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달콤한 유혹
나는 한국에서 교육대학원 영어교육과 석사 과정을 마치고 임용고시를 보기 위해 공부를 막 시작하려고 온라인 강의를 찾아보고 책을 구매하던 참이었다.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뜻이 줄곧 있었던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내가 살아온 발자취가 나를 그 방향으로 이끌어 온 케이스다.
하필(?) 이때 남자 친구(현재 남편)의 유학 합격 소식을 듣게 됐고, 남자 친구는 나에게 결혼하고 함께 캐나다에 가서 몇 년 사는 거 어떻냐고 제안했다.
“같이 가서 나중에 테솔 공부해도 되고 아니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해도 되고. 물론 같이 가면 좋겠지만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면 좋겠어. 자기는 같이 가고 싶어? 어때?”
워낙 오래 연애한 데다가 남자 친구는 너무 좋은 사람이고 나와 잘 맞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때가 되면 결혼을 하겠지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결혼하고 캐나다에 가서 산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결혼은 언제가 되든 당연히 오케이! 자, 그렇다면 캐나다? 오~~ 캐나다 좋지~!!! 흠… 그런데 이게 마냥 설레 할 일만은 아닌 것 같아 잠시만. 음.
“나한테 시간을 줘. 한번 생각해볼게”
나는 원래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한 데다가 낯선 공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조금 있는 성향인지라, 해외에 나가서 살고 싶어 하는 혹자들의 그 로망이 나에겐 그리 크게 와닿지 않았었다.
한 번쯤 해외에 살아보는 것도 인생에 참 좋은 경험이겠다 싶으면서도 내 안의 불안이 그 티끌만큼의 욕망을 크게 ‘쾅’하고 짓눌러버렸다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이런 내게 남자 친구가 한 제안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한 번도 밟아본 적 없는 캐나다라는 나라에서 내가 잘 적응하고 살 수 있을지, 한국에 가족들과도 떨어져 살아야 하는데 외롭거나 향수병에 걸리지는 않을지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그럼 나는 가서 뭐하지?’
사실 그때 당시 임용고시를 준비하려던 참이기는 했지만 선생님이 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이 나에게 끊임없는 물음표를 던지고 있었고 이게 정말 나의 평생 밥벌이로 최선인지, 내가 잘 해낼 수 있는지, 내 적성이나 성향과 맞는지 등 고민이 많았다.
영어교육 석사 과정을 밟긴 했지만 학습 지도 외에도 내가 생각했을 때 응당 갖추어야 할 ‘자격 요건’이란 것이 여러 모로 많은 것이 ‘선생’이라는 직업인데 내가 과연 학생들의 학교 생활을 지도할 깜냥이 되는지,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줄 준비가 되었는지,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을 감당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불안함이 마음 한구석에 찝찝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뭐 그리 걱정이 많냐’, ‘인생 참 피곤하게 산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본디 나같이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는 당연스러운 일이겠거니 하고 너그러이 봐준다면 고맙겠다.
하지만 나처럼 걱정이 많고 잡다한 생각이 많은 사람이 아이러니하게도 가끔은 충동적인 결정을 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하하- 그렇다.
때마침 흔들리는 다리 위에서 알게 모르게 갈팡질팡하고 있던 나에게 남자 친구의 제안은 너무나도 달콤한 유혹이었고 인생의 또 하나의 서막을 여는 중요한 순간, 그 어떤 플랜 B 같은 것 하나 없이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나라에서 삶을 살아간다는 건 상상만으로는 가늠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다.
넘치도록 많은 생각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들은 이런 일생일대의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오히려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수많은 생각에 압도되어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저질러버리는 거다. 이것도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내가 스스로 발전시켜온 나의 방어기제, 혹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일종의 노력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어차피 인생에 내가 대비할 수 있는 일들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계획대로 인생이 흘러가는 것도 아니니, 이럴 땐 길게 생각할 것 없이 그냥 일단 Go! 하는 거다.
그렇게 우리 둘은 이듬해 봄, 결혼식을 올리고 캐나다행 비행기에 나란히 몸을 싣게 되었다.
‘우선 가보자. 가서 생각하자. 그때 돼서 뭐든 하게 되지 않을까?!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