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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Aug 24. 2023

내 마음의 집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몇 번의 이사를 했고, 어떤 집에서 살았는지를 찬찬히 생각해 보니 학교 기숙사까지 포함해서 열한개의 집이 생각났다. 사십이 넘게 살아오면서 열한 번 이사했다는 것은 많은 것도 아니고 적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열한개의 집 중에서 사십 년 동안 꿈 속에서 나오는 집은 한결같이 한 곳이다. 과거와 현재가 결합되는 짬뽕 같은 꿈을 종종 꾸는데, 성인이 된 내가 집이라고 향하는 곳은 어릴 적 13평 아파트이다. 그 집 내부만이 아니라 아파트 계단과 아파트 뒤에 있는 언덕, 아파트 앞 화단, 아파트 앞의 너른 마당까지가 모두 내 집 같은 그 곳을 찾아간다.

 안드레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텔지어를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나열된다. 러시아의 영화이고 예술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의 작품인데, 스토리와 상관없어 보이는 이미지가 나열된다. 집, 침대, 정원, 나무 등등 이미지가 반복된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에게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이냐 물었을 때 그는 " 그냥 내가 자주 꾸는 꿈이에요" 라고 답했었다. 나는 그것이 그의 어릴 적 살았던 집이었다고 확신한다.  

 나 역시 늘 어릴 적 집에 가는 꿈을 꿨다. 스물에도 어릴 적 집으로 돌아가있었다. 서른이 되었을 때도 꿈 속에서 그 집으로 가 있었다. 마흔이 되어도 어김없이 그 집으로 찾아갔다. 왜 그럴까? 내 무의식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옛 추억이 그리워 그곳을 자꾸 불러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곳은 고향 같은 느낌의 포근하고 재미있었던 공간으로 저장되어 있다. 곧 내 마음의 집이어서 계속 그 곳으로 향하게 된다.  

 5층 아파트 중 2층에 살았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으로 다녔다. 집에는 작은 베란다가 있었는데 베란다는 샷시도 돼있지 않아서 베란다에만 자연을 느낄 수 있었다. 화단에 있는 나무가 우리 집까지 올라와 있어서 베란다에서 나뭇잎을 만질 수도 있었고,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서 동네가 울리도록 노래를 부르며 놀기도 했다. 

 하교 후 문이 잠겨 있을 때면 문고리에 책가방을 걸어둔 채 밖으로 나가서 놀았었다. 혼자 놀다 보면 어느새 친구들이 하나 둘씩 모여든다. 아파트 1층 입구에는 입구를 덮고 있는 지붕이 있는데, 조금 위험한 일이긴 하지만 그 지붕 위로 올라가면 우리 집 베란다 난간을 잡을 수 있어서 담을 넘듯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집보다 더 재미있는 마당에서 놀아야 했으니까. 가끔 우리가 낮잠에 빠져 문을 못 열어줄 때면 엄마 아빠가 베란다를 통해 넘어 들어오곤 하셨는데, 그런 생각만해도 웃긴 추억들이 그 집에서 있었다. 아빠가 사온 새가 새장을 탈출하여 옷 장위로 날아갔던 일. 그 새를 잡기 위해 온 가족이 숨죽인 채 옷걸이 뒤에 숨어 있었던 일하며 많이 웃었던 일들이 그곳에서 있었다. 

 아파트는 동과 동 사이가 매우 넓어서 아파트 앞에는 나무 정원이 있었고, 아파트 뒤에는 초록풀이 우거진 언덕이 있었다. 아파트 앞에는 시멘트로 닦인 너른 공간도 있었다. 그곳은 주차장이었지만 당시 자가용이 있는 집이 거의 없었기에 우리의 놀이터로 변신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모두 모여 자치기, 술래잡기, 오자미, 고무줄 놀이, 딱지치기, 자전거 타기를 했고 나무 아래에서 땅 따먹기와 공기놀이와 소꿉놀이를 했었다. 

 그곳은 늘 시끌시끌 했고, 우리는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가로등이 켜질 때까지 놀았다. 엄마가 부르기 전까지는 먼저 집에 들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어릴 적 대부분의 시간은 그곳에서 보냈다. 이 모든 공간이 나의 집이었다. 집 안은 13평으로 다섯 식구가 살았으니 비좁았을테지만 한번도 좁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뛰기만 해도 재미있었고, 집안에 있는 살림살이를 가지고 상상하며 역할놀이를 하느라 한번도 작은 곳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얼마 전에 우리 집을 장만하여 새 집으로 이사를 했다. 거실 벽은 멋진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고, 주방은 디귿자 모양으로 동선이 편해서 일하기 좋다. 싱크대는 절수시스템이 있어서 손을 사용하지 않고도 물을 끌 수 있고, 엘리베이터를 집 안에서 불러내고, 버튼으로 전체 시스템을 조절할 수 있다. 편리한 시스템에 감탄한 것도 잠시, 창 밖으로 아파트 숲만 보이니 답답함이 느껴져서 생각이 뻗어나가지 못하고 갇히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 집이 마음의 집이 될 텐데 라고 생각을 하니 조금 미안해진다. 이 곳은 시멘트로 흙이 덮여 있고, 나무 아래와 화단은 놀 수 없게 울타리가 쳐있다. 우리 아이들은 먼 훗날 어떤 추억으로 향수를 느낄까? 아이들은 깨끗한 보도 블럭과 놀이터의 푹신한 인공 매트와 잘 꾸며진 놀이터에서 놀던 것을 기억하겠지? 그리고 공간보다는 게임기와 어릴 적 봤던 미디어를 생각하며 향수를 느끼겠지? 아이들이 오래도록 그리워할 마음의 집을 지금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어깨가 무거워진다.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 줘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소년처럼 나 역시 팔구십 노인이 되어서도 옛 집을 찾아갈 것이다. 꿈 속의 집은 사람이 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낡고, 좁지만 노인은 그 집에서 행복했던 추억들을 떠올리며 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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