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아?!!!"
"아휴! 이 웬수! 어디 있다 왔어?“
나와 은토끼님에게 아롱이는 공원 고양이계의 금쪽이 1이다. 그런 아롱이를 이틀 만에 찾았으니?
장마가 끝날 듯 말 듯 이어졌다. 요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다. 해가 났다 소나기가 퍼붓다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다.
은토끼님이 하루 연차를 내신다고 해 연 3일 박물관 고양이들 밥을 주게 되었다. '뭐 알아서 다들 나오겠지.' 싶어 약간 태평하게 생각했는데 웬걸~. 둘째 날 종일 아롱이와 귀요미가 나오지 않았다. 아롱이는 배고프면 주차장 주변으로 밤에도 찾아와 서성거린다. 귀요미도 잔디 능선 근처를 벗어나지 않는데...
비가 오락가락 하는 데 네 번이나 공원으로 나가 찾아다녔다.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온 그 밤. 천둥번개가 치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빗소리가 음악처럼 들리는 게 아니라 공포분위기를 조장하는 기분이 들어 자꾸 거실을 서성거렸다.
다음 날 일찍 공원에 나갔다. 전날 밥을 먹지 못했으니 분명 나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더구나 그날 오후에는 건강검진에 이상이 발견돼 재검으로 초음파 검사가 예약되어 있었다. 오전에 두 녀석을 찾아야 했다. 없었다. 전날 공원에 나갈 때마다 달려온 고등어와 사랑이 거기에 다롱이와 침 흘리는 턱시도 녀석만 우르르 나왔다.
'검사 끝나고 공원에 오면 다섯 신데??? 어쩌지.'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 금쪽이 1,2를 못 찾았다고 연락을 했으니 연차를 내 볼일을 보시는 중에도 은토끼님이 걱정 많이 하실 텐데~.
고양이들 오후 급식을 공원에 두고 가려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박물관 주차장 주변에 급식 봉투를 쟁여두고 혹시나 싶어 가 보니 귀요미가 조릿대 주변에 있었다. 병원 예약 시간 때문에 얼른 밥을 챙기는데 다롱이와 또 다른 객식구들이 나왔다. 오전에 밥 준 지 얼마나 됐다고???
게다가 하필 우르렁거리더니 소나기까지 쏟아졌다.
요즘 소나기는 황순원의 <소나기>와는 결이 다르다. 소설 속 소나기는 짧은 시간에 흠뻑 내린 뒤 맑고 환한 햇살이 쏟아진다. 이어서 청량하고 맑은 가을 하늘이 펼쳐진다. 소년 소녀의 첫사랑 분위기에 딱 맞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소나기에 담겨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이즈음 내리는 소나기는 시도 때도 없이 갑자기 퍼붓다 뚝 그친다. 귀요미 밥 먹는 그 짧은 시간도.
초음파 검사를 위해 샤워하고 옷까지 갈아입고 나온 나로서는 소나기만 아니라 보채는 객식구들 모두 원망스러웠다.
시간 여유가 없어 땀과 비에 젖은 상태로 병원으로 향했다. 나만 이 꼴이겠나 싶었다. 하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나만 꼴이 장난 아니었다. 잔디 능선을 다녀 운동화는 진흙 투성이에 머리는 산발에 가깝고 옷은 축축하고.
민망할 정도였다. 검사를 위해 옷을 갈아입고 대기 의자에 앉아 있는데 자꾸 마음이 가라앉았다. 마음의 평온을 찾기 위해 오전에 받은 친구의 영상을 떠올렸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2년 전보다 물혹이 하나 더 늘었다는 정도였다. 다른 장기에도 물혹이 늘어나는 건 분명 나이 탓이겠지 하며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공원으로 향했다.
큰 병원으로 가 보라는 소리를 듣지 않은 게 어딘가?
비는 소강상태였지만 높은 습도 때문에 땀이 솟았다.
아롱이를 못 찾으면 전날처럼 저녁을 먹고 다시 나와야 한다. 아롱이 귀요미는 여섯 살. 못 찾는 날은 걱정 먼저 앞선다.
서둘러 걸으며 대로변 인도에서 박물관 뒤로 올라가는 계단을 흘깃 살폈다. 그 근처에서도 아롱이가 가끔 나왔기 때문이다. 조금 멀리서도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다. 아롱이였다. 아마 내 발자국 소리가 들려 어디선가 달려온 모양이다.
밥을 두고 온 정산소 앞으로 데리고 가야 했다. 대로 주변 인도로 갈 수는 없으니 박물관 뒤로 돌아가야 했다. 아롱이가 날 따라 움직이는 걸 보면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 산책을 시키러 나왔냐고 종종 묻는다. 그만큼 잘 따라다닌다.
하늘공원에 가니 사랑이가 나와 제 엄마를 보고 달려 나온다. 이 여름 사랑이는 식욕 폭발이다. 하루 네 번도 마다하지 않는다. 워낙 운동량이 많으니 비만 걱정이 없다는 게 다행이긴 하지만.
재검 결과도 심각하지 않고 아롱이와 귀요미도 모두 찾아 밥을 먹였으니 이번 주 임무 완성이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오늘 재검진을 하셨던 의사 선생님은 '걱정 말라며 즐겁게 사세요.!' 하셨는데 어찌 보면 세상은 내 생각보다 더 소소한 즐거움으로 가득 찬 게 아닐까?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순간순간을 즐기며, 다양한 삶의 모습을 포착해 친구들과 나누는 친구.
보내준 사진 속 꽃 옆에 익어가는 열매를 찬찬히 살피며 나도 그런 풍요를 나누며 살아야겠다 마음 먹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