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생 K-장녀』공동저자, 듀클에게 묻다.
아홉수과 코로나의 공통분모는 무엇일까요? 그 둘의 교집합은 아마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인 것 같습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의 청춘, 그리고 일상의 자유. 그리고 이 둘의 현실을 같이 맞이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스물아홉, 겨울 무렵 도망치듯 떠났던 블라디보스톡 여행길에서 나눈 대화를 시작으로 같은 듯 다른 스물아홉 동갑내기 친구들이자 젊은 장녀들이 펴낸 책 『92년생 K-장녀』. 스물 무렵, 어스라이 꾸었던 스물아홉의 초상과 현실 그 사이 어디쯤을 걸으며 일상의 변화에도 초연함을 잃지 않았던 네 명의 친구들이 함께 엮은 책입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92년생 K-장녀』의 공동저자인 듀클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들이 쌓아올린 일상 속 삶의 근육은 무엇일까요?
내 주위, 삶의 근육을 기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GREW-UP. 열네 번째 에피소드. 『92년생 K-장녀』 공동저자 듀클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듀클님! 반갑습니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반갑습니다. 저는 「92년생 k-장녀」라는 책을 쓴 4명의 저자 중에 한 명인 듀클이라고 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아무래도 직장인이다 보니, 집-회사를 오고 가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직장인이시군요.
네. 벌써 올해 5년 차가 됐네요. 하하.
듀클님을 알게 된 경로가 크라우드펀딩 <텀블벅>이었어요. 네 명의 친구들이 함께 만든 「92년생 K-장녀」 독립 출판을 텀블벅을 통해 크라우드 펀딩 하셨는데,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나요?
그러니까 작년 설 연휴였죠. 그땐 코로나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전이였어요. 우연히 설 연휴 때 고등학교 친구 넷이 시간이 맞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해외여행을 가게 됐어요. 그런데 마치 여행이 아니라 탈출 같은 느낌을 받은 거죠. 신기하게도 모두가 그런 기분을 느꼈더라고요.
당연하게도 회사에 치이다 휴가를 가니, 탈출한다는 느낌을 받았겠지 싶었지만 생각해 보니 제사상을 버리고 떠나는 며느리의 기분에 더 가까웠던 거 같아요. 그때가 딱 스물아홉이 시작되는 무렵이었고요. 러시아에 가서 그동안 보따리처럼 쌓아둔 서로의 근황을 나누다 보니 스물아홉이 가기 전에 우리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행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길래 책을 써보자는 제안이 나왔을까요.
낯선 나라의 카페에 들어가 거의 네 다섯 시간을 얘기한 것 같아요. 우리가 있는 이곳이 러시아인 것도 잊을 정도로요. 모두들 일을 하다 보니 이제는 시간을 맞춰 만나기가 어려워 오랜만의 만남이기도 했고요. 음.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서로의 공통점에 대한 대화가 많이 오고 갔던 것 같아요.
공통점이요.
'스물아홉' 그리고 '장녀'가 저희의 공통점이었죠. 장녀를 향한 집안의 기대와 부담감, 그리고 이십대의 마지막을 후회 없이 보내고 싶다는 결심, 그때만 해도 코로나가 확산되기 전이라 여행도 자주 가자며 너스레를 떨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책 이름이「92년생 K-장녀」가 된 거군요. (웃음)
글을 쓰다 보니 각자 인생의 괴로움이 근원적으로 장녀 포지션에서 오는 게 많았어요. '90년 대생'과 '장녀'이 두 단어를 곱씹어 보면 서로 정반대에 있는 단어라고 생각해요. MZ 세대라고도 불리는 90년 대생은 멀리서 보기엔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고 자유분방할 것 같은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런데 저희의 삶을 MZ 세대로만 빗댈 순 없더라고요.
사실, '장녀'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MZ 세대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에 있잖아요.
맞아요. 과도한 책임감을 가진 사람들을 일컬어 <K-장녀>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으니까요. 가족과 형제들을 돌보고, 결혼 후에도 시댁과 친정 사이에서 책임감 있게 모두를 신경 써야 하는 장녀들의 포지션이 비단 옛 세대의 것만이 아니더라고요. 82년생 김지영보다 10년을 늦게 태어난 우리지만, 그럼에도 장녀의 포지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를 강조하자 해서 책 이름이 「92년생 K-장녀」가 된 거죠.
맞아요. 90년대생은 자유분방하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이미지라면, 장녀는 정말 정반대의 이미지거든요. 사회에서도 책임감 있이 일을 하는 분들이 알고 보면 장녀인 경우도 많더라고요. 방금 전, 인생의 괴로움이 장녀 포지션에서 많이 왔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괴로움일까요?
기본적으로는 부모님에 대한 부담감과 책임감인 것 같아요. 다른 형제들이 신경 쓰지 않는 문제도 먼저 나서서 챙겨야 할 것 같고, 신경 써야 할 것 같거든요.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제 안에서 스스로를 '해야 해!'라고 채찍질하는 거죠.
그리고 저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직장 생활을 할 때도 장녀의 책임감이 발현되어 괴로울 때가 있다는 내용이 책에도 나와요. 책임감있게 업무에 일하지만, 무심코 자신의 기준으로 후배들을 판단하는 모습을 볼 때 마다 나 자신도 꼰대가 아닐까하는 생각에 괴롭다고요.
스물아홉이 가기 전, 우리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일상에 적응하느라 함께 계획했던 프로젝트에 신경 쓰기 어려우셨을 것 같아요.
맞아요. 특히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원 스타라는 친구의 일상이 코로나로 인해 송두리째 흔들렸어요. 의료 종사자거든요. 자가격리 때문에 친동생의 결혼식도 가지 못할 정도였죠. 저희랑도 만나기 힘들었고요. 그런데 오히려 그 덕분에 책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코로나 덕분에요?
네. 할 게 없었거든요. 비록 다 같이 자주 만나진 못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글을 쓰고 일주일에 한 번씩 온라인으로 회의를 했어요. 서로의 글을 보여주고, 피드백 하는 시간들을 몇 달 동안 하며 글감들을 모아 나갔던 것 같아요.
친구라고 해도,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나누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다른 친구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평소에도 비밀이 없는 타입이라 딱히 상관은 없었어요. 글을 쓰기로 결심한 이상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협의가 되었기 때문에 다들 자신의 글을 오픈하는 데 있어 불편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글을 쓰다 보면 지금 가지고 있는 고민들이 정리되기도 해요. 듀클님은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나에 대해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저희가 주마다 주제를 정해 글을 썼어요. 이번 주엔 가족에 대해서, 다음 주에는 고등학교 시절에 대해서 써보자. 이런 식으로요. 여러 가지 주제 중에서 책으로 엮을 내용을 정리해보자 했거든요. 살면서 특정 주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할 기회가 많이 없다 보니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특정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그러다 문득 글을 쓰다 정말 어릴 적 기억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그 사건이 아직까지도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었구나 알게 됐고요. 그리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들을 더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고요.
듀클님이 쓰신 글 목차를 보니, 영화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제가 영상을 전공했어요. 최근에도 단편영화 연출을 맡아 제작진으로 활동했고요.
그럼 감독님이 맞으신대요?
하하. 제가 직접 연출할 때도 있지만 다른 작품의 스태프로 참여하기도 해요. 아주 작은 단편영화제에 참석하다 보면 감독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도 하죠. 영화나 영상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신기할 것 없는 일상인데, 제 친구들은 신기하다는 거예요.
신기해요.
저에게는 일상이거든요. 그런데 친구들에게 신기하단 이야길 들으니 '영화감독'이라는 주제로 한번 글을 써볼까 싶더라고요. 사실 저는 영화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도 시간이 될 때마다 영화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건 이제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된 것 같아요. 이번에 하기로 했으니 해야 하는 거고, 찍기로 했으니 찍어야 하는 느낌?
스물아홉의 시간을 보내고, 앞자리가 바뀌셨는데요. 서른이 되어보니 어떠세요?
정말 별거 없어요! (웃음) 왜 그런 거 있잖아요. '20대에 반드시 해야 할 다섯 가지' , '20대에 이뤄야 할 버킷리스트'라던가, '20대에 1억 모으기' 류의 것들에 대한 어떤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중 하나라도 하지 못하면 못난 사람이 될 것만 같은 불안감도 있었고요. 그런데 이룬 것 없이 서른이 되어도 저는 못난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아무 상관도 없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어요. 좀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서른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인 것 같아요.
정말요.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애석해요.
이러다 금세 또 서른아홉이 돼서 내 서른은 어디 갔지! 하는 거 아니냐며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이야기 한 적 있었어요. 스물엔 어렴풋이 스물아홉의 나는 직장을 다니고,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되어 있을 것만 같은 상상을 했지만 지금은 이상적인 서른아홉의 모습이 무언지 상상조차 되지 않아요. 스물아홉이 금방 온 걸 보면, 분명히 서른아홉도 정말 한눈판 사이 바짝 다가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죠.
적어도 이런 모습으로 서른아홉을 맞이하고 싶다는 바램이 있지 않으세요?
글쎄요. 외형이나 직업은 전혀 상상이 되지 않네요. (웃음) 어떤 유형, 어떤 성향의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했을 땐, 후회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벌써 서른아홉이야'보다는 '행복했던 삼십 대였다'라고 되뇔 수 있는, 미련 없는 서른아홉을 맞이하고 싶어요.
서른아홉이라고 하면, 그때 즈음엔 삶의 안정도 찾지 않을까하는 어떤 기대감도 있을 것 같아요.
인생을 계획할 때 취업은 스물 중반에, 결혼은 서른 초반에... 계획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인생 계획들을 세우지 않아요. 지금까지 살아보니 인생은 제 의지대로 통제할 수 없는 부분도 많다는 걸 깨닫기도 했고요.
'벌써 서른아홉이야'보다는 '행복했던 삼십 대였다'라고 되뇔 수 있는,
미련 없는 서른아홉을 맞이하고 싶어요.
듀클님의 일생을 지탱하고,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행복이에요. 그리고 행복은 바로 이 순간에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을 희생해 먼 훗날의 행복을 기대하며 사는 건 정말 어렵더라고요. 이 순간의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고, 내가 어떤 일을 했을 때 행복한지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며 지금을 사는 거죠.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저와 결이 맞는 사람들과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해서 끌어당긴다고 생각하고요. 음. 그리고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막연한 기대감인 거 같아요.
막연한 기대감이요.
나는 괜찮고, 더 성장할 거야! 하는 자신감이에요.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자주 하거든요.
본인에 대한 믿음이 있으시군요.
네. 그런 편이에요.
지금의 나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너무 게을러요. 이거는 정말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계획을 한번 세우면 삼일 이상 해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그럴 때마다 자괴감이 들더라고요. 저 답지 않게 스스로가 싫어지는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지금의 나에게 건네고 싶은 말은. '게으름을 타파해라' 인 것 같아요. 유튜브도 그만 보고 야식도 그만 먹고! 조금만 더 부지런해져라.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네요.
순간의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고,
내가 어떤 일을 했을 때 행복한지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며 지금을 사는 거죠.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저와 결이 맞는 사람들과 즐겁고 행복한 일들을
계속해서 끌어당긴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