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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남우 Oct 14. 2022

편안함에 이르기까지, 파이팅

미루고 미루다 본 드라마 <나의 아저씨>

<나의 아저씨>가 방영 중이던 2018년부터 주위에서 끊임없이 극찬하는데도 보기를 미뤄왔다. 이유는

 

- '나의 아저씨'라는 제목

- 21살이 40대 유부남을 좋아한다는 설정

- 부모가 진 빚을 모두 떠안고 청각장애인인 할머니와 단둘이 남겨진, 할머니를 때리는 사채업자를 죽여 살인 전과가 있는, 여전히 빚을 갚기 위해 사채업자에게 맞아가며 할머니를 모시는 소녀 가장


이 모든 게 불편해서이다. 특히 살면서 하나라도 견디기 힘든 시련을 모조리 주인공에게 몰아둔 설정이 마치 작정하고 시청자들에게 동정을 사려는 것 같았다.


지난주에 퇴근길 버스에서 음악을 듣는데, 자동 재생된 플레이리스트에서 <나의 아저씨> OST '어른'을 듣고서부터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나의 아저씨> 12화



어제 막 마지막 화까지 보고 나서 들었던 생각이,

내가 허구로 똘똘 뭉쳤다고 생각한 캐릭터가 현실 어딘가에서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고 있겠구나.

내가 잔잔한 피아노곡 틀어놓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살아있음에 소중함을 느낄 ,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거나 죽은 채로 살고 있겠구나. 빚을 갚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면서 아무도 '상속포기' '노인장기요양보험' 알려주지 않아 요양원에서 쫓겨난 할머니를 모시고 있겠구나. 지안은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니였다.


내가 갖은 편견으로 <나의 아저씨>를 향해 느꼈던 불편함이 다른 말로 '외면'일지도 모르겠다. 현실과 드라마를, 일상의 언어와 대본을, 우리 중 한 사람과 연기하는 배우를 철저히 구분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없는 순간에 그 사람이 꺼내는 말들을 도청하면서 그의 삶을 이해함과 동시에 나의 삶을 어루만지는 과정이 영화 <타인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일찍 어른이 된 아이에게 한 어른이 건넨 네 번 이상의 친절함, 이를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마치 사람들이 의도했거나 의도하지 않았던 실수로 여기저기 떠다니는 검은색 기름이, 조금씩 거둬지면서 바다가 차츰 원래의 푸른색을 되찾아가는 것 같았다. 동훈의 친절함은 사람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하지만 많은 사회인들이 잃어버린 인간 그 자체를 위한 배려였다.


죽어 있던 지안이 동훈을 만나 다시 태어나고

죽어 가던 동훈은 다시 살게 되는 완벽한 결말

두 사람 모두 편안함에 이르는 결말



<나의 아저씨> 16화 엔딩


"여러분들은 모두 괜찮은 사람들 입니다, 그것도 엄청. 편안함에 이르기까지 파이팅!"


마지막 화 엔딩크레딧의 문구를 보고 눈물이 쏟아졌다고 키보드 두들기는 지금도 울컥한다.

지안 같은 존재가 있다면 나는 동훈, 후계동 사람들이고 싶다. 모든 바다와 바다가 빈틈없이 이어져 있는 마음으로 서로의 푸른 바다를 위해 까만 기름을 건져올려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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