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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Apr 09. 2024

고양이를 기르면 무엇을 얻을까?

“엄마도 얘가 얼마나 못 됐는지 한 번 겪어 봐.”

캣타워에서 내려오지 않고 버티는 고양이 나리한테 

집이 좁아 미안하다며 창가 여기저기에 설치해 준 캣타워

‘안 내려와!’하며 큰소리를 내길래

”넌 뭘, 고양이한테 빠짐없이 잔소리냐? “고 한 소리 했더니 작은 아들이 이렇게 받아친다.

'3년 동안 그 못됐다는 고양이를 애지중지 기른 놈(세상없이 바빠도 고양이 화장실은 반드시 청소하고 먹이를 챙긴 다음 세 군데 스탠드를 켜 놓고 나간다)이 뭔 소리야' 싶어

“뭐가 그렇게 못됐는데?”

 하고 물었다.

 대답이 더 가관이다. 츄르 먹는 시간이 밤 10시 30분인데 정확하게 그 시간에 츄르를 주지 않으면 난리가 난단다. 일을 방해하는 건 기본이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츄르가 들어 있는 부엌 장을 쳐다보며 야옹 대는데 말릴 수가 없다나 뭐라라~. 도저히 안 주고는 못 배기게 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고양이들 최애 간식이 츄르가 맞긴 하지.‘하면서도

 종일 츄르 먹기를 기다려온 나리 입장에서 난리를 칠 수는 있겠다 싶었다. 물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은 게 먼저지만. 암컷 고양이 나리의 만만치 않은 성깔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알고 있어서였다.


 지난 추석 나리가 우리 집에 와 있었을 때다. 나리는 까미의 삼분의 이밖에 안 되는 작은 몸집의 암컷이다. 그 몸집으로 제 오빠(둘 다 엄마가 공원고양이 아롱이다) 까미를 찜 져 먹다 갔다. 어쩌다 뒤를 따라간 까미를 앞발로 야무지게 치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고나 할까? 의외로 순둥이인 까미는 그야말로 속수무책. 며칠 만에 집에 적응한 나리에게 수시로 맞고 지내는 것 같았다. 다만 까미의 녹내장으로 항상 신경 써 온 터라 그게 걱정스럽기는 했다. 눈을 맞아 다칠까 봐서였다. 

식탁 위로 뛰어올라오더니 그곳에 있던 비닐봉지에 들어가 장난을 치는 까미

 까미와 나리 엄마 아롱이도 보통내기가 아니다. 어찌나 앙칼진지 처음 2,3년 간은 밥을 주다 툭하면 손등 여기저기 상처를 내 피를 보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고양이들 밥 주러 갈 때 가방 안에 상처가 생기면 즉시 꺼내 바를 연고와 밴드가 필수품이었을까! 피가 철철 나는 손등을 보여주며 아프다고 큰 소리를 내면 아롱이는 잠깐 움찔하다가도 모르는 척 고개를 처박고 먹기에 바빴다. 그런 녀석을 보며 씩씩거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이런저런 아옹다옹을 제법 거쳐야 고양이들이 사람들의 마음자리에 들어서나 보다. 

 은토끼님은 귀요미를 유독 아끼시는 게 눈에 보인다. 나는 이상할 정도로 아롱이가 항상 눈에 밟힌다. 이쁜이 엄마가 사랑이를 유독 눈에 밟혀하시는 것처럼. 

제주대학교 교정에 밤 벚꽃이 활짝 만개해 있었다

 얼마 전 유채와 벚꽃이 일렁대는 제주에 며칠 다녀왔다. 

제주 세화 바다 앞 카페에서. 제주를 가면 숙제처럼 한 번씩은 꼭 들르게 된다.

 조카딸 집에도 고양이가 있다. 뽀리라는 이름의 왕까칠한 녀석이다. 각종 집안 일로 근 일 년 어디를 다니지 못한 터라 녀석이 나를 잊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조카딸이 제주 기르는 고양이 뽀리. 툭하면 바닥에 누워 이렇게 뒹군다

  문을 열자마자 문 앞에 나와 마중을 다한다. 하긴 호구를 잊을 리 없겠지. 7시 조금 넘어 출근하는 제 엄마는 나가면 오밤중이나 되어야 돌아온다. 당연히 나랑 시간을 보내게 되니 툭하면 길을 막아가며 간식을 요구한다. 자기가 있는 곳을 지나가려면 통행세를 지불하라며 한 대씩 때리려 들기도 한다. 내 인간계 서열이 제 엄마보다 높다고 야단을 쳐도 소용없다. 이 모든 사단이 다 고양이들 호구로 일찌감치 등극한 내 덕이다. 

 뽀리 녀석의 갑질에도 조카딸이 하는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심지어 녀석의 존재에 고맙기까지 하다.

"뽀리가 있어서 밤에 무슨 소리가 나도 무섭지 않아. 집에 들어올 때도 외롭지 않고."

도둑이 없는 제주라지만 나도 모르게 걱정을 덜게 된 적이 여러 번이다. 

성산 일출봉 주변의 봄 바다와 주변 풍경이 고혹적이었다.

 올봄은 벚꽃이 유난히 탐스럽더니 금방 바람에 날려 분분히 떨어진다. 

벚꽃 잎이 바닥에 눈송이처럼 날려 깔려 있다.

공원 고양이들은 봄을 타는지 겨울처럼 먹이를 복스럽게 먹지 않는다. 귀요미는 위장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더니 한 주 안 본 사이에 홀쭉해졌다. 자기 먹이를 악착같이 챙기는 다롱이도 먹이에 심드렁하다. 구내염을 심하게 앓던 턱시도 녀석은 약을 꾸준히 먹여서인지 자기를 잊지 말고 먹이는 주고 가라며 제법 소리를 키운다.


 하지만 문제는 아롱이. 봄이 되면 녀석을 찾는 게 아주 일이다. 박물관 주변을 몇 번이나 돌며 찾아야 한다. 봄을 맞아 공원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넘치는 탓도 있겠지만 며칠 전에는 낮에 두 번이나 나가도 찾지 못해 결국 모임을 마친 밤 9시에 찾으러 갔다. 하지만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까미와 나리 엄마인 탓에 아롱이를 찾지 못하는 날이면 걱정이 말이 아니다. 

전날도 저녁 먹고 나가 간신히 찾아 딸 고등어와 밥을 먹였다.

한밤중인데도 아롱이를 부르는 소리에 딸 고등어가 스윽 나타나 다리에 제 몸을 비빈다. 이미 두 번이나 잔뜩 먹이를 먹은 녀석이라 '고등어야. 엄마 어딨어?'라고 물었지만 소용이 없다. 그냥 따라만 다닌다. 하긴 내게 고양이 언어를 알아듣는 능력이 없으니 몸이 힘들어도 닥치는 대로 여기저기 찾으러 다닐 수밖에. 


 이럴 때는 동물들의 언어를 알아듣는다는 웹툰 속 수의사들이 부럽기만 하다. 


 집에 돌아와 늦었다고 먹이를 보채는 까미에게

 '얌마. 네 엄마 아롱이는 밥 굶고 있는데~. 넌 아까도 먹었잖아. 간식까지...'

 눈치를 준다. 까미는 아롱이라는 소리에는 항상 민감하게 반응한다. 내일 좀 서둘러 나가 찾아봐야지 하며 까미를 들어 안고 토닥거리는데 가슴 밑바닥에서 그래도 따뜻한 기운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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