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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규정 Dec 20. 2021

나라는 우주

제임스 네스터의 '호흡의 기술'을 읽고 - K의 시선

숨쉬기에 관심을 가진 건 단순한 이유입니다. ‘매일을 숨 쉬니까.’ 살아있는 한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계속할 텐데, 생(生)의 근본적인 행위에서 변화를 이끌어내면 삶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바뀔까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더욱이 그저 ‘숨쉬기’잖아요. 돈과 시간을 들여서 하지 않아도 되고, 굳이 나의 몸을 격렬하게 써가며 땀을 흘리지 않아도 좋고, 머리를 괴롭히는 문제 풀기도 아니니까요. 


필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은 즐거웠습니다.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있기에 과학의 이름을 빌려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경험을 바탕으로, 다수의 경험자 입으로 호흡의 ‘길’을 찾아 헤매더군요. 사실 저는 지독한 불면증이 있으며 주변 사람을 충분히 괴롭힐 정도로 코를 곱니다. 가끔 출퇴근 버스 안에서 제 코골이 소리에 놀라 스스로 깬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나마 요즘엔 마스크가 있어서 다행입니다만, 여러모로 부끄럽고 주변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죠.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수련을 이어갔습니다. 책을 보면서 내용대로 따라 하고, 출퇴근길에 연습하고, 일 할 때도 해보았죠. 결과가 궁금하시겠죠? 잠은 전보다 잘 자요. 불면증이 없어지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괜찮아졌습니다. 코골이는 여전하지만 빈도가 줄었습니다. 유의미한 변화가 플라세보 효과인지, 혹은 같은 기간에 유난히 제게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겨 호흡이 아닌 상황의 변화 탓인지 똑 부러지게 말할 순 없을 겁니다. 다만 작은 습관의 변화가 제 삶을 풍족하게 하길 바랄 뿐입니다.       


J님께서 명상에 대해 물으셨죠. 스물네 살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 시기에 마주한 시간들이 고통스러웠습니다. 누군가의 말대로 삶은 고통의 연속일 수도 있지만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무척이나 스스로를 괴롭혔습니다. 그렇고 그런 하루들이 쌓여가는 데 우연히 책꽂이에 명상 관련한 책이 있었습니다. 무심결에 꺼내 들고 보았습니다.      


그 이후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진 않았습니다. 아주 조금씩 하루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을 따름입니다.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그 작은 느낌이 삶을 살아가게 하는 유일한 끈이자 원동력이 됐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끈을 놓지 않으려 매일 밤 명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 끈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시기입니다. 최근에 만났을 때 ‘이제 명상의 목적이 뭔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J님께 넌지시 했습니다. 왜 그럴 때가 있잖아요. 처음엔 분명했고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도 있었는데 어느새 흐릿해지고 뭐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순간. 요즘 제게 명상이 그렇습니다.      


열반에 드는 스님, 신체에서 자유로워지는 정신, 영혼의 상태, 마음의 평화, 우주와의 교감, 시간을 되돌리고 되돌려 존재에 대한 탐구. 명상이라는 단어로 그려지는 모습들인데요, 저도 한 번씩은 다 시도해본 것 같습니다. 물론 요즘엔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으로 명상이라는 걸 하는지도 모르겠더군요.       


그 와중에 이 책이 도움을 줬는데 ‘호흡’ 그 자체에만 집중하니 부담이 사라졌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찾아야 한다는 욕심도, 깨끗한 정신으로 자연과 교감해야 한다는 필연성도, 마음을 정갈하게 해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 필요도 없더라고요. 그저 들이마시고 내쉬는 내 몸의 가장 근본적인 활동에 집중하니 오히려 편안해졌습니다.      


요즘엔 명상을 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맞겠죠. 물론 이 호흡도 노력이 아닌 습관이 된다면 다시 미뤄둔 숙제가 찾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뭐 어쩌겠습니까. 또 고민하다 보면 방법이 생기겠지요. 세상은 바꾸지 못하더라도 명상이든, 호흡이든 제 자신을 향한 실험은 계속해볼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모든 사람이 작은 우주라고 하잖아요.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저라는 우주를 아름답게 가꾸고 싶습니다. 매번 시험에 들고 실패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생각해보니 지금도 책에서 배운 대로 호흡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카오스와 코스모스가 혼재하는 우주에서 무엇이 옳다 또는 이게 좋다고 할 수도 없지만 그저 그런대로 저라는 존재를 느끼고 아껴주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나아진 '나'를 보고 싶습니니다. ‘호흡’ 하나 가지고 참 길게 이야기했습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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