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아~~~!!!"
'아롱이가 맞나?'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녁 7시 무렵이라 그런지, 눈이 침침해져서인지 아리송했다.
대로 주변 박물관 뒤 환풍구에 올라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냥이가 멀리서도 보였다. 체격이 작은 데다 웅크리고 앉아 오가는 사람을 살피는 모습이 아롱이처럼 보였다.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지 서둘러 내려온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낮에 이미 박물관 주변을 몇 바퀴나 돌며 아롱이를 찾다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던 터라 힘이 들었다.
박물관 주변에는 환풍구가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다. 아롱이는 환풍구 위로 올라가 주변을 살피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다.
환풍구들은 제법 높이가 있어 거기서 나를 보고 서둘러 내려오는 걸 볼 때마다 살짝 조마조마하다.
박물관 뒤에는 아롱이와 비슷한 회오리 무늬 삼색이들이 두엇 더 있다. 서둘러 계단을 올라가 아롱이를 찾았다. 그 주변에 가서 아롱이를 부르면 밥배달이 온 걸 아는 녀석들이 얼굴을 빼꼼히 내민다.
이 시간에도 찾지 못하면 아롱이는 하루 밥을 굶어야 한다. 오전에도 두 시간 가까이나 찾아다녔었다.
봄이 되어서인지 이즈음은 아롱이를 찾는 게 아주 미션이다. 주로 녀석이 있을 법한 박물관 주변을 찾아다닌다. 영역 동물이라 멀리 가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몸이 고단하다고 느낀 이유는 전날부터 있었다. 토요일이라 봄이 무르익는 화성 청요리에 가 작은 오빠, 막내 동생과 나무 몇 그루를 심고 태행산 둘레를 산책도 했기 때문이다.
벚꽃에 복사꽃잎들이 분분히 날려 고향의 봄을 제대로 만끽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신록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산골이라서인지 벚꽃들이 만개한 나무들이 있어 보는 즐거움이 많았다.
일이 있어 새벽 일본으로 출국한 작은 아들 집 아롱이 딸 나리까지 보고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왔다. 이 문제 때문이었다. 전날 미안하다며 도움을 청하는데야 가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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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공개된 사료 중 하나를 유기농이라며 먹이고 있던 터에 놀라서 사료를 다 버렸단다. 하지만 새로 시킨 사료가 오지 않았으니 까미 먹는 사료를 좀 가지고 와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하루치 일정치고는 만만치 않아서인지 힘들었다. 그래도 전철에서 내려 박물관에 들러 은토끼님을 만났다. 아롱이가 언제 어디로 오는지 알아야 해서다.
박물관 뒤 경비 초소는 대형 환풍기 앞에 있다. 거기도 아롱이가 자주 올라가 있는 곳이라 매번 아롱이를 찾으러 가 불러댄다. 어쩌다 아롱이의 야~옹 소리가 나면 경비 초소에 근무하는 직원 분이 창문까지 열고 알려주신다.
"여기 있어요~ 여기~"
물병에 건사료 캔 등이 들어 있는 두툼한 봉투를 들고 아롱이를 찾아다니는 걸 가끔 보셔서인지 아롱이의 대답을 더 반기시는 모양이었다. 고양이 한 마리를 박물관 직원들이 모두 나서서 기르는 기분이 든다.
아롱이 찾아 삼만리를 한 그날 오전. 평소대로 박물관 뒤쪽으로 올라가는 계단 급식소를 먼저 들렀었다. 마침 까치 두 마리가 고양이 급식소에서 아침 식사 중이었다. 먹이를 찾아내는 까치들의 비상한 머리를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제법 알이 굵은 사료를 먹고 배탈은 나지 않을까 살짝 걱정스러웠다. 까치들이 먹거리가 있는 장소를 알게 되면 순식간에 사료들이 동난다. 아롱이가 그곳에 거의 가지 않는 걸 알아도 둘 다 섣불리 급식소를 폐쇄하자는 소리를 못하고 있다. 까치밥이던 고양이 밥이던 다 먹고살겠다는 몸부림을 알고 있다고나 할까?
전날의 피로가 풀리지 않은 데다 두 시간 정도 냥이들을 찾아다녀서인지 예배 시간에도 몽롱하니 노곤했다. 예배에 집중이 되지 않아 민망했다. 예배가 끝난 뒤 미술관 주변 까미 남매를 기르던 장소까지 가 봤지만 찾지 못했다.
결국 가족들의 저녁을 챙기고 다시 나가봐야 한다는 소리였다.
일요일이라 공원에는 만개하는 봄꽃들을 즐기기 위해 인파가 넘쳤다. 해가 있는 동안은 고양이들을 부르기도 어렵거니와 나와 돌아다니지도 않는다.
저녁을 대충 때우고 서둘러 집을 나서길 잘한 것 같다.
까미 엄마를 못 찾았다며 식구들을 닦달해 저녁을 대충 때우게 하고 서둘러 집을 나서는 나를 남편은 조금 안쓰럽게 바라본다. 다행히 '밥 먹고 싶으면 집으로 오라고 해!' 같은 어설픈 농담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랴? 아롱이는 한 끼도 못 먹었는데. 그렇게 아롱이를 찾아 만났으니 다행이었다.
4월인데 30도를 오르내리는 이른 더위에 여름이 걱정되었다. 그러더니 다음 날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비가 내렸다. 봄비가 아니라 장마처럼.
우중에 찾아다니느라 옷을 두 번이나 갈아입어야 했다. 아롱이에 딸 고등어까지 찾지 못해 두 고양이 녀석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던 봄날.
다른 녀석들보다 왜 내가 아롱이에게 집착할까 하는 의문이 살짝 생겼다. 정이 든 탓도 있겠지만 집에 돌아와 까미를 보며 느낄 죄책감이 더 커서가 아닐까?
고등어야 작년에 새끼 고니의 죽음으로 놀란 탓이 아직 남아 있어서지만 아롱이는 좀 다르다고 느낀다. 어디선가 야~옹이라는 소리가 들려올 것 같아 한참을 벤치에 앉아 귀를 기울이는 것도 아마 그 이유가 아닐까?
봄이 후다닥 지나가고 있는 이 밤.
인지상정이란 말이 떠오른다.
날이 많이 따뜻해지긴 했다. 그래도 걱정스럽다.
아롱이가 배를 채우지 못하고 보낼 밤이 아스라하게 지나간다.
봄날이 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