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좁은 내 마음
엄마지만 아이 같은, 아이지만 엄마 같았던
저 멀리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삐뚤빼뚤 줄을 선채로 종종 걸어온다. 내 아이가 오는지 고개를 기웃거려 본다. 초등학교 입학 며칠 만에 친구와 두 손을 꼭 잡고 나오는 둘째가 보인다. 둘이 그 새 친해졌는지 쫑알쫑알거린다.
불안이 높은 아이가 낯선 환경인 교실에서 친구는 사귈까 걱정됐다. 그런데 나의 걱정은 친구와 두 손 꼭 잡은 아이 모습을 보자 연기처럼 사라졌다. 게다가 친구와 함께 하교 후 놀이터에도 가다니. 그런 아이의 모습이 기특하고, 행복해하는 아이의 모습에 내 마음도 행복하다.
두 아이는 그네 타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늘 많은 아이들이 탐내는지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그날도 그랬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들이 그네를 타고 있었다. 둘째는 언니들 옆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비켜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멀찍이서 의자에 앉아 아이를 지켜보다 몸을 일으켰다.
혹여 아이 혼자 기다려 비켜주지 않는 것일까 싶어 엄마인 나도 기다리는 것에 합세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그네를 탔다.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꼭 비켜줘야 하는 건 아니지만, 어린 동생이 오래 기다렸으니 비켜줄 수 있는 것 아닌가. 내 얼굴은 울그락 붉그락 거렸다. 그만 기다리자고 아이에게 말을 하려는 순간, 그네를 타던 아이들이 일어났다.
“엄마, 언니들이 일어났어” 아이는 흥분했다. 속 좁은 나의 마음을 뉘우쳤다. ‘그래, 좀 기다리기는 했지만, 비켜줬잖아. 저렇게 좋아하니 됐지 뭐’ 하는 순간. 아이의 친구가 저 멀리서 뛰어왔다. 그런데 둘째가 그네를 타지 않고 멈칫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의 친구는 “지우야 너 안타?” 물었다.
“어, 너 먼저 타”
그네 타는 것을 제일 좋아하는 아이. 십 분을 넘게 기다려 드디어 기회가 왔는데. 친구에게 그네를 양보하다니. 그동안 힘들었고, 공들였던 ‘그네’에 대한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이가 그네 타는 맛을 알게 된 건 둘째가 4살 때쯤이었다. 놀이터에서 그네는 가장 인기가 있기에 기다리는 것은 당연했다.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와 함께 놀이터에 왔고, 기다려야 할 때와 비켜줘야 할 때의 암묵적인 타이밍은 조화로웠다. 그런데 둘째는 조화로움에 늘 끼지 못했다. 긴 기다림 끝에 그네를 차지하고도 누군가 다가오면 벌떡 일어나 그네를 양보했다. 상대방 부모는 기다릴 수 있다며 내 아이에게 타기를 권유해도 소용없었다.
처음 한 두 번은 아이의 마음이 변해 그네가 타기 싫다 생각했다. 차라리 그런 것이었으면 내 마음이 덜 속상했을 텐데. 앉아보지도 못하고 그네를 양보한 아이는, 다시 그네가 빈자리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짐작컨대 둘째는 양보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린이집 교사와의 상담 때 선생님은 나에게 둘째는 동생들에게 양보를 잘하는 아이라고 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하면 안 된다고 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정 어린이집을 다녔던 4살 둘째는 그곳에서 가장 언니였다. 더 어린 동생들이 있었고, 긴장도가 높은 아이였다. 그런 둘째는 선생님이 한 이야기들이 강박처럼 따라다녀 누군가 다가오면 무조건 비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음속에는 화도 나지만, 아이에게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줄 사람은 부모뿐이었다. 6살 때 까지도 아이는 그네를 양보했다. 처음 몇 번은 나도 그냥 넘어갔다. 내 아이가 양보한 자리에 다른 아이는 흥분되어 그네를 타려고 뛰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도 우선은 자리를 비켜 주고 나서,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이의 행동은 변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먼저 용기를 내야 했다.
“죄송한데, 아이가 지금 막 앉았거든요. 한 번도 못 탔는데 조금만 타고 비켜줘도 될까요?”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 눈동자는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흔들거렸다. 나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목소리 톤은 괜찮은지. 내 표정은 어떤지. 10초도 되지 않는 그 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부분 부모들은 이해했고, 자녀에게도 잘 설명해 줬다. 내 아이도, 그 아이도 모두 즐겁게 그네를 탈 수 있었다.
아이가 한순간에 바뀐 것은 아니다. 내가 두려움을 무릅쓰고 양해를 구했는데, 아이는 타지 않겠다고 양보했다. 그런데 한 번, 두 번, 사계절이 지나고, 한 살씩 먹으며 아이는 조금씩 변했다. 여전히 ‘내가 양보 안 하고 이렇게 그네를 타고 되나?’라는 표정이었지만, 아이는 불편한 시간들을 견디며 무언의 조화로움을 배워갔다. 그런데 자신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간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또다시 친구에게 양보라니.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인지. 아이가 왜 그런 것인지. 그 순간 내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친구에게 그네를 양보하고, 옆 그네에 자리가 비었다. 그제야 아이는 그네를 탔고 행복해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에게 물었다.
“보물아, 아까 왜 양보했어? 보물이도 오래 기다렸잖아”.
“엄마 내가 좋아하는 친구잖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먼저 타라고 하고 싶었어. 나는 그게 더 좋아”
여덟 살 아이 앞에서 마흔 살 엄마는 부끄러웠다. 내 자식이 먼저였던. 친구에게 양보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속 좁았던 내 마음을 아이가 눈치챈 것 같았다.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양보를 했다. 그런데 엄마인 나는 아이의 마음을 살피기보다는, 그동안 내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을까 마음을 썼다. 아이는 타고나기를 다른 사람을 돕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을 행복해하는 아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하루였다. 오늘은 아이지만 엄마 같고, 엄마이지만 아이 같았던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