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을 받아들이는 과정
내 몸에 혹이 있다는 것도, 내가 난임이라는 것도 믿고 싶지 않았고 믿기지 않았다.
사람이란 정말 재밌는 본능을 가진 것이, 내 난소에 혹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내 과거를 돌아보게 되더라.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인과응보로 인한 건 아니지만 이럴 때일수록 인간은 자기 자신에 더 엄격해지고 겸손해진다.
‘내가 나쁜 음식을 많이 먹었나?’
‘바디 버든을 그래도 의식하며 살았는데… 노력이 부족했나?’
‘내가 과거에 꽤 오래 복용했던 피부과 약 때문인가? 혹시 그 부작용인가?’
그러면서 결국엔 자책까지 한다.
‘좋은 음식 위주로 먹을걸… 막창, 패스트푸드 이런 것 좀 덜 먹을걸’
‘병원도 정기적으로 다니고 검사 좀 미리 받아볼걸…’
나는 예전부터 또래 친구들에 비해 꽤나 건강식 위주로 먹으려고 하고, 비교적 안 좋은 음식은 덜 먹으려고 노력하며 산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 모든 건 내 자만이었던 걸까.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괴롭혔던 건 ‘임신 시도를 좀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혹이 이렇게 커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조치를 취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한 선택, 임신을 미루고 인생을 좀 더 즐기자는 선택은 결국 뭘 위한 것이었을까?’ 하는 자책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한들 바뀌는 것 하나 없고 지나간 과거일 뿐인데 아쉬움인지 뭔지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비교적 멀지 않은 과거에 내가 했던 경솔했던 말과 행동을 떠올리기에 이른다.
내가 캐나다에 와서 가장 처음 알게 됐고, 몇 년 동안 정을 나누며 친하게 지낸 언니가 있는데 그 언니는 나를 처음 만난 당시부터 2세 준비 중이었다.
당시에 나이도 30대 중반이었고 임신 시도한 지도 1년이 다 돼 가 언니는 매번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에 대해 초조함을 보였다.
그때는 내가 아이에 대한 생각도 없었고 임신이 이렇게나 “힘든” 건지 현실적으로 깨닫기 전이어서 내 딴에는 언니를 위로한답시고 이런저런 말을 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했던 말들은 임신과 출산에 무지했기에 할 수 있었던(?) 무례한 발언들이었다.
결국 무지가 무례를 부른 것이다.
이번에는 정말 임신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언니의 말에 나는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해서 “언니! 언니 아직 젊어요. 요즘 30대 중반이면 늦은 나이도 아니고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즐기다 보면 언젠가 찾아올 거예요!”처럼 공감 빠진 멘트를 건넨다거나, 또 한 번은 “언니~~ 지금 아기 갖지 말고 저랑 더 놀아요~ 저는 언니 없음 누구랑 놀아요~~”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이기적인 말까지 했었다.
언니는 내가 농담으로 한 말이라는 것도 알고 언니를 좋아해서 하는 말이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나에게 “야아~~~ 나 안 젊어~~” 라며 애교 섞인 투로 받아쳤었는데, 이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과거로 돌아가 나불대는 내 입을 막아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산부인과에서 나와 주차장에 세워둔 차까지 걸어가는 동안 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이 불꽃처럼 번졌다.
내 나이 30대. 한국에 사는 친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직장에 다니고 있거나 이미 엄마가 되어 아이를 열심히 키우고 있다.
모두가 각자 자기 자리에서 멋지게 역할과 임무에 충실하고 있는데 나는 현재 월급 따박따박 주는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이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미래에 투자한다는 마인드로 이것저것 하며 흘려보낸 세월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 말마따나 시간 있을 때 아이나 낳아서 키울 걸. 그럼 애가 벌써 서너 살일 텐데.’ 하는 기분 나쁜 생각이 마치 절대 보고 싶지 않은 길 위에 쥐새끼마냥 뇌리를 훅 하고 스쳐 지나갔다.
그리곤 다시 마음을 바로잡았다.
‘아니지. 아이는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낳으면 안 돼. 그리고 결혼하고 즐긴 신혼 4년 절대 후회하지 않아. 내 인생에 다시는 없을 소중한 시간이야.’
캐나다에 오고 지난 몇 년간 ‘생산적’인 일은 했지만 결국 돈을 ‘생산’하는 일은 못했기에, 그것이 자녀마저도 ‘생산’ 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비난의 화살로 돌려진 것일까?
높았던 자존감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는 것 같았고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찰나의 순간에 온갖 부정적 감정, 단어, 시나리오들이 나를 향해 소용돌이처럼 돌진하는 것 같아 현기증이 났다.
앞으로 나는 이제 어떻게, 뭘 해야 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고, 다 맞춰가던 퍼즐을 갑자기 누군가 와서 통째로 엎어놓은 것처럼 그저 멍했다.
남편은 괜찮을 거라는 토닥임과 함께 일단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정보 좀 찾아보자며 주차된 차를 뺐다.
우리가 한국에 머물기로 계획한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아서 얼른 정신 바짝 차리고 그다음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아 불편한 생각, 감정들은 잠시 접어두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다른 병원을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의사가 있는 병원이면 더 좋을 것 같아서 부모님께 여쭤보기로 했다.
“집에 가서 엄마 아빠한테 여쭤볼게. 지인 중에 산부인과 의사이신 분 있다고 예전에 들었던 것 같아.”
산부인과는 아는 사람이 의사로 있는 병원에 굳이 가고 싶지 않았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굴욕 의자고 뭐고 체면 따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다행히 부모님 지인 분이 산부인과를 아직 근처 동네에서 하고 계시다고 해서 예약을 잡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남편이랑 나는 열심히 인터넷 서치를 했고 심지어 남편은 내 질환과 관련된 최근 논문들까지 찾아봤다.
여러 경로를 통해 공부해 본 결과, 혹이 크면 제거를 해야 하지만 그 크기에 대한 의사들의 소견도 각각 다르고 환자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의사와 환자가 충분히 상담을 한 후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한다. 특히 임신을 원하는 경우, 난소를 제거하면 난소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난소 나이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단다.
혹의 종류는 물혹을 비롯하여 다양하지만 자궁내막증으로 인해 생긴 혹(핏덩어리)의 경우, 한 달에 한번 생리하는 것 때문에 생긴 거라 생리를 하지 않는 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임신이 이 질환에 최고의 치료법이 될 수 있다고들 말한다는 것이다.
참나, 여자라서 한 달에 한번 생리하는 것도 귀찮고 불편한데 생리 때문에 또 병이 생기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다음 생엔 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솟구쳐 올랐다.
이튿날 방문한 지인분의 산부인과에서 또 한 번 굴욕 의자에 앉아, 아니 누워(?) 질초음파를 봤고 자궁내막증으로 인한 난소 낭종이 맞다는 팩폭을 당했다.
혹시 모르니 암 여부를 알아보는 혈액 검사도 추가적으로 해보자고 하셔서 피도 뽑았다.
며칠 뒤,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갔고, 다행히 암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나에게 “불임 병원에 가보셔요”라는 말을 하셨다. “임신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니까 하는 말이에요. 불임 병원에 가서 검사받고 의사랑 상담해서 계획 잡고 하는 게 제일 좋을 거예요.”
순간 머리가 띵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커버 사진 크레딧: Photo by Han Chenxu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