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와 감성은 비례
비행 실력에 대한 도전도 있지만, "조종사의 해외 이직은 돈 때문이다."라는 점을 온전히 부정하기 어렵다.
'현차갓무직'이라는 말이 돌았다. 현대자동차에 다니는 누군가 다소 엉뚱한 자부심을 부려서 생긴 말이다.
현대자동차는 평균연봉이 1억이 넘는다고 하니, 급여 기준으로 보건대 어쨌거나 좋은 직장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는 지난 3년간의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지출을 크게 낮추었다. 그간 급여가 현저히 줄었을 뿐 아니라, 하필 코로나 초기에 집을 분양받았기 때문이다.
절약에 대해 한 가지만 얘기해 보자면, 이전에는 무조건 택시 또는 호출형 공유차를 타고 공항에 출퇴근했다. 지금은 돈을 아끼기 위해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한다. 다른 동료분이 출퇴근에 먼저 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처음에 '왜 저렇게까지 돈을 아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까지 됐냐면, 퇴근길 어깨에 맨 가방이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2위안(350원) 짜리 버스가 오면 안 타고 1위안(175원) 짜리 버스가 오면 탄다.
오래전, 나는 현대기아차에 합격하고도 다른 회사에 입사한 적이 있다. 오늘날 현차갓무직이 될지 몰랐던 선택에 대해 후회해야 할까?
정확히 21년 전의 일인데, 함께 합격한 가상의 동기들 중 임원을 단 사람이 있을지 궁금하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코로나 위험이 사라진 올해부터 일이 많아졌고, 급여상황이 나아졌다. 현차갓무직에서 어렵게 임원을 단 가상의 동기가 부럽지 않다.
중국에는 1위안(175원) 짜리와 2위안(350원) 짜리 버스가 있다. 현차갓무직 임원이 무거운 짐 때문에 힘들어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350원짜리 버스가 오자 175원 아끼려고 그냥 보내고 다음 버스를 계속 기다린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애인이 가성비충이라 싫다"라고 할 정도의 극단값에 위치하는 분을 제외하더라도 뭔가 절약이 심해 보인다. 내가 생각해도 심한데 3년을 유지했던 이 습관을 왠지 버릴 수가 없다.
비행을 가서 하루 자고 다음 날 오는 일정이었다.
부기장 두 명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약속했다. 시간에 맞춰 호텔 로비로 내려가니 승무원들이 함께 있었다. 부기장은 "승무원들과 다 같이 식사하자"라고 했다. 저녁 식사를 사주려고 했는데 판이 커진 것 같았다.
현차갓무직 임원과 비교하면, 나에게는 법인카드가 없다.
방송인 박영진 씨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다수가 있을 때 돈 내지 마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라는 말을 했다. 맞는 말이다. 계산을 한 나조차 누구에게 샀는지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이상한 지출 성향이 있다.
버스 탈 때 몇 백 원 아끼려고 힘듦을 마다하지 않지만, 부기장이나 승무원들과 식사할 때면 내가 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라는 말을 누누이 들어왔던 탓이리라.
여덟 명이 다 함께 유명한 식당에 가서 왁자지껄 웃으며 식사했다. 나는 고민하다가, 식사 도중 화장실을 가는 척하며 미리 계산했다. 부기장들이 내가 계산하도록 가만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무장도 나중에 내가 미리 계산했던 사실을 알고 몇 번을 1/N(엔 분의 일) 하자며 나에게 돈을 보내려고 했다.
식사 때, 승무원들은 메뉴판이 오면 나에게 먼저 고르라고 주고, 중국어로 되어 있어 못 알아볼까 봐 사진으로 찍어 번역해서 보여줬다. 매운맛은 괜찮은지 물어봤고, 음식이 나오면 나에게 제일 먼저 줬다. 그리고 다들, 함께 먹는 음식은 내가 먼저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돈은 당연히 1/N 하는 문화다. 그들의 사고가 그러니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나의 못 견디겠음에 따른 행동을 해야 할 것인가?
나는 중국어가 유창하지 않으므로 함께 식사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입은 다물었다. 그들끼리 대화하면서도 누군가는 가끔씩 나에게 말을 걸어줬다. 나의 사소한 행동에 집중해 주고, 웃어주었다. 나와 대화를 자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함께 식사 중이라는 공감을 주었다.
나에 대한 그들의 존중 앞에서 어찌 돈을 내지 않을 수가 있으랴.
흰 티셔츠를 입고 맞은편에 앉은 이가 사무장이다. 남자라서 놀랐는가? ㅎㅎ
식당 테이블에는 밑반찬처럼 까지 않은 생마늘이 이미 놓여 있다. 그는 내게 주며 먹으라고 했다. 생마늘을 좋아하는 나는 받아서 까기 시작했다. 그는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었다. 일단 챙겨주긴 했지만 '설마 생마늘을 진짜 먹으려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음료수가 나와도 나에게 먼저 줬다. 사소한 일들이지만 먼저 챙겨주고 작은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놀라고 웃고 하면서, 굳이 대화를 하지 않아도 이 공간에 함께 어울리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충분했다.
업무적 재능을 나타내는 데 있어, 대개 대기업 사무직은 혼자 빨리 가고, 조종사는 같이 멀리 간다. 나는 혼자 빨리 가는 성향이 아니다. 현차갓무직에 다녔다고 해도 임원이 되진 못했을 것이다.
다만, 조종사가 되려고 노력했던 과정이 없었더라면(나는 조종사가 된 나를 두고 온전히 소득주도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일찍 결혼하고 이미 집도 마련해서 지금보다 보유 자산이 높았을 것이다. 대기업 급여 소득에 빚내서 산 집이 부채주도 성장까지 가능하게 했을 것이란 가정이다. 그랬다면 돈을 벌기 위해 가족을 두고 혼자 해외에 나와 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뒤늦게 집을 분양받은 나는 이달 급여를 모두 아파트 중도금 갚는데 썼다. 통장에는 18만 원을 남겼다. 다음 달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최소한 아파트가 온전히 내 것이 될 때까지 가족을 떠나 타국에서 생활하겠지만, '나를 존중해 주는 동료가 있어 또 할만하다.'라며 스스로 위안한다.
사실, 돈이 있어야 이런 고민도 한다. 다음 달에는 아예 위안화 환전을 평소보다 더 해둬야겠다. 갖고 있는 현금이 많아서 식사 때 돈을 낼지 말지 덜 고민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