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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hroot Sep 09. 2021

나에게서 너에게로 뻗어지는 길

다원예술가 수영(Gong-Won)에게 묻다.


그림에 기반을 둔 춤을 추는 사람. 다원예술가라고도, 공원(Gong-Won)이라고도 지칭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며 나에게서 너에게로 뻗어지는 지도를 그리는 그. 좌표 사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길목을 걷게 하는 그의 삶의 근육은 어디로부터 시작됐을까요. 그리고 그를 나아가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내 주변 가까이, 삶의 근육을 기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루업(GREW-UP). 일곱 번째 에피소드, 다원예술가 수영(Gong-Won)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수영님! 반갑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곧 서울무용센터에서 열리는 전시 준비로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많이 괜찮아지긴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온-오프라인 아카이빙 전시로 열릴 예정이거든요. 전시가 아무래도 움직임을 기반으로 한 결과 과정 공유회 성격이라, 매일 같이 움직임을 영상으로 기록하는데요.


그와 함께 렌더링도 차곡차곡 쌓여가는 요즘입니다. 하하. 공연 준비 외에는 태안에서 갭이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어요. 예술가-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다양한 작업들을 협업하는 프로그램이에요. 7월부터 시작이라, 곧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태안을 오고 갈 예정입니다.



바쁜 일상을 지내고 계시네요. 수영님의 작업을 확인하니 무용을 전공하신 것 같았어요.

아뇨. 원래 전공은 그림이에요. 4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어요. 어릴 적부터 서양화를 배우다 고등학교 무렵에는 동양화로 전공을 바꿨고요. 대학교 입학 후엔 춤에 관심이 생겨 무용의 영역으로 뛰어들었어요. 그렇게 영역이 확장되었네요.



특히나 수영님의 작품들을 톺아볼 때 그림과 퍼포먼스를 융합한 작품들이 많았어요. '다원예술'이라는 개념이 많이 생소하기도 했고요.

지금의 저를 정의하는 '다원예술'은 다양한 예술 장르의 요소들을 섞어 아티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는 새로운 예술 방식이에요. 다원예술을 한다고 하면, '그래서 그게 뭐예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기도 해요.

이 개념이 일반 관객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대중적으로 생소한 건 사실이지만 이미 현대미술 영역에서는 넓게 알려진 개념이고요.


앞서 말했듯이, 저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배우다 무용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뛰어들었어요. 그 둘의 언어를 몸 소 체감한 후에는 그림과 무용을 접목시켜 작업을 하고 싶은 고민이 있었죠. 그래서 저를 정의할 때 '그림에 기반을 둔 춤을 추는 사람'이라고 설명했어요. 외국에서는 이미 이런 방식으로 작업하는 아티스트들이 많기 때문에 저를 소개하기에 어렵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같은 문장으로 설명해도 하나의 말로 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렇게 다원예술가라는 정의로 활동 한 지는 3년 정도 되었어요. 두 영역 사이 모호한 경계에 서 있던 사람이 다원예술가라는 선이 생긴 거예요.



그럼 다원예술가로서 어떤 작품들을 작업하셨나요?

최근엔 <지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2020 지도 프로젝트, @불가리아 지도 작업 中 [사진제공=수영(Gong-Won)]


지도 프로젝트,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작년 무렵, 지금까지의 나를 만들었던 개인적인 역사에 대해 찬찬히 정리를 해봤어요. 나에게 크게 와닿은 사건, 소소하게 남은 시간들을 정리하며 이 기억들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고민해 봤죠. 지도 프로젝트는 -개인의 과거 기억들을 뽑아내 지도를 만들자-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그런데 막상 과거 기억들에 담긴 장소들을 찾아보니, 이미 허물고 없어진 거예요. 지도의 좌표들이 없어진 상황에서 "도대체 본질은 어디에 있는 거야?" 란 질문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나에서 시작된 좌표를 개개인의 연결로 확장시켜봤어요.

 2020 Map trailer 中 일부 [사진제공=수영(Gong-Won)]

같은 날짜 좌표 안에서 모두 다르게 움직이는 개개인의 역사를 연결하는 건 무얼까 고민했죠. 그러다 문득 개개인 역사의 큰 줄기인 가족에 대한 유전적 지도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더라고요. 누군가의 행동, 말투, 생각들이 시작된 출발점은 어디인지 그리고 그 개개인의 역사를 잇는 연결성은 무엇인지 찾아가는 작업들을 계속해서 <지도 프로젝트>에서 이어 나가고 있어요.


2020년도에 처음 이런 물음을 가지고 한국의 <인생 지도 시리즈>를 작업했고 스페인, 불가리아, 인도네시아에서 지도 프로젝트를 온&오프라인으로 진행했어요. 올해에도 역시 몇 가지의 키워드로 지도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어요.



일상에서 누군가와 마주할 때마다 수영님이 그리는 지도는 점점 확장되겠군요!

맞아요. 지도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난 후로부터 누군가와 마주할 때 역사 전체가 다가온다는 생각으로 대화에 임하고 있어요. 지금 저를 인터뷰하는 매니저님의 모습과 행동들도 어디서 오게 되었을지 한 번쯤 다시 생각하게 되고요. 하하.


또 한 가지 변화가 있다면, 오랫동안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거예요. 순전히 잠만 자는 장소가 아니라 나와 동네를 연결할 수 있는 고리가 무얼 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수영님의 지도에 저도 하나의 지점이 된 거군요! 신나요. (웃음) 그럼 지금 어떤 동네에서 살고 계시는지 살짝 물어봐도 될까요?

저 중랑구에 살아요! 여기에 살게 된 지는 7~8년 정도 되었네요. 몇 년 전,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을 때 일터와 접근성이 좋아 중랑구에 자리를 잡게 되었어요.



동네와 본인을 연결하는 고리, 찾으셨는지 궁금해요.

바로 작년이죠. 저에게 큰 변화가 하나 생겼어요. 강아지(쪼꼬미)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거든요. 한 가지의 변화가 일상 속에 많은 것들을 확장시키더라고요. 지금 살고 있는 집 바로 뒤에 용마산이 있는데요. 그래서 아침마다 아이와 산책을 할 겸 용마산에 올라가곤 해요.


그때마다 어르신들을 자주 뵙는데, 쪼꼬미와 함께 있으면 꼭 한 마디씩 말을 걸으시더라고요. '아기 이쁘다', '어디서 왔니' 이런 한 마디로 시작된 대화들이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까지 이어지는 거예요. 그럼 또 어르신들과의 만남으로 저의 지도가 다시금 확장되고요.

든든한 공동작업자 쪼꼬미와 함께 [사진제공=수영(Gong-Won)]

또 어느 날은 한 할아버지께서 쪼꼬미를 보고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왜 그러시냐 물으니, 본인도 쪼꼬미와 똑 닮은 미니핀을 키운 적이 있었는데 강아지가 너무 이뻐 사람 음식을 자주 주셨대요. 그런데 그 마음이 오히려 독이 된 거죠. 그래서 아이가 6년 만에 강아지 별로 갔다는 이야기를 서글프게 전하시더라고요.


일면식 없는 누군가의 깊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저 혼자였다면 들을 수 있었을까요? 쪼꼬미와 함께 있어서 가능한 거라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쪼꼬미가 저와 동네를 잇는 고리 역할을 한 거죠. 그래서 저는 쪼꼬미를 공동작업자로 생각하고 있어요.



공동작업자! 표현이 참 재밌어요.

쪼꼬미는 작업을 할 때 의견이 확실한 편이에요. (하하) 움직임이 마음에 들 땐 요리조리 함께 춤을 추기도 하지만, 어쩔 땐 잠시 바라보다 방에 들어가 자기 할 일을 할 때도 있어요. 오늘은 영 동작이 별로라는 뜻이에요.



이번 인터뷰에 쪼꼬미를 공동작업자로 섭외했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그런데 선생님이 바빠서 말이죠. 쪼꼬미는 이번 태안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도 같이 갈 예정이에요. 공동작업자로요.




저를 정의할 때 그림에 기반을 둔 춤을 추는 사람이라고 설명했어요.
두 영역 사이 모호한 경계에 서 있던 사람이 '다원예술가'라는 선이 생긴 거예요.



아티스트 명인 Gong-Won은 어떻게 짓게 되셨나요?

제 성이 박(Park)씨예요. 그래서 외국 친구들과 장난스레 나누다 나온 예명이기도 하고, 공원이 0과 1을 뜻해요. 아무것도 없는 시작점(0)에서 1이 되기까지 정말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요. 그렇지만 1을 만드는 과정을 포기하지 않고 해내고 싶은 의지도 있고요.


그리고 또 다른 의미로는, 많은 사람들이 쉬어 가는 공원처럼 많은 이들을 품고 공원 같은 하나의 플랫폼으로서 저의 작업들을 함께 나누는 장소가 되고 싶은 뜻을 담아 아티스트명을 공원(Gong-Won)으로 짓게 되었어요.

ⓒunsplash

 

이야기를 들으니 여러 사람들이 뛰어놀고, 쉼을 얻는 드넓은 공원이 그려지네요. (웃음) 수영님의 지금까지 살아온 흐름들을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무용을 하고-예술가가 된 과정들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궁금해요.


옛날부터 꿈이 화가였어요. 4살부터 그림을 배워 서양화 전공으로 예고를 입학했었어요.



예고를 들어갈 때 이미 13년 동안 서양화를 배우신 이력이 있으셨던 거네요.

맞아요. 정말 오랫동안 배웠어요. 저에게 인생의 선생님이 딱 세분 계시는데요. 첫 번째 인생 선생님을 고등학교 시절에 만났어요. 조소를 가르치시던 선생님이셨죠. 여행 동아리에서 만났는데 그때 문화 예술 답사를 참 많이 갔어요. 선생님과 답사를 함께 하며 우리 것에 대한 아름다움을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막 신토불이(身土不二)! 이런 느낌은 아니고요. (하하)


궁궐을 답사하면서 올곧게 뻗은 곡선, 편안한 채도로 얹어진 색들.. 이런 것들이 참 좋더라고요. 그때 우리 것의 매력을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전공을 바꿨어요. 서양화에서 동양화로요.


고등학교 2학년 무렵 동양화로 전공을 변경했다. 특히 종이에 대해 큰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사진제공=수영(Gong-Won)]



오랫동안 했던 전공을 바꿀 때, 반대가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왜 없었겠어요. 특히 어머니의 반대가 있었지만 과감하게 전공 변경했어요. 그런데 서양화와 동양화는 언어가 다르더라고요. 다가가는 작업에 대한 시선부터요. 서양화는 색을 '칠한다'라고 표현하는데, 동양화는 색을 '얹는다'라고 이야기해요. 연한 색부터 색을 켜켜이 쌓아 올리는 거죠. 그런데 저는 언어가 옮겨지는 이런 작업들이 너무 매력 있더라고요.



서양화에서 동양화로 전공을 바꾸는 작업은 그래도 '그림'이라는 같은 영역 속에서 바뀐 변화였다면, '무용'이라는 세계로 뛰어들었을 땐 완전히 새로웠을 것 같아요.

사실 무용의 언어들은 그림의 언어보다 정제되고 고전적이에요. 그 언어들을 배우는데 정말 힘이 들었어요. 저에겐 정말 생소한 언어들이었거든요. 마치 오랫동안 회사 일을 하며 가지고 있던 포맷들을 다른 조직에서 똑같이 사용할 수 없잖아요. 그 조직에 맞는 새로운 포맷들을 또다시 체화해야 하는 것처럼요.


서양화의 언어에서 동양화의 언어로, 또다시 그림의 언어에서 무용의 언어로. 그렇게 언어들이 옮겨가는 과정들을 몸 소 겪은 것 같아요. 지금도 언어들을 연결하는 과정에 서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그 과정들을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에요.



그 지점 사이들을 걸어 나갈 때 불안하진 않으셨어요?

왜 불안하지 않았겠어요. 불안했던 건 사실 이이예요. 그런데 재밌는 건 정 반대의 언어라고 해도 결국엔 다 맥락이 이어지더라고요. 누군가 새로운 선택에 망설이고 있다면, 과감하게 자신의 좌표들을 찍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선택을 두려워하는 시대가 왔어요.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정보들이 오히려 선택을 방해하고 있거든요.


처음 춤을 시작했을 때 오히려 정보가 없어서 힘들었어요. 춤을 배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도서관에 가 책을 찾아볼 정도였으니까요. 누군가에게 물어 물어, 겨우 춤을 알려주는 곳을 찾았던 것 같아요. 저는 매일 일기를 쓰는데요. 옛날부터 일기를 쓰다 보니 가끔 예전에 제가 쓴 글과 만나기도 해요. 그때 시절의 일기에 제가 그런 문장을 적었더라고요.


"목적지에 가고 싶은데, 어떻게 가는지 알지 못해 정류장에 서있는 누군가에게 목적지에 가는 버스를 물어봤다. 마침 그 버스가 오기에 탔건만 알고 보니 다른 길로 가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그 자리에 내려 또다시 목적지를 묻는다 ····."


목적지를 찾는 과정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그 과정들을 즐겼던 것 같아요. 목적지에 물어 물어 찾아가는 그 자체를요. 그리고 저는 <헤매는 즐거움>을 느끼는 때에 마음의 근육이 새겨진다 생각해요.



헤매는 즐거움이 있어야 마음의 근육이 생긴다. 정말 와닿는 문장이에요. 수영님을 지탱하는 또 다른 삶의 근육들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음.. 1순위는 움직임이에요. 행위 자체의 움직임이요. 그림을 그리는 움직임일 수도, 무용을 위한 움직임일 수도 있죠. 결국에는 예술인 것 같아요. 쪼꼬미는 3위? 하하. 나름 공동작업자로서 그분께서 6위에서 3위까지 올라오셨네요.



하하 쪼꼬미가 무섭게 따라잡았네요! 이 질문은 모든 분들께 드리는 공통질문인데요. 수영님을 나아가게 하는 문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나아가게 하는 질문까지는 모르겠지만, 자주 마음속으로 되뇌는 문장이 하나 있어요. "길을 잃지 않게 해 주세요" 이 되뇜은 "길을 잃으면 안 돼요!"라는 외침이 아니에요. 길을 잃어도 좋으니, 헤매어도 괜찮으니 목적지의 방향을 잃지 않게 해 달라는 말이에요. 방향만 잃지 않는다면 헤매는 그 과정 자체도 즐길 수 있거든요. 딴 길로 세어도 언젠가는 가려던 길로 다시 돌아올 테니까 말이에요.



그럼 마지막으로, 오늘의 인터뷰를 수영님의 소개로 마무리해보려 하는데요.

안녕하세요. 저는 아티스트명 Gong-Won으로 활동하고 있는 다원예술가 수영입니다. 저의 작업이 당신에게 - 언제 / 누구와 / 무엇을 / 어떻게 - 했는지 다시 한번 상기시킬 수 있는 좋은 쉼표가 되길 바랍니다.


[사진제공=수영(Gong-Won)]




목적지에 물어 물어 찾아가는 그 자체를 즐겼어요. 
'헤매는 즐거움'을 느끼는 그때에 마음의 근육이 새겨진다고 생각해요.




수영(Gong-Won)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좌표들을 전합니다.


*www.hellosuyo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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