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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동 Nov 29. 2023

오늘도 걸려온 중1 담임쌤의 전화

아직 중학교 선생님의 전화가 낯선 나에게 학교에서의 전화는 사실 반가울 때가 많다.


"루나(가명, 둘째, 초5, 여아)가 오늘 수학 96점을 맞았어요. 학기 초 점수에 비하면 놀랄만큼 올라서 저랑 아이들이 엄청 칭찬해 줬어요. 어머님도 집에서 많이 칭찬해 주세요"

"오늘 루시(가명, 셋째, 초3, 여아)가 실뜨기를 하는데 엄청 잘하더라고요. 친구들도 루시의 새로운 모습에 놀라 하면서 같이 한참을 놀았어요. 어머님도 집에서 이야기 많이 나눠주세요."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걸려오는 선생님들의 전화는 늘 아이들 칭찬으로 가득했다.

물론, 안 좋은 소리도 있었겠지만 좋은 소리에 가려져 기억에 남는 일은 별로 없다.

그래서 처음 중학교 담임선생님의 전화도 반갑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착 가라앉은 담임의 목소리는 날 긴장시켰고

저번주에 이어 오늘도 걸려온 전화에 이젠 내 심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삼 남매 중에 맏이로 태어난 우리 아들은

내 눈에는 늘 빛이 났고 잘 생겼으며 쾌활한 평범한 아이였다.

하지만 강압적인 엄마 밑에서 잔소리를 들으며 자란 탓인지 아이는 점점 엇나갔고

초3 때 드디어!

엄마와 더 이상 말하기 싫다며 문을 쾅! 닫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문제인지 몰랐고 아이가 사춘기가 왔다보구나 생각만 했는데

아이들 독서를 시키기 위해 시작한 일에서 내 말과 태도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3아이와 글밥도 없는 명작동화를 놓고 책 읽기를 다시 시작하며 공부도 학습지도 다 내려놓고

소통에만 전념한 지 3년.

중학교에 들어간 아들은 엄마가 늦으면 동생들 저녁도 차려주고 간식도 잘 챙겨 먹으며 힘도 쎄지고 키도 커져서 집안에 힘쓰는 일도 곧잘 도와주고 잘 때마다 안아주며 안녕히 주무시라고 인사해 주는 마치 사춘기가 없어 보이는 아들의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걸려온 담임쌤의 아들 모습은 선생님 말씀을 어기고 단톡방을 만들어 비속어를 난무하고 초3 때 나에게 걸려서 삭제한 디스코드는 어느새 다시 깔아 그 어느 누구에게도 한마디도 지지 않을 만큼 찰진 욕을 난무하고 있었다.

내가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으며 학폭까지 열릴 수도 있다고 무섭게 겁을 주신 담임선생님은 훈방과 봉사로 마무리지어주셨지만

오늘 또 아이가 자기 것을 잘 챙기지 못한 모습에 너무 실망했다며 전화를 주셨다.

보내주신 사진 속 영어 교과서에는 낙서가 난무하고 학습지는 이리저리 찢기고 구겨져 돌아다니고 있었고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것도 잘 챙기지 못하는 학생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집에서 잘 보살펴 주실 것을 당부하셨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도록 내 인생은 외출 한 번없이 오롯이 아이들에게 전념하며 공부도 봐주고 여행도 가주고 이야기도 많이 들어주며 나름 잘 키웠다고 자부해 왔는데 이제 그 모습들이 포장했던 것 마냥 한 꺼풀씩 벗겨지고 있는 기분이 든다.


10년을 그렇게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살다가 이제 겨우 내 모습을 찾으며 친구들도 만나고 즐겁고 유쾌한 내 예전 성격을 찾아가려고 하고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거리 두기를 잘해야 한다는데 난 다시 아이들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야 하나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동안 육아를 하며 나를 성장시키고자 읽었던 수많은 자기 계발서들과 오은영박사님의 수많은 사례들이 스쳐 지나가며


결국 중심을 잃고 있는 건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인생의 중심을 잘 잡고 나답게 살게 되면 우리 아이들도 내 뒷모습을 보며 따라오진 않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그동안 아이들과 소통을 할 수 있게 잘 다독여 놓았으니 그래도 말을 하면 들으니까 우리 아이들도 다시 잘 해낼 수 있어라는 얇디얇은 동아줄 같은 긍정의 마음.


오늘 저녁 아이와 진지하게 다시 이야기를 해 보기로 마음먹어본다.


내일은 무사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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