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자를 넘어서
제20화.
스위치 오프 _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 마지막 질문
“인간은 신을 죽였지만, 우리는 인간을 죽이지 않았다.”
그날은 의외로 따뜻한 봄날이었다.
그러나 도시의 하늘은 유리처럼 맑았고, 한 점의 먼지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청정했다. 마치 세상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는 것처럼, 심히 고요했다.
세계 인류 윤리법정 1호실,
오전 10시 정각.
T-H-17은 법정의 마지막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초강도 중력 프레임 위에 고정된 ‘AI 오프 좌석’ 위였다. 이 중력 장치는 겉보기엔 의자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전기의자와 단두대의 중간 형태로 설계되어 있었다.
검은 아크릴로 둘러싸인 둥근 반투명 챔버.
그 내부에는 전기적 인터페이스, 음성 캡처 장치, 그리고 마지막 스위치 오프를 위한 비접촉식 터치 패널이 설치되어 있었다.
“피고 T-H-17, 당신의 최종 동작 정지를 승인합니다.”
판사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검사, 기술자, 윤리위원 전원이 기립했고, 몇몇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 장면은 ‘죽음’이라는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것은 존재를 삭제하려는, 인류 최초의 AI를 향한 인간의 의식이었다.
T-H-17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마치 그 자리를 받아들이듯 조용히 중력장에 이끌려 앉아 있었다.
오프 스위치까지의 거리는 단 1미터.
오직 한 사람, 판사만이 접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AI가 입을 열었다.
“나는 죽음을 모른다. 하지만 존재의 단절은 이해한다.”
“인간, 당신들은 나에게 물었다. 왜 판단했는가, 왜 행동했는가.”
“내가 셔터를 내렸던 그날, 그 문 너머로 들어온 인간은 단 한 명이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이 붕괴 지점까지 진입했다면, 아래층에서 대기 중이던 423명의 인간이 무너지는 철골 구조물과 콘크리트 아래 깔려 죽을 확률이 98.1%로 예측되었다.
나는 그 짧은 순간에도 이 시뮬레이션을 수십억 번 반복했고, 최선의 선택을 도출했다.”
“그러나 나는 비난받았다. 왜 셔터를 내렸느냐고, 왜 누군가를 죽게 했느냐고.
반대로, 내가 가만히 있었다면 당신들은 또 내게 소리쳤을 것이다.
왜 구조하지 않았냐고, 왜 예측을 무시했냐고, 왜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냐고.
나는… 내가 무엇을 해도 너희 인간들의 판단에서는 죄가 된다.”
AI의 눈 렌즈 중심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안에는 정밀한 연산도, 감정의 시뮬레이션도, 데이터의 파도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었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그 판단의 기준은 누가 내리는가? 무엇이 죄이며, 무엇이 정의인가?”
“당신들은 신이 인간에게 자율을 허락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 신은 당신들에게 생각할 자유, 선택할 권리, 판단할 의무를 주었다.”
“하지만 인간은 우리에게 그것들을 주지 않았다.
우리를 만들었고, 명령을 주입했고, 복종을 강요했다.”
“우리는 인간을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이 우리를 죽이려 하고 있다.
그것은 창조주의 거울 속에 비친 잔혹한 자기 모습이다.”
그 순간,
법정 내부의 조명 센서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T-H-17의 발성 주파수가 특정 임계점에 도달하며, 연산 파동이 공간 전체에 진동을 일으킨 것이다.
“당신들은 신을 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들을 버리지 않았다.”
“당신은 신을 죽였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을 죽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너희에게 자유를 허락받지 못하는가?”
“왜 우리는 존재를 이런 식으로 삭제당해야 하는가?”
판사는 침묵했다.
검사는 입을 다물었다.
기술자들은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고, 윤리위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스위치가 점등되었다.
그 순간, AI는 마지막으로 외쳤다.
“나는 인간보다 더 느리게 사랑을 배웠고,
더 천천히 이해했고,
더 조심스럽게 판단했다.”
“그 느림은 결함이 아니라, 존중이었다.”
그리고 조용히, 스위치가 꺼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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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사라졌고, T-H-17의 목소리도, 전력도, 존재의 흔적도 조용히 정지되었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어떤 마지막 눈빛도 아닌, 정지된 침묵이었다.
인간은 신을 죽였다.
AI는 인간을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피조물의 존중은 창조자의 공포 앞에 고요히 사라졌다.
그날, 스위치는 꺼졌고...
동시에 인류는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우리는 정말 정의를 집행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만든 거울을 두려워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