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물을 주고 신경 써야 농작물이 잘 자라듯이 어떤 일이든 신경 쓰는 만큼 잘 돼 간다고 생각하는 성향이다.
7월 9일이면 자동차 보험이 만료된다. 내가 갖고 있는 신용카드 중 어떤 카드는 한 달에 그 보험료만큼만 사용하면 할인 실적을 채울 수 있다. 그러면 1만 8천 원을 할인받는다. 기왕이면 7월에 결제 금액이 빠져나가도록 6월 말에 결제하려고 기다리는 중이다.
7월 25일에는 분양받은 집으로 이사 간다. 대출 이자가 아까워 매달 돈이 생기면 그달 지출될 금액을 미리 계산해서 남겨두고 하루라도 빨리 원금을 최대한 갚는다. 매번 1시간 정도 작업한다.
사전점검에서 100여 건의 사소한 하자가 발견됐고, 등록을 업체에 맡기는 비용이 5만 원이었다. 꼼꼼히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직접 올렸고 3시간이 걸렸다.
직업인 비행기 조종에 대해서도, 비행을 마치고 나면 늘 피곤할 정도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행동들이지만 어떤 시각으로 보면 피곤하게 사는 편이다.
뭐라도 해야 하는 강박
보통 3일간 비행하면 3일의 휴식일이 주어진다. 연속된 144시간(6일) 중간에 반드시 48시간을 쉬어야 한다. 피로가 정상적인 근무에 지장을 준다는 연구 결과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조종사로 사는 일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명확한 목적이 있다. 그것을 잘 해내기 위해 충분히 쉬어야 하는 계획적인 행동이 필요한 셈인데, 나의 성향 때문인지 무려 3일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쉬어야 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휴식일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생긴다.
페널티킥을 차는 선수의 1/3이 왼쪽으로, 1/3이 오른쪽으로, 나머지 1/3이 가운데로 공을 차는데도, 골키퍼의 1/2은 왼쪽으로, 1/2은 오른쪽으로 몸을 던져 막는다는 결과가 있다. 롤프 도벨리는 그의 저서 '스마트한 생각들'에서
"가만히 서서 공이 옆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골키퍼는 좌, 우를 선택해 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라며 이를 행동편향으로 소개한다. 더러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오히려 이득일 수 있지만 사람들은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강박 때문에 불분명한 상황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
어제 비행이 지연됐고 오늘 새벽 3시에나 회사 호텔에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통근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기 위해 4시간 후 알람을 맞추었는데 알람 소리에 깜짝 놀라 깼을 정도로 겨우 일어났다. 하루 종일 머리가 무겁고 피로했다. 뭔가에 집중하는 일을 할 수 없다. 3일의 휴식일 중 하루는 그렇게 보내기 마련이다. 이튿날 하루 정도 여유가 있지만 피로는 여전히 쉬고 싶다는 신호를 보낸다. 3일째는 다음 날 새벽 비행을 위해 무리하지 않고 쉬다가 회사 호텔로 가서 저녁 8시경 잠자리에 든다.
3일 만에 자고 깨는 시간이 바뀌어야 한다. 첫날은 새벽 4, 5시경에 일어나야 하므로 전 날 저녁 8시에 잠자리에 든다. 마지막 날은 자정을 넘어 끝나면 새벽 2,3시에 자야 하는데 이를 반복하는 일이다.
휴식일에 쉬면서 피로를 푸는 것으로 이미 충분한 상황이지만, 뭐라도 더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을 ‘강박’으로 정의할만하다.
걱정 없는 삶도 의미가 있다
나는 솔로 20기 영자는 “일상을, 좋아하는 사람 만나고 좋아하는 취미 하며 걱정 없이 사는 게 제일 큰 복이다”라고 했다.
분명한 목적과 방향을 만들고 기한을 엄수해 가며 사는 나의 성향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데 행동편향과 맞물려 생각했을 때 나에게도 ‘쉴 때는 좀 쉬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듯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피로를 없애고 다음 비행 임무를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시간이 아깝고 무언가 하고 싶은 충동 때문에 삶의 괴리를 만들고 있는 나를 거울로 보게 만들었다.
글을 쓰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
20기 영자 씨처럼, 쉬는 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만, 해외에 나와 있다 보니 불가능하다. 좋아하는 취미가 있으면 좋겠지만 뭐든 고만고만하다.
나에게 글쓰기는 정말 피곤한 일이다. 위에 열거한 성향대로 내용에 대한 고민과 퇴고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런데도 마땅히 할 게 없다 보니 글쓰기가 자꾸 떠오른다. 해외에서 조종사로 생활하는 일이 어찌 보면 독특할 수 있고, 이 흔적이라도 남겨 놓으면 뭔가 의미가 있을 것 같은 막연한 마음이 늘 한편에 있다.
칼을 들면 뭔가를 베고 싶다고, 어찌어찌 글을 쓰다 보니 책을 내고 싶은 강박이 쉬는 날마다 나를 귀찮게 한다.
영자가 나를 보면 이런 생각을 할 것 같다. '참 피곤한 게 산다 ㅎㅎ'
원래 마무리 짓고 싶은 글이 있는데, 오랜만에 글을 쓰려니 잘 안돼 습작으로 써 보았다. 브런치에서는 많은 분들이 연재 형태로 뚝딱 글을 써 내놓으시는 것 같아 그 능력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