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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희 Jul 16. 2024

그 순간에 진심이었다면 괜찮아.

 분명히 열심히 달려왔는데 그 끝이 결승선이 아니라 낭떠러지인 순간들이 있다.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에서 주인공 선재는 15년 전 미래에서 온 솔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영대회에 참여하고 우승까지 하지만 결국 어깨부상으로 수영을 그만두게 된다. 어머니의 소원이었던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10년 동안 열심히 수영만 했던 드라마 속에 선재처럼 나도 엄마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열심히 달린 적이 있었다.


건축업을 하시던 아버지의 연이은 사업실패로 이모가 운영하던 작은 식당을 인수받아 네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엄마의 소원은 내가 공무원이 되는 것이었다. 나만큼은 몸고생 마음고생하지 않고 월급 따박따박 받아오는 남편 만나서 안정되게 살라는 마음이셨다. 식당 일뿐만 아니라 엄마의 삶은 참 고됐다. 큰삼촌이 돌아가시고 장녀의 역할을 떠맡게 된 엄마는 여기저기서 사고를 치고 돌아다니는 알코올중독자 둘째 삼촌과 툭하면 죽는소리를 하며 돈을 가져가는 이모 때문에 아빠와도 다툼이 심했다. 고된 식당 일로 몸도 지치고 사고 치는 동생들 뒷수습하느라 마음도 지쳐버린 엄마를 술에 취한 아버지는 참 매몰차게도 내동댕이치셨고 그때마다 나는 한 여자로서 아니 한 인간으로서 엄마의 삶이 참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나만큼은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새 엄마의 소원은 나의 소원이 되었고 나는 엄마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을 하고 엄마가 원하는 과를 졸업해서 엄마의 소원대로 준정부기관에 인턴으로 입사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의 정직원이 되려면 관련 분야의 자격증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왕복 5시간 넘는 거리를 출퇴근하며 일을 하면서 자격증 시험까지 준비해야 했다.  그렇게 10개월을 노력했지만 끝내 나는 정직원이 되지 못했다. 


사실 나는 요리가 하고 싶었었다. 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아버지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도록 내버려 두지 엄마가 자기 욕심을 부려서 자식을 고생시키고 시간 낭비만 하게 했다고 엄마에게 볼멘소리를 하셨다.


선재는 말한다. 나는 열아홉에 수영을 못 하게 될 걸 미리 알았더라도 수영을 했을 거라고. 생각해 보면 수영을 하는 동안 진짜 행복했다고.  행복은 안 해보고는 절대 가질 수 없었던 거라고. 그래서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수영을 시작한 것도 못하게 된 지금도. 그러니까 나는 괜찮다고.


나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엄마의 바람을 이뤄주기 위해 노력했던 날들의 나도 진짜 행복했다고.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혼자 출근을 하는 나를 매번 따라나서주던 엄마가 곁에 있어서 정말 고마웠다고.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다고. 나도 그 시간들에 진심이었다고. 그러니까 엄마 딸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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