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여행이 하고 싶어?
작년에는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여행을 다녔다. 주말에는 국내로, 연휴가 주어지면 해외로 떠났다. 마치 여행을 다니는 게 진짜 내 직업인 양 시간만 나면 대문을 박차고 집 밖으로 향했다. 결국 연말에 나의 통장이 텅장이 된 후에야 여행을 줄이는 것을 새해 목표로 잡고 잠시 멈췄다.
여행을 다닐 때는 그저 여행 생각만 했는데, 그러고 보니 왜 여행에 집착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곰곰이 그 이유를 써내려가 본다.
시작은 호기심이었다. 원체 귀가 얇기도 하고, 질투가 많은 편이라 부럽다고 생각하면 나도 꼭 해보아야 직성이 풀려서 사람들이 어딜 다녀와서 너무 좋았다고 호들갑을 떨면 나도 엉덩이가 들썩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요즘 넘쳐나는 여행 프로그램들도 한몫했다.) 호기심 하나로 떠난 여행에서 궁금했던걸 두 눈으로 담고 나면, 또 다음 것을 찾아 나섰다.
그다음에는 호기심보단 '사람'이 여행의 이유가 되었다. 처음 가본 유럽에서 스친 모든 사람들과의 대화와 장면이 유난히도 선명히 기억난다. 기억력이 나쁜 내가 몇 년이 지나도 그 모든 게 선명한 이유는 그게 '여행'이었기 때문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여행은 당혹감과 기쁨이 무수히 교차하는 농축된 경험이라 오래 지나도 뇌가 선명하게 기억하는 듯하다. 그걸 깨달은 다음부터는 내 기억에 선명하게 새기고 싶은 사람들과 여행을 떠났다. 좋은 사람들과의 시간과 기억은 삶의 원동력이 되어 늘 고마웠다. 심지어 단 한 번도 떠났던 여행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함께 떠났던 이와 불미스러운 이유로 멀어졌다고 해도 낯선 곳에서 서로를 의지하던 기억은 한 구석에 영원히 저장되어 있다.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아쉬움과 함께.
그래서 결국은 올해도 여건이 되면 또 떠날 예정이라는 변명을 하는 글이다. 생각해 보면 수십 년을 같이 산 부모님과의 수많은 기억 중에서도 여행의 기억이 가장 진하고 선명하다. 수십 년을 데리고 산 나 자신도 여행 안에서 훨씬 가까워졌다. 그러니 또 떠나야겠다. 반복되는 일상과 흐려지는 기억 속에 다시 선명한 기억을 끼워 넣으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