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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넨브릴레 Dec 02. 2022

우리가 타인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

조종사가 들려주는 인사이트 이야기_2/6

인사이트를 주제로 써가는 브런치북이다. 아래의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인사이트는 "역동적 요소들을 이해함으로써 갈등의 해결에 기여하는 깨달음"이라는 정신의학에서의 정의를 기준으로 한다. 


첫 편에서 지나친 감정 의존과 착각으로 실수하는 자신을 인식하라고 했다. 

이번 편은 "착각은 나만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1부. 나(我)와 타인(他人)에 대한 인식

지나친 감정과 착각으로 실수할 수 있음을 인지하라_(自)我

우리가 타인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

 ㄴ(원제, 原題) 지나친 감정과 착각으로 실수할 수 있음을 인지하라_他(人)


2부. 역동적 요소들의 이해

정보의 홍수 시대, 당신은 진실 찾기를 하고 있나요?

일본 불매운동 반대, 정상일까 비정상일까?

유튜브 세뇌 시대, 필터 버블과 에코 챔버

생존을 위한 편견·선입견, 그리고 용어에 대하여



착각

착각(錯覺)은 어떤 사물이나 사실을 실제와 다르게 지각하거나 의식하는 행위를 말한다(나무위키). 현재 나의 정서 상태에 의해 착각을 일으키기 쉽다. 

전편에 언급했던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커피타임' 코너를 다시 보자. 사실 이야기는 담당 작가가 일본 여행을 위해 공항을 갔을 때, 무언가 착각했던 일화로 시작됐었다.  

 

박세훈작가 | (공항) 보안검색대에 이렇게 들어가는데 갑자기 거기서 여권 내밀었더니, "어디서 내리세요?"그러는 거예요.

이진우기자 | 어디서 내리세요? 어디까지 가세요도 아니고?

박세훈작가 | '왜 물어보지?' 생각하며, "아~ 예~ 오사카에서 내립니다." 했더니, "아니, 마스크 내리세요"라고 하는 거예요. 

다 같이 | "와~ 하하하하"


대화는 '본인의 동문서답에도 불구하고 무뚝뚝하게 마스크 내리라고 했던 직원'으로, 다시 '공항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다들 일부러 그러는(무표정한) 것 같다'로 화제가 이어진다. 

작가는 공항 직원에게 왜 그렇게 대답했을까? 에피소드 직전 했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공항 가면 공항 느낌 되게 좋잖아요~ 약간 들떠있는 느낌도 되게 좋고~" 

그 당시 그의 기분과 "내리세요"라는 말의 조합만으로도 충분히 잘못 듣게 할 만했다. 작가는 "마스크 내리세요"가 공항에서 처음 듣는 단어(문장)여서 그랬다고 했다. 마스크를 안 쓰던 코로나 발생 이전에 공항에 갔다가, 마스크를 써야 하는 시기에 오랜만에 공항에 가게 돼서 분위기가 낯설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상대방이 잘못하는 게 아니라는 인식의 시작

"마스크 내리세요"라고 했던 공항 직원의 입장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박세훈 작가의 동문서답은 하루 일과를 마친 후 동료들과 술 한잔 하며, 

야~ 심지어 오늘은 "마스크 내리세요"라고 했더니, "오사카에서 내려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더라 하하하

라고 안주거리로 삼을만하다. 


내가 한국에서의 휴가를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올 때, 아내가 늘 배웅해준다. "당신 힘들 텐데, 혼자 공항 갈게요"라고 하면 아내는 "아녜요. 공항 가면 기분이 좋아서 나도 함께 가려는 거예요."라고 한다. 아내도 박세훈 작가처럼 '공항 가면 공항 느낌 되게 좋은'가 보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우측으로 스카이 72 골프장이 보였다가 사라지면,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 거의 도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금 더 지나면 좌측 창문 너머에 GS칼텍스 주유소가 보인다. 활주로에 내리기 위한 비행기가 바로 위를 지나가는 곳이라서, 비행기 사진을 찍고 싶은 분들의 출사(出寫) 장소이기도 하다.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닻 내림 효과(Anchoring effect)’를 정의한 바 있다. 배가 바다의 어디선가 닻(Anchor)을 내리면 일정 범위 이상 움직이지 못한다. 인간도 사고가 처음에 제시된 이미지, 기억, 정보 등에 닻을 내리면 그 영향을 받아 새로운 정보를 수용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 수정하게 되는 행동 특성이다. 

박세훈 작가가 제1여객터미널 근처 GS칼텍스를 지나려는 찰나, 우연히 대한항공의 A380 비행기가 저 멀리 바다로부터 다가와 머리 바로 위를 지나가는 모습을 봤다고 상상해보자. A380은 길이 72.23미터, 너비 79.15미터의 초대형 여객기다. 100미터 달리기를 3/4 남짓 해야, 비행기 앞에서 뒤까지 갈 수 있다는 얘기다. 조종사인 나도 560톤 무게의 철과 기타 신소재로 만들어진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 신기한데, 박세훈 작가에게는 어떠했겠는가? 

공항에 접근하면서 봤던 '비행기가 내리는 모습'에 닻을 내린 상태였다면, "마스크 내리세요"라는 말에 "오사카에서 내리는데요"라고 응대한 이유에 대해 설명이 가능하다. 만약 공항 직원의 전반적인 목소리가 작았거나, 최소한 "마스크"라고 할 때만이라도 목소리가 작았다고 가정해보자. 닻 내림 효과는 더 확실하게 나타난다. 

더군다나 검색대에서는 직원이 "어디에 가세요?"라는 질문을 실제로 하기도 한다. 어떤 도시는 휴대용 라이터의 반입이 금지돼 있기 때문에 확인하는 질문이다. 

공항 보안검색대에 들어가는데 누군가 여권을 받으며 "마스크 내리세요"라고 요구하는 곳은 여행객의 혼란을 유발할 소지가 있는 핫스팟(Hot spot)일 가능성이 생긴다. 누군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그런 행동을 할만한 이유가 있는 장소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공항 직원은 엉뚱한 대답을 술안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왜 사람들이 마스크를 내리라는데 "오사카에서 내린다"라고 할까?'를 고민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왜 내가 착각하는 상대방을 이해해야 하는데요?

『넛지(복잡한 세상에서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 리처드 탈러·캐스 선스타인, 리더스북)』는 선택 설계자가 취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금지하거나 그들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책에 나온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 남자화장실의 사례를 보자. 

이곳 소변기 정중앙에는 조그맣게 파리 모양의 스티커가 붙어 있다. 그 어디에도 소변을 볼 때 파리를 조준하라는 말이 없었지만 이용자들은 자연스럽게 파리를 겨냥했고 덕분에 밖으로 새어나가는 소변량을 80%나 줄일 수 있었다. 소변기에 파리 모양의 스티커를 붙인 것처럼 사람들의 특정한 행동을 유도하는 방식이 바로 선택 설계다. 설계도에 따라 건물의 형태가 결정되듯, 선택 설계의 내용에 따라 선택의 결과나 영향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선택 설계는 넛지를 실현하고 그 성패를 좌우하는 일종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선택 설계자가 만들어 놓은 세상 속에 산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소하고 작은 요소라고 해도 사람들의 행동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박세훈 작가가 착각했던 상황에서는 공항직원이 상대방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행동 설계자가 돼야 한다. 그들의 목적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보안검색대를 운영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공항직원은 '공항을 가끔 방문하는 특성'을 고려해 여행객을 먼저 이해해줘야 한다. 


해결법은 간단하다. 말할 때, "마스크! 내리세요"라고, 마스크를 강조하면 된다. 



대화 중 발생하는 감정싸움. 누구의 잘못일까?

우리는 일상에서 대화할 때 미래를 예측하길 좋아한다. 일종의 인사이트다. 

나는 동료 기장님들과 삼삼오오 모여 식사하면서, 미국의 금리 인상과 세계 경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있다. 중국 경제 성장률과 제로 코로나 정책의 상관관계를 고려했을 때 언제쯤 코로나에 대한 정책이 변화될지 예측하고 싶다. 거시적인 대화가 세계 항공시장과 중국의 항공시장을 거쳐, 우리 회사의 비행 편수 확대 가능성에, 미시의 가장 말단인 우리 급여가 언제 정상화될지에 대한 예상에 까지 이른다. 누구든 예측은 할 수 있다. 나도 예측의 대화에 서슴없이 뛰어들어 열변을 토한다.   

인사이트로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 예측을 정확히 할 수 있다면 왜 그 자리에 있겠는가? 그 능력으로 돈을 벌어 어딘가 해변가에 누워있을 것이다(손경제 이진우 기자의 말이다). 

대화를 하다가, 너나 할 것 없이 가끔은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라거나, "희망 회로 아니에요?"라는 말을 한다. 정답이 없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당신이 잘못 알고 있다"라는 뉘앙스를 주는 어법이다. 작용 반작용 법칙으로 본인이 알고 있는 정보에 대해 지나치게 확신하며 감정적으로 강한 어조를 내세우게 되기도 한다. 그러면 또 상대도 함께 의견이 강해지고... 감정싸움으로 치닫게 된다. 결국,

'저 사람이 나한테 저렇게 말해? 와~ 다신 내가 마주하나 봐라'

라고 다짐한다. 유치해 보이는가? 생각보다 늘 있는 일이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은 깊게 사귀기 힘들다"라고까지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 때문이 아니다. 누구나에게 있듯, '상대방이든 나든 확증 편향이나 기억력 착각의 오류가 있겠거니'하며 웃어넘기면 그만인 일이 대부분이다.  

친목을 위해 모인 것이지 다툼을 위해 모인 것이 아님을 생각하자. 여러분이 이 목적을 위한 행동 설계자가 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언제 어느 상황에 있든, 상대방을 먼저 이해하려는 행동은 손해 보는 일이 아니게 된다. 

단,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뒤로 자기 자신을 높이려거나, 무슨 말이든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 경우는 예외다.


내가 그렇듯, 다른 사람도 감정 의존과 착각의 일상에서 실수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덧붙임.

1. MBC mini 팟캐스트 2022년 11월 11일 자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커피타임(1부) 12분 9초부터 들으면 본 내용이 나온다.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손경제)』의 사례는 여기까지만 언급한다. 


2. 이전 글에서, 

"상대가 '불친절'이라는 부정의 감정을 일으킬만한 행동을 나에게 해도, 내가 즐거움이라는 감정상태에 놓여 있다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게 가능하다." 

따라서, 

"공항에서는 여행 간다는 즐거움의 상태에 있기 때문에 공항직원이 불친절해도 된다" 

라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우리는 똑같이 여행 가는 것 때문에 즐거운 상황이지만, 공항직원이 불친절할 때 보다 승무원이 불친절할 때 더 예민하게 반응하기 쉽다. 비행기 안에서, 우리에게는 "승무원은 예쁘고 친절하다"라는 닻 내림 효과가 생긴다. 이런 강한 효과 때문에, 어떤 이유로 불친절함을 느끼면 '친절해야 하는데 나한테 왜 저러지?'라는 반작용이 생긴다. 

2022년 10월 23일 밤, 대한항공 여객기가 필리핀 세부 공항에 비상 착륙했다. 승무원이 승객들에게 "고개 숙여"라고 반말로 지시한 것을 두고 적절한 대처였느냐는 논란이 있었다.

먼저, 공항 직원께는 "왜 그렇게 불친절하세요?"라고 친절을 강요해도 안 통하지만 승무원께는 제법 통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비행기에 돈을 내고 탔지만 공항 이용은 비용 지불과 관련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항공사는 우리를 대신해 공항이용료를 지불한다. 우리의 티켓 가격에 공항을 이용하는 비용이 포함돼 있다는 얘기다. 

더 중요한 것은, 승무원도 유사시에 보안 담당자라는 사실이다. 

공항 직원의 업무는 보안과 관련돼 있다. 사람을 의심하고 검사해야 하는데, 친절하다가 갑자기 의심하면 오히려 기분 나쁠 수 있다. 서비스 실패는 욕먹을 일이지만, 보안 실패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무뚝뚝하게 우리를 대한다. 

항공보안에 관한 최상위 국제법에 해당하는 'ICAO(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zation, 국제민간항공기구) 문서 10002 객실 승무원 안전훈련 매뉴얼(Doc 10002 CABIN CREW SAFETY TRAINING MANUAL)'의 객실 관련 규정에 따르면, 

(승무원은) 충격 방지 (자세) 명령을 외친다. 이때 명령형을 사용하는 것을 포함할 수 있다

라고 명시돼 있다. 충격 방지 자세는 '브레이스 포지션'(Brace Position)이라고도 불리는데, 항공기가 무언가에 충돌하거나 비상 착륙할 때 승객에게 취하도록 하는 자세다.

ICAO는 '문서 10086'에서도 비상 탈출 시 승무원의 명령은 크게, 단정적으로, 반복해서, 지속해서 이뤄져야 한다고 권고한다. 마찬가지로 객실 승무원들이 동시에 명령을 외치라고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래의 기사를 일부 참고했다. 


3.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주장을 내세우며 "나의 뇌피셜이에요."라고 구분 짓는다. 내가 의견을 낼 때, 맞은편에서 내 술잔을 채워주며 듣고 있는 상대방의 강한 대응을 경계하려는 것이 아니다. 확증편향에 빠졌거나, 기억력 착각의 오류가 있거나, 실제로 어떤 착각에 의한 의견일 수 있음을 나 스스로 경계하려는 방법이다. 또한 확실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니 당신이 반론을 제기해도 좋다는 대화법이다.


4. 성급함은 분명 경계해야 할 일이다. 

요즘에야 코로나로 한산해졌지만 공항은 늘 여행객들로 붐볐다. 짐 부치기, 검색대 통과, 여권 검사 때마다 줄을 서야 하기 때문에, 여행사들은 "늦어도 비행기 탑승 3시간 전에는 공항으로 오셔야 해요"라고 기준을 삼기도 했다. 공항은 오랜 기다림이 필수인 장소다. 

"오사카에서 내립니다"라고 한 행동은 ‘닻 내림 효과’와 더불어 성급함이 더해져 생긴 것일 수도 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맞닥뜨린 검색대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뭔가 행동을 빨리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있다.  

오랫동안 대기 줄에 서 있고 싶은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오래 기다리도록 만들고 싶지 않은 생각이 생긴다. 

공항직원들은 겉옷을 벗어야 한다든가, 주머니의 소지품을 전부 꺼내야 한다든가, 노트북 컴퓨터가 있다면 가방에서 따로 꺼내어 두도록 하는 등의 행동 지침을 신속, 간결하게 얘기한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이다. 나와 대화를 하는 중에도, 내가 물건을 담아둔 바구니를 검색대로 밀어 넣거나, 앞사람이 물건을 담아 보냈던 바구니가 빈 채로 돌아오면 신속하게 정리해서 쌓아두는 모습을 보여 준다. 

빠른 절차대로 진행하려면 친절한 얼굴보다 무뚝뚝한 표정이 여행객들의 긴장과 집중을 높인다. 공항직원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신속하게 일을 진행시키는 것은 뒤에서 기다리는 승객에 대한 배려다. 내가 '그' 또는 '그녀'를 대면할 때 친절한 모습은 못 봤지만, 앞서 기다리는 동안 배려를 받은 셈이다. 

이제 나도 얼른 알아듣고 재빨리 검색대를 통과하기 위한 행동을 해야 할 것 같다. 여기서 예기치 않은 착각이 유발되는데, 이러한 성급함은 사실 생존을 위한 부산물이나 마찬가지다. 


어쨌거나 우리는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니라면, 항상 차분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한국 공항에서 우여곡절을 겪은 박세훈 작가가 일본에 도착했을 당시를 상상해보자. 

비행기가 간사이 국제공항 주기장에 들어서고는 멈췄다. 비행기를 자주 탔던 사람들은 창 밖을 보면 비행기가 주기장에 도착했는지 여부를 잘 안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서서 머리 위 짐칸에서 짐을 꺼내 내릴 준비를 하고 싶다. 역시 성급함이다. 짐을 내려두었다가, 빨리 앞으로 나아가 비행기에서 내리면 함께 타고 왔던 여행객들보다 먼저 입국심사를 받을 수 있다. 입국 심사 때 기다리는 시간이 줄어든다. 역시나 생존의 부산물이다. 

그날따라 승무원이 "자리에 착석해 주세요. 안전벨트 사인이 꺼질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라고 말했다. 공중에 있을 때만 해도 친절했던 승무원의 말투에서, 아까 "마스크 내리세요."라고 했던 공항 직원의 무뚝뚝함을 더해 엄격함까지 느껴진다. 차마 일어나지 못하고 기다린다. 

꽤 기다린 것 같은데 안전벨트 사인이 꺼지지 않는다. 갑자기 비행기가 스르륵 앞으로 가는가 싶더니 급하게 정지했다. 모든 승객의 몸이 동시에 앞으로 고꾸라지려다가 뒤로 튕긴다. 미리 좌석에서 일어나 복도에 서있지 않았던 건 천만다행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해를 돕기 위해 비행기가 주기장에 도착 후 승객이 내릴 때까지의 순서를 간략하게 설명한다. 

①주기장에 도착, ②주차 브레이크 고정(Parking Break Set), ③보조 전원장치 연결, ④엔진 끔(Shut down), ⑤안전벨트 사인 끔(Off), ⑥외부 직원은 엔진이 완전히 꺼진 것을 확인 후 바퀴 고임목(Wheel chock) 설치, ⑦공항으로 연결되는 게이트 통로가 비행기의 왼편 앞문으로 이동 후 고정, ⑧비행기 문 열림, ⑨승객 내림

비행기의 전원은 양쪽 엔진에서 공급받는다. 비행기에는 APU(Auxiliary Power Unit)라는 보조 전원장치가 있다. 주기장에서 APU를 켜고 전원 공급원을 엔진에서 APU로 바꾼 후에야 엔진을 끌 수 있다. 

그날은 APU가 고장 났다. 기장은 오른쪽 엔진만 끄고 지상에서 연결하는 보조 전원장치(GPU, Ground Power Unit)의 연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지상직원이 비행기에 헤드셋 연결 후 기장을 불렀다.  


지상직원 | 조종실, 여기는 지상이에요. 왜 왼쪽 엔진을 끄지 않아요?

기장 | 알겠어요. 주차 브레이크 풀게요(OK. Parking break release).


기장은 동문서답하고는 즉시 주차 브레이크를 풀었다. 여전히 작동하고 있던 왼쪽 엔진 때문에 비행기는 공항 바닥에 그려진 안전지대 표시를 벗어나 천천히 건물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조종실 스피커에서는 지상직원의 "아니에요. 브레이크를 풀지 마세요!"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깜짝 놀란 기장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작동하고 있는 왼쪽 엔진과 불과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지상 구조물이 접근한 위험한 상황이었다. 

지상직원은 비행기의 APU가 고장 난 사실을 몰랐다. 통상의 절차대로 비행기의 엔진이 꺼져야 하는데 한참이 지나도 꺼지지 않으니 기장에게 물어본 것이다. 기장은, 주기장에 도착하면 늘 그랬듯, 지상직원이 "(고임목을 댔으니) 브레이크를 풀어도 된다"라고 말했다고 착각하고 그에 맞는 대답을 했다. 그리고, 지상직원이 미처 수습할 겨를도 없이 성급하게 브레이크를 풀었다.

2022년 어느 날, 중국 어느 공항에서 실제 발생한 일이다. 이일로 기장과 부기장은 비행 운항 정지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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