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연 <IMNAYEON> (2022)
엄연히 트와이스의 얼굴격인 멤버의 첫 솔로 앨범. JYP는 그야말로 엄청난 고민에 빠졌을것이다. 나연이 가지고 있는 발랄하고 상큼한 매력을 그대로 가져가고 싶기는 한데... 이 모습을 어떻게 '그럴 듯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매력은 트와이스와는 또 어떻게 다른 발랄함이어야할까? 무조건 성공했어야만 하는 나연의 솔로앨범은 JYP 입장에서 여러모로 난제였을것이다.
여기서 JYP는 조금은 익숙한 정공법을 구사했다. 블랙핑크의 로제, 리사의 솔로앨범과 유사한 전략. 즉 '나연'이라는 이름을 하나의 브랜드로 내세우는 것이다. 다만 <IM NAYEON>은 조금 더 발칙하게 당당하다. 로제가 "On the Ground"에서 본인의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냈고, 리사가 "LALISA"에서 자신의 이름에 대한 자부심을 노래했다면 나연의 "Pop"은 그녀의 내면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IM NAYEON>은 '나연'이라는 이름 자체에 완전히 집중한다. 정체성이나 복잡한 스토리텔링은 굳이 필요 없다. 이름 자체가 이미 브랜드인 아이코닉한 스타, 그것이 바로 이번 솔로 앨범에서 JYP가 나연에게 포지셔닝한 이미지다.
타이틀곡 "Pop" 뮤직비디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잦은 공간 전환이다. 핸드폰, 책, 영화, 도넛가게, 휴양지 등 여러 공간 속에 나연은 동시에 존재하면서 자신있고 노련하게 청자를 '자극'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넘어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하는, 즉 스타의 모습이다.
이렇게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들며 상대의 마음을 부풀리는 도중 유독 눈에 띄는 행동이 있다. 앨범 아트에서도 강조된 손가락으로 이름 옆에 구두점을 만들거나 옷을 던지는 행동, 바로 '이런 내가 바로 나연이다'라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이러한 자아의 표출에 대해 나연은 별 다른 첨언이 없다. 로제의 <R>처럼 내면의 가치를 긍정하지도, 리사의 <LALISA>처럼 자신의 노력이나 재력을 과시하지도 않는다. 넘치는 자신감에 대한 근거는 오롯이 '나연'이라는 이름이 주는 아우라, 즉 지금까지 트와이스의 구심점으로서 인정받은 실력과 인지도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게 푹 빠진 너를 애써 참진 말라'는 뻔뻔스러운 자신감을 기꺼이 수긍할 수 있는 이유다.
이번 앨범에서 또 한가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은 바로 후렴 직후 이어지는 안무다. 누가봐도 일부러 헷갈리게 설계한 손동작이 이어지는 이 안무는 뮤직비디오에서도 큼직하게 강조된다.
별 의미없이 'Pop'이라는 가사가 반복되는 중독성 강한 파트, 그리고 이 부분의 안무가 이번 나연 솔로 앨범의 벼리다. '따라해볼거면 해봐라'는 식의 챌린징한 안무는 애초에 댄스챌린지 목적으로 치밀하게 구상된 것이었고, 실제로도 상당히 적극적인 댄스챌린지 마케팅으로 이어졌다. 우선 하체를 움직이지 않고, 손만으로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안무의 장점을 살려, 앉아서 춤을 추며 손동작을 유난히 강조하는 댄스 영상을 제작했다.
여기에 더해 대부분의 댄스챌린지 마케팅이 아티스트의 자체 콘텐츠, 그리고 기타 아티스트과의 협업 콘텐츠 제작으로 진행된다면, 나연은 '일반인과의 협업'이라는 독특한 콘텐츠를 제작했다. 현장 스태프, 메이크업 아티스트 등 나연의 주변인들과 댄스 챌린지 영상을 촬영하며 이 춤을 따라하기 버거워하는 일반인들의 모습을 강조했다. 이러한 일련의 콘텐츠는 틱톡 및 릴스 유저들의 도전의식을 자극했고, 이는 괄목할 만한 'Pop pop pop' 댄스 챌린지 바이럴 성과로 이어졌다. 실제로 틱톡에서 'Pop'을 배경음악으로 만들어진 숏클립은 총 524.7K건 (7월 13일 기준)으로, 올 상반기 히트곡 "Fearless" (97K), "Tomboy" (96.2K), "열이 올라요" (4304), "Stay this way" (2441) 등에 비해 월등히 많다. 일부러 헷갈리는 안무를 제작하여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전략이 대중에게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 의미다.
부족한 근거 제시에도 불구하고, 나연의 자신감은 지금까지 트와이스의 센터로서 쌓인 신뢰, 그리고 무엇보다도 혼자서도 전혀 무리 없이 무대를 꽉 채우는 탁월한 역량 때문에 무리없이 대중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트와이스의 2막을 열어가는 시점에서 조금 더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내도 좋았겠지만, '무조건 잘되야 했던' 앨범인만큼 보다 안전하게 풀어나갔다고 본다. 여기에 중독성 쩌는 안무 하나로 상당한 바이럴을 만들어 냈으니 충분히 긍정적인 성과다. 다음 솔로 앨범에서는 굳이 이름에 대한 강조 없이도 '임나연'이라는 아티스트의 깊은 진가가 우러날 수 있는 기획을 또 한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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