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시신경이 모두 죽었다."
자세하지는 않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왼쪽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기억이 없다. 부모님 말로는 내가 3살이던 시절, 가난했던 가사에 보탬이 되기 위해 어머니가 가내 부업을 하셨다. 그 시절 가내부업은 정말 흔한 일이었는데 그 중 우리집에서 하던 일은 머리띠를 가공하는 일이었다는데 자세히는 모르겠다. 아무튼, 작은 방 한켠에 작업공간을 마련해놓았는데 어머니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걸음마를 뗀 내가 그걸 건드려서 눈에 머리띠를 맞았고 그 결과 나는 한쪽 눈을 잃게 된다.
그때의 충격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어머니말로는 누에서 피와 동시에 눈동자가 흘렀다고 한다. 그런 나의 눈에 당시 어떤 조치가 이루어졌는지는 모르겠는데 생각이 자리잡을 무렵 나의 왼쪽 검은 눈동자 사이에는 흰색 줄이 그어져 있었다. 어머니 말로는 눈동자를 꿰매서라고 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눈동자를 꿰맬 수가 있나싶다. 그리고 나의 공식적인 눈의 병명칭은 백내장이었다. 지금 찾아보니 백내장은 눈동자가 하얗게 변하면서 시야를 가리는 병이라는데, 눈동자가 하얗게 변한건 맞지만 난 왼쪽눈으로 앞을 본 적이 없다.
병원에 가면 오른쪽 눈을 가리고 나에게 물었다. "뭐가 보이세요?" 그러면 어린 나는 대답했다. "희미하게 뭐가 보여요."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그건 오른쪽 눈이 보는거다. 눈을 감아도 빛은 인지하니까, 그걸 왼쪽눈이 본다고 착각한거다. 아마 이런 나의 대답으로 부모님은 나의 왼쪽눈이 복구될 수 있을것이라 희망을 갖고 계셨던 것 같다.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의 시간이 지났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나의 눈에는 큰 일이 생겼다. 눈의 검은자 사이에 있던 백내장을 넘어서 흰자위에도 검은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부모님과 병원에 간 나는 각막이 얇아지면서 흰자 내부가 보이게 되는 현상이라는 말을 듣고, 안구적출 수술을 권유받았다. 안구적출수술이란, 말그대로 안구를 제거하고 그 안에 안구 모양의 임플란트를 삽입하는거다. 그리고 그 위에 '의안'이라고 불리는 탈착형 보형물을 쓰고 살아가게 된다.
부모님은 당황했다. '우리 아이의 눈은 재생이 안되는 건가요?'라는 물음에 의사는 '시신경이 모두 죽었다.' 라는 대답을 했다. 사실 나는 전혀 충격적이지 않았다. 평생을 안보며 살아왔는데, 그리고 살아가면서 두눈으로 살아가는게, 어떻게 다른 두개의 시야를 하나로 맞출 수 있지? 하면서 더 이상할거란 생각도 했었다. 무엇보다 내게 맞는 기술이 있다면 이미 기사로 접했을 것이고, 만일 그 기술이 있다고 한들 엄청난 비용이 발생할 것이기에 작은 희망도 갖고 있지 않았다. 아니, 희망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 애초에 관심이 없는걸.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마음은 달랐었나보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날 밤 부모님은 큰소리가 날 것을 두려우셨는지 바깥에서 주무시고 온다고 하셨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수술을 받게 된다.
그렇게 모양만 갖추던 왼쪽눈과 이별을 한 것이 2004년 겨울. 지금이 2022년 겨울이니까 어느덧 18년이 지났다. 사람이 태어나고 18살이 되면 성인이라고 했던가. 보이지 않는 눈에 대하여 무덤덤했던 나는, 사실 많은 부분에서 내 자신의 왼쪽 눈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여행을 가서 밤마다 의안을 세척할 때 당당히 의안사용자라고 말하지 못하며, 의안을 착용하지 않은 채로 사람들과 만나지 않는다. 여전히 나는 사진을 찍으면 사진 속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두 눈동자의 초점을 일치시키려 포토샵과 씨름하고 있으며 친구들과 약속장소를 갈때 장애인 할인을 받기위해 예약 담당을 자임한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꽤나 많은 곳에서 스스로를 부끄러워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당당하고 싶다. 그래서 글을 통해 나와 내 눈과 내 장애에 대해 이야기나누고 싶다.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비관하지 않으며, 35살의 지금 나도 매일 실수를 하고 성숙하지 않으니까 이제 막 18살 성년이 된 나의 장애가 미성숙할지언정 응원하며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그렇다면 성숙한 성년(成年)은 못되더라도 나를 밝힐 성년(晟年)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나의 두번째 성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