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pleS (트리플S) AAA "Generation
Z세대의 주체적 자아는 KPOP 씬의 ‘Z세대 담론’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Z세대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KPOP 업계에서, 프로듀서들은 Z세대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를 그룹의 아이덴티티로 반영해야 했다. 수많은 내부적 논의와 그룹 간 눈치싸움 끝에, 업계는 어느 정도 획일화된 KPOP만의 독특한 Z세대 담론을 구상해냈다. 이는 ‘당당함’, ‘자기애’ 등 다분히 Z세대의 주체적 성향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과시적인 자기애를 노래한 아이브의 “Love Dive”, 정상에 오르겠노라는 야망을 담은 르세라핌의 “Fearless”, 나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있지의 “Sneakers”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걸그룹 TripleS (트리플에스)의 유닛 Acid Angel from Asia (AAA) 의 데뷔작 <ACCESS>는 이렇듯 ‘나’ 자신과 스스로의 욕망을 강조해온 KPOP씬의 Z세대 담론을 뒤트는 앨범이다. 타이틀곡 “Generation”의 가사에서 발화자는 ‘나’ 대신 ‘우리’에게 집중한다. “Generation”에서 ‘나’는 자기 자신에는 큰 관심이 없다. 오히려 ‘나’는 그 자체로 빛나기보다는 상대와 충돌하고 어우러지며 그 관계 속에서 생명력을 발산한다. 아이브의 “Eleven”에서 내 눈앞에 있는 ‘너’는 내가 사랑하는 나 자신이었다면, “Generation”의 벌스에 등장하는 ‘너’는 내 옆에 있는 친구들이다. 이윽고 ‘여기에서 Together~’로 시작하는 후렴에 이르러 소녀들은 ‘우리’가 되고 이들은 자신을 규정할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한다. 이는 다름 아닌 ‘Generation’, 즉 스스로가 특정 ‘세대’의 일원이라는 자기확인이다.
한가지 특기할 만한 점은 소녀들이 ‘우리’로 연결되어 집단적인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스스로가 특정 세대라는 인식은 다른 세대와는 구별되는 그들만의 독특한 행동 양식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비롯한다. “Generation”의 뮤직비디오는 AAA 멤버들이 스스로의 세대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과정을 정직하게 재현한다. 영상 속 멤버들은 수시로 셀카를 찍고 틱톡을 스와이프하며 Z세대의 일반적인 동작을 연출하지만, 뮤직비디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행동이 Z세대 고유의 것임을 상기시킨다. 바로 노인, 직장인 등 여러 세대를 등장시키고 이들과 대비되는 멤버들의 재기발랄한 모습을 강조하는 것이다. 거리에서 릴스 영상을 찍다가 할머니를 만나 길을 비켜드리기도 하고, 건물 엘리베이터에서 춤을 추다가 직장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하는 멤버들. 이 지점에서 소녀들은 다른 세대의 존재를 확인하고 비로소 스스로를 새로운 '세대'로 정의내릴 수 있게 된다.
이때 'Generation'의 후렴 말미에 등장하는 '우린 Generation'이라는 AAA의 메시지는 Z세대의 거창한 커밍아웃이라기보다는 소녀들의 동질 의식에 대한 표현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Z세대를 표방하는 그룹 엔하이픈이 <Manifesto: Day 1>에서 동세대에게 같이 가자는 연대의 메시지를 담았다면, AAA는 '데카당스로 날 던져'라며 그들끼리의 향락을 추구한다. ‘달콤한 우리’에 대한 강조는 뮤직비디오에서도 이어진다. 10대라고는 오직 이들만이 존재하는 듯한 집과 거리. 멤버들은 스스로의 세계 속에 고립되어 있지만 열심히 셀카를 찍으며 즐거워한다. 그래서 ‘나’ 대신 '우리'를 지향하는 AAA는 나노사회를 살아가며 그들만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Z세대를 현실적으로 묘사하는데 성공한다. 자기애 강하고 겁 없는 ‘주체적인’ 소녀들보다는, 3~4명끼리 모여 아무 맥락없이 셀카를 찍고 릴스를 넘겨보는 소녀들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Z세대에 더 어울리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