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쿠버’를 아시나요?
‘레인쿠버’를 아시나요?
몇 년이 될지는 모르지만 캐나다에서 못해도 4-5년은 살게 될 거라는 당시 남자 친구(현재 남편)의 말에 설레는 마음으로 밴쿠버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캐나다 밴쿠버’에 대해 들어보기만 했지 여행이든 뭐든 직접 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캐나다라는 나라 자체는 나에게 그저 ‘추운 나라. 친절한 나라. 시민의식이 높은 나라. 왠지 동계 스포츠를 다 잘할 것만 같은 나라’라는 인식이 다였다. 아! 한 가지 더! 단풍국도 있다.
캐나다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도 이 정도뿐인데 밴쿠버라는 도시에 대해 아는 바는 당연히 더 적었다.
음- 어느 정도였냐면 만약 ‘밴쿠버에 대해 아는 대로 쓰시오.’라는 문제가 주어진다면 이렇게 썼을 것 같다.
1. 많은 한국인들이 이민해서 사는 곳
2. 날씨 좋고 공기 맑은 곳
3.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에 늘 손꼽히는 곳
4. 몇 년 전 동계올림픽이 개최된 곳
고작 이게 내가 아는 전부였다.
어쨌든 살기 좋은 도시로 잘 알려져 있으니 잔뜩 기대에 부풀어 밴쿠버에 대해 검색을 시작했는데 처음 마주하는 이 단어를 보고 ‘응??? 뭐지?’ 싶었다.
그것은 바로… ‘레인쿠버(Raincouver)’라는 단어.
영어 ‘rain’과 ‘Vancouver’의 합성어란다.
두둥. 웬 비???
그렇다. 밴쿠버는 겨울에 비가 많이 내려서 ‘레인쿠버’라고 불린다고 한다.
아니, 캐나다는 눈 많이 오는 데 아니었어?!!
자고로 ‘캐나다’라고 하면 봄, 여름, 가을에는 날씨가 쨍하게 좋다가, 아- 단풍국이니 가을에 알록달록 물든 풍경도 한번 거쳐가고, 이어지는 겨울에는 눈이 펄펄 내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겨울에 비라니…?!
그것도 10월부터 3-4월까지…? 실화냐… 그렇게 긴 기간 동안 비가 계속 온다니…! 정말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아니야. 특정 해에만 그랬다는 거겠지? 에이~ 설마. 그저 많은 사람들의 생각보다 화창한 날이 덜하다는 뜻이겠지?’
내가 잘못된 정보를 찾은 것이길 바라며 다른 블로거들의 글을 여럿 건너 다녔고, 나름 공신력 있게 느껴지는 곳에서도 찾아보았지만 겨울에 비가 주구장~창 온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다. 겨울엔 해 보기가 힘드니 비타민D를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만 보태져 더 이상의 팩트 체크는 마음만 아프게 할 뿐이었다.
나는 원래 비 오는 날을 반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한국에 살 때도 비가 오면 온 세상이 어두컴컴해져 내 마음까지도 우중충하게 만들었다.
가끔 여름에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더위와 함께 묵은 때가 싹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아서 퍽 상쾌한 날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일 년에 몇 번 남짓이었고, 비 오는 날엔 대체로 기분이 땅 속까지 꺼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깊은 우울감에 빠져 한없이 무기력했던 건 또 아니지만 비 오는 날이면 괜스레 약속도 취소해야 할 것만 같았고 감정 기복이 소용돌이처럼 휘감아 나를 뒤흔드는 날도 더러 있었다.
이런 내가 과연 밴쿠버에 가서 겨울을 잘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은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남편까지도 내 걱정을 했다.
심지어 남편은 내가 밴쿠버에 가는 첫 해에 아는 사람도 없을 텐데 날씨마저 흐리고 비까지 내리면 심리적으로 힘들어할 것 같다며 내가 밴쿠버에 가기도 전에 미리 대비책으로 첫해 겨울 한국행 비행기를 예매해두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1년 뒤 글로만 보던 우기를 몸소 겪었고, 남편의 그때 그 호들갑이 민망할 정도로 나는 생각보다 잘 적응하여 꽤나 재밌게 밴쿠버에서의 첫 번째 우기를 겪어냈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