 손이 미끄러졌고, 다리는 연결봉 사이에 끼어 있어서 다리로 떨어지지 못하고 손목으로 떨어져 짚다가 손목이 꺾였다는 것이다.


대강 상황 파악을 끝냈을 때쯤, 구급차가 도착했다. 아이 상태를 본 후 구급차에 올랐고, 아이가 많이 아플 것 같다면 안전벨트까지 채워주셨다. 한 분의 남자 구급대원께서는 아이 손목을 부목으로 고정해 주셨고, 다른 여자 구급대원은 사고 발생 위치, 원인, 다른데 아픈 곳은 없는지, 집주소, 아이 나이, 아이가 다니는 학교, 질병 유무, 엄마 전화번호, 직업까지 상세하게 물어보는 중에 병원에 도착했다. 아이 덕분에 생전 처음 구급차를 타보다니 새로운 경험이 전혀 짜릿하지 않았다.


가는 내내 아이는 울지 않았다. 손목이 에스자로 구부러져 있는데도 평소 작은 상처에도 오두방정을 떨던 아이의 나름 침착한 모습이 오히려 새로웠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은 천천히 가도 5분을 넘기지 않는 거리지만 하필 시간대가 퇴근 시간대였고, 구급차도 하필 가장 붐비는 길로 가서 앵앵~ 구급차 사이렌을 켰고, 그 소리에 다른 차들이 양보해 주는 티브이에서나 보는 장면을 실제로 겪으며 응급실에 도착했다.


사고 발생 위치, 원인, 아이 나이, 학교, 앓고 있는 질환 등등, 구급차 안에서 계속 대답했던 내용을 다시 물어보기에 또 대답했다. 아이는 멀찍이 의료진들을 마주 보며 침대에 앉아 있었고, 나는 그 사이에 걸리적거릴까 봐 한 발치 떨어져서 보고 있었다.


놀다가 난 땀인지, 아파서 흘리는 진땀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이는 얼굴이 여전히 벌갰고, 온몸이 땀으로 번들거렸다. 시원하게 좀 닦아주고 싶었다.

물 한잔 따라 주고 싶었다.


손목을 이리저리 만지는 의사 선생님들 질문에 아이는 정확하게 이야기했다. 엑스레이를 두어 번 찍고, 응급실로 온 후 다시 시티를 찍고, 응급실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좀 진정이 됐는지, 이제 목이 마르다고 해서 물을 한잔 먹어도 되는지 물어보니 아직 안된다고 해서 기다리기를 몇 분. 드디어 돌아다니기를 멈추고, 침대에 앉아 소란을 벌이며 일단 코로나 검사를 했다.

그 와중에 친절한 응급실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짜증 + 불안해하는 아이를 잘 다독여 주셔서 입원실까지 왔다.


응급실 의사 선생님 말을 요약하자면

손목뼈 두 개 골절되어서 내일 오전에 수술을 할 거고

오늘 저녁까지는 먹되 금식을 해야 한다.

정확한 것은 내일 과장님이 회진돌 때 설명해 주실 거다.


의료적 지식 하나 없는 내가 봐도 그냥 단순히 금이 간 정도는 아니었다. 엑스레이 사진을 봤을 때 팔에서 손목으로 올라가는 굵은 뼈 두 개가 모두 어긋나 있었고, 하나는 완전 뚝! 떨어져 있었다.


도대체 어떡해야 저렇게 다칠 수가 있는지, 뼈가 저렇게 허술하게 부러질 수 있는지 의아했지만

당장 아이가 겪고 있는 고통을 덜어줄 수 없어 그제야 아려왔다.


놀이터 구석에 앉아서 손목을 잡고 울고 있는 아이가 다른 아이도 아니라 내 아이였다.

그동안 수백 번을 같이 갔던 그 놀이터에서, 위험할 것 하나 없는 그 익숙한 장소에서 이렇게 크게 다칠 거라고 상상도 못 했는데, 역시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 어떠한 이유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었다는 것을 체감했다.


내내 놀다가, 병원에 와서 돌아다니면서 검사를 하고, 질문에 답했던 아이는 물 한잔을 마시더니 피곤했는지 입원실에서 한숨 늘어지게 잤다. 오른팔엔 수액 바늘, 부러진 왼쪽 팔은 붕대를 칭칭 감고 태연하게 자고 있는 아이의 땟국물 가득한 얼굴을 보니 화도, 걱정도, 안쓰러움도 아니고 당장 생각나는 것은

내일 출근 어떡하지? 였다.


아이가 아프고 다쳤을 때 가장 먼저 나는 생각이 출근이라니.

3일 있던 가족 돌봄 휴가 중 1일은 지난봄에 미세기관지염 걸린 아들 때문에 썼고, 1일 중 4시간은 아이들 공개수업 때문에 썼다. 온전히 남은 1일을 쓰면 되지만,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수업 준비도 안 해두었고, 아직 1학년 우리 반 아이들이 담임 없이 하루를 잘 보낼 수 있을까 뼈 부러진 내 자식보다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7월 방학을 1-2주 앞둔 이 시기!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작년은 이 맘 때 아이들 장염으로 나까지 장염에 걸렸었고 그보다 더 어릴 땐 때아닌 열감기, 감기, 폐렴 등 다양한 호흡기 질환으로 꼭 아팠다.

아이들 아플 때면 아~ 방학이 곧 오려나 보다. 생각할 정도였다.


학교야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 눈앞의 내 자식이 더 중하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불현듯 깬 아들이 자연스럽게 오른쪽 팔을 들어 올렸고, 소리를 꽥 질렀다.


그래. 모든 인생은 고통이라고 했다.

본격적인 고통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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