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동 Apr 30. 2024

하고 싶지 않을 이유.

자아실현은 개뿔. 아마 내 꿈은 돈 많은 백수였음이 틀림없다.

이제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자기 계발서를 좋아하는 나. 

독서를 좋아하는 나. 

내적 동기가 풍만한 나.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시는 나.

일을 해야만 하는 나.


다 맞았지만

이제는 다 틀렸습니다. 


이것저것 벌리고 나서 보니

내 꿈은 돈 많은 백수가 틀림없었습니다. 

이토록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걸 보니.




10년 넘게 육아만 하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애들 학교를 보내자마자

4시간 타임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너무 신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을 다녔고

그 뒤로 아이들 공부에 손을 놓을 수 없기에

책 파는 기업에 들어가

영업일도 시작했습니다.


적성에 도저히 맞지 않아서

4년을 버티다 그만둔 뒤로

또 다이소에 일을 나가게 되며

신나게 일을 다니다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 나는 도저히 살림하며 사는 여자는 아니었구나!

난 일을 하며 살아야 활력을 얻는 사람이구나!


하지만 그 사이 아이들과 집은 엉망이 되어 있었고

이래저래 벌려 놓은 일도 있고 

남편 사업을 돕는다는 핑계로 집에 눌러앉게 되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니


난 그저 살림에 소질이 없을 뿐이었고

매일매일 무언가 꾸준하게 하는 일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INFP 그 잡채였을 뿐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해야 하는 일을 자꾸 미루다 보면

결국 해야 할 일만 하며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데

 그건 그냥 딱 내 이야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고

해야 할 일은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데

도저히 하기가 싫은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행히 마음이 흘러넘쳐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쓰기 시작한

브런치 연재가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일단 쓰자.


그래서 오늘부터 또 적어보려 합니다.

하기 싫은 이유들을.


일단 오늘부터는 생각해 둔 연재의 시작점을 꼭 시작해야 하는데

하기가 어렵습니다.


꼭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나름 올해는 열심히 살아보고자 상반기 결산을 하려 했는데 

6월까지로 잡은 상반기 결산이 

드디어 D-60!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습니다.

오늘부터는 진짜 머라도 해야 합니다. 


근데 도통 머리만 복잡합니다.....

지금은 12시

곧 세탁기를 고치러 아저씨가 오 실 테고

곧 중간고사 시험이 끝난 아들이 오면

결과를 듣곤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이야기를 나누며 간식을 챙겨주고

그러다 보면 둘째가 하교하고 또 이야기를 나누며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간식을 챙겨야 하고

그러다 보면 또 남편이 들어올 테고 무언가를 먹자고 할 테고

그러다 보면 또 막내가 올 테고 무언가 종알거릴 테고

그러다 보면 또 저녁이 되겠지요. 


그 사이 못다 한 블로그 일을 해야 하고

설거지와 빨래와 정리와 아이들 공부와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다녀와야 합니다.


시간이 있나요?



사실

정말 두려운 건 있어요.

내가 정말 그 무엇도 시작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

내 마음 속 깊은 그 이유도 난 사실 알고 있습니다.


새벽 3-4시까지 연재하고 싶고 투고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대략적인 줄거리들을 며칠에 걸쳐 짜보았지만

결말이 도통 나질 않고

이야기가 산으로 가고

다시 원점으로 갔다가

뒤죽박죽 엉망으로 되어버렸다는 거죠. 


내가 시작한 모든 일이

용두사미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내 이야기도 그렇게 될까 봐 늘 겁이 나요.

내가 본 많은 졸작들처럼 내 이야기도 보잘것없을까 봐요.


그래서 다시 원점이 되어버렸다가

아니 어쩌면 원점보다 더 엉망이 되어버린

내 시작이 엄두가 나질 않아 어쩌면 하지 않을 핑계 속에 

시간을 묻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엉망진창인 내 머릿속처럼.


아니 근데

월급받는 일이 하기 싫은 건

그건,

진짜 하기 싫은거겠죠?


작가의 이전글 오늘도 걸려온 중1 담임쌤의 전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