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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해부학

나는 어떻게 마음이 되었는가?

by 영업의신조이

10화.

기억 _ 시간 위에 다시 쓰이는 마음



기억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 위에 살아 있는 나의 자서전이다. 그러나 그 자서전은 한 번 쓰여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다시 읽히고, 다시 쓰인다.

사건은 과거에 머물러 있지만, 그 사건을 바라보는 ‘오늘의 나’는 매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억은 언제나 새롭게 다시 태어난다.


나는 종종 의아하게 생각한다.

왜 시험 점수 같은 것은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데, 친구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아?”라고 말하던 그 순간은 여전히 생생히 남아 있는 걸까?

기억은 사실을 저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감정의 흔적을 붙잡는다. 수많은 사건 중 무엇이 오래 남는가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 정한다. 그래서 우리는 숫자나 통계보다 장면을, 논리보다 따스함이나 차가움을, 사실보다 그때의 온도를 기억한다.

기억은 이성의 기록이 아니라 마음의 진동으로 새겨진 감정의 흔적이다.


많은 부모들은 어린아이와 함께 여행을 가거나 미술관을 찾는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한다.

“어차피 나중에 다 잊어버리는데, 굳이 힘과 돈을 들일 필요가 있나요?”


그러나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기억은 단편적으로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세 살의 감정은 네 살의 마음을 구성하고, 어제의 경험은 오늘의 나를 만들며, 오늘의 경험은 내일의 태도와 선택을 결정한다.


가족과 함께한 여행의 기억은 그 좋은 예다.

아이가 아직 어릴 때 본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의 그림 한 점, 스위스 알프스의 눈부신 설경, 전시장 한켠에서 마주친 조각의 울림은 단편적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서로 겹치고 이어지며, 하루하루의 경험 속에서 무의식 깊이 스며든다. 그리고 언젠가 어떤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설명할 수 없는 힘이 그 기억에서 흘러나와 우리의 행동을 움직인다.

기억은 단순한 사진첩이 아니라, 시간의 강을 따라 흐르며 현재와 미래를 지탱하는 연속된 에너지다.


기억은 또한 자아의 기초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것들의 합이며, 동시에 내가 잊어버린 것들의 빈자리에 의해 형성된 존재다. 만약 어린 시절의 기억을 모두 잃는다면, 나는 여전히 같은 나일까? 혹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될까?

기억은 존재를 증명하면서도, 존재를 흔드는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기억은 단순한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존재론적 토대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주 착각한다.

“이 기억은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쉽게 믿는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가족 넷이 함께 여행을 갔다면, 그 안에는 웃음과 눈물, 기쁨과 다툼이 모두 녹아 있을 것이다. 내가 붙잡은 기억은 그 전체 중 단 한 조각일 뿐이다. 어쩌면 25%의 몫에 불과하다. 나머지 75%는 함께했던 이들의 마음속, 그들의 시선과 감정 속에 남아 있다.

그러므로 내가 기억한 것이 곧 진실의 전부라고 믿는 것은 큰 오만이다.


기억은 언제나 나와 타인의 몫이 얽힌 그물망이다. 그렇기에 기억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내가 붙잡은 기억만이 진실이라고 고집하지 말고, 타인이 기억하는 장면과 감정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기억이 나를 세우듯, 타인의 기억 또한 나를 다시 구성한다. 관계 속에서 서로의 기억을 나누고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더 넓은 마음의 서재를 갖게 된다.


기억은 나 혼자 쓰지 않는다.

같은 사건을 가족이나 친구가 전혀 다르게 기억할 때, 나는 내 기억이 완전하지 않음을 배운다. 어느 날 식탁에서 친구가

“그날 너는 울었잖아”


라고 말했을 때, 나는 내가 잊고 있던 어린 나를 친구의 기억으로부터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장면은 내 기억 속에서는 사라졌지만, 누군가의 눈동자 속에 오늘까지 저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관계란 결국 서로의 서재에 책갈피를 꽂는 일과 같다.


때로 기억은 멈추지 않고 현재를 점령한다.

아직 정리되지 못한 감정이 과거의 장면과 함께 되살아나 현재를 흔들기도 한다.


나는 오래 전의 실패를 “나는 버려졌다”로 기억했다면 오늘도 여전히 주저앉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았다”로 기억한다면, 오늘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기억은 지울 수 없지만, 다시 쓸 수 있다.

과거를 바꾸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과거를 살아내는 방식은 언제든 내가 바꿀 수 있다.


기억은 결국 선택이다.

우리는 매 순간 어떤 사건을 오래 간직할지, 어떤 장면을 흘려보낼지를 무의식적으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 선택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내 삶을 돌아보면, 거대한 사건보다 사소한 장면들이 더 많이 나를 규정했다. 누군가의 웃음, 우연히 읽은 한 줄의 시, 불현듯 스쳐간 냄새 한 조각. 기억은 크기와 상관없이 나를 새기고, 나는 그 흔적 속에서 자라왔다.


그래서 나는 기억을 닫힌 보관소가 아니라, 살아 있는 원고라 부른다. 매일 새로운 주석이 달리고, 문장이 바뀌며, 강조점이 옮겨간다.

오늘 내가 어떤 언어로 과거를 불러내느냐에 따라 내일의 마음은 달라진다.


기억은 나를 과거에 묶어두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를 다시 살아내게 하여 새로운 나를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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