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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미니 Mar 23. 2022

이곳에 오고 난 후, 비 오는 날도 좋아졌다 (2)

우기를 이기는 데도 스킬이 필요해

밴쿠버에 산 지 어느덧 4년 차. 이제는 비 오는 날도 좋아졌다.


만약 내가 비를 여전히 좋아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곳에서 겪은 네 번의 우기를 버텨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거다.


밴쿠버는 9월 중순쯤부터 조금씩 비가 오기 시작하고 10월이 되면 하루 종일 맑음이었던 날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비가 거의 매일같이 내린다.

일주일 일기예보를 확인하면 ‘일요일 비, 월요일 비, 그리고 비, 비, 비, 비, 비…’.

그리고 그다음 주도 또 비, 비, 비, 비…

‘어휴 또 계속 비네’

아무리 비 오는 날이 좋아졌다 하더라도 비구름만으로 뒤덮인 일기 예보가 썩 달갑진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내 극복할 수 있는 건 이따금씩 깜짝 선물처럼 내려주는 따사로운 햇살과 맑은 하늘이 있어서다.

분명 비가 8-90% 확률(100%인 날도 있음)로 올 거라는 예보가 있던 날인데 갑자기 아침에 해가 쨍~하고 뜬다든지, 방금 전까지 흐리고 비 내리다가 어느 순간 파란 하늘이 저 멀리서부터 성큼성큼 다가온다든지 하는 날이 꼭 있다. 그런 날엔 하던 일 다 제쳐두고 산책이든 뭐든 우선 밖에 나가 쏟아지는 햇살을 쬐며 일광욕을 한다. 아니 ‘해야만 한다!’

이게 바로 밴쿠버 가을, 겨울 날씨의 매력이라면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해서 해 뜰 날만 기다리고 있자니 그건 너무 기약 없는 희망 고문이고… 나에겐 우기를 버텨낼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하나하나 자연스럽게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듣고 보면 참 별 거 아닌 것들이지만 내 밴쿠버 라이프에서 매일같이 꼬박꼬박 챙겨 먹는 비타민D와 더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다.


우기를 이겨내는 나만의 방법

첫째, 우중충한 실외와 대비되는 아늑하고 따듯한 색감의 집안 분위기 조성하기

비가 오면 바깥은 회색빛이 되고 어두워지는데, 이때 집 안 조명이 주광색이면 분위기가 조금 차갑게 느껴져서 조명을 따듯한 느낌의 전구색으로 골랐다.

여기에 가구까지 따스한 색감이면 금상첨화! 물론 내가 처음에 이곳에 이사 와서 가구를 들일 때 날씨까지 고려하며 산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내 취향에 따라 고른 가구들이 이곳 날씨와 잘 어울리게 되었다. 얻어걸린 것인가 아니면 무의식 중에 발휘된 내 센스 덕분인가?

나무색과 검은 계열 색감의 가구가 흰 벽에 채워지며 특히 가을, 겨울에 집안 분위기를 따듯하고 아늑하게 완성시켜 주었다.

아늑한 분위기로 조성한 내 최애 아지트


둘째, 재즈를 배경 삼아 커피 마시기

재즈와 커피는 내가 밴쿠버에 와서 더욱 사랑에 빠지게 된 두 가지다.

비 오는 날 주황빛 조명 아래 재즈를 틀고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 행복 엔도르핀이 퐁퐁 샘솟는다.

이때 손엔 책이 항상 들려있…으면 너무나도 좋으련만 어떨 땐 책, 어떨 땐 핸드폰, 또 아이패드가 들려있기도… 하하

아무렴 어떤가! 비 오는 날 재즈 음악은 분위기 조성에도 찰떡, 토독토독 창문에 떨어지는 빗소리와도 정말 찰떡이다.


셋째, 비 맞으며 걷기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9월부터 4-5월까지는 우기가 지속되다 보니 이곳 사람들은 비가 아무리 많이 내려도 야외에서 러닝을 하고 운동을 한다. (*이곳에 오고 난 후, 비 오는 날도 좋아졌다(1) 참고)

아이들은 비를 맞으며 공놀이를 하고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정말 할 거 다 한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비가 와도 여전히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며, 퇴근길에 그 자전거를 타고 또 아이를 픽업하러 간다. 비가 와서 못한다는 핑계를 대기엔 비가 너무 지겹게 내리기 때문에 이렇게 평소의 일상을 그저 이어갈 수밖에.

처음에는 이런 광경이 너무 생경했다. 한국에서는 비가 조금만 와도 우산을 꼭 썼었고, 비가 제법 많이 오는 날 우산이 없으면 ‘편의점에서 투명 우산을 구매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집에 그렇게 쌓인 우산이 벌써 몇 개인데…’하는 게 그 순간만큼은 그것이 지상 최대의 고민이었는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처음에 밴쿠버에 왔을 때는 당연스레 우산을 챙겨 다니며 비가 조금이라도 오면 바로바로 우산을 펴서 썼었다.

재밌는 건, 우산을 들고 있는 내 손이 민망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우산을 쓰지 않더라는 것…! 그래도 비 맞는 데 적응이 되지 않았던 나는 조금이라도 비가 오면 꿋꿋하게 우산을 썼다. 물론 내가 우산을 쓰건 말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이 1년, 2년 흘러 어느덧 밴쿠버 살이 4년 차가 되니, 어느 순간부터인지 나도 자연스럽게 우산을 잘 안 챙기게 됐고 이제는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이 아니면 우산이 조금 귀찮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히려 이제는 우비에 장화까지 신고 빗 속을 거니는 걸 즐긴다.

우비에 비가 타닥타닥 떨어지는 그 소리도 참 좋고 남편이랑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함께 비 오는 거리를 걸으면 기분 전환도 되고 머리가 새삼 맑아지는 기분이다.

그동안 이 매력을 모르고 산 것이 아깝기까지 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는 왜 그렇게 비 오는 걸 싫어했는지, 비에 몸이 조금이라도 젖는 게 그토록 싫었는지 잘 모르겠다.

한국 여름 비는 당연히 덥고 습한 공기 탓에 꿉꿉하고 찝찝하니 그럴 수 있다지만 가을비나 봄비는 즐기기 나름이었는데 내가 그걸 잘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이곳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다시 한국에 들어가서 살게 될 때는 한국의 비 오는 날도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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