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내 걸고 사업을 한다는 것은
나를 포장해서 판매하는 것과 같다. 얼마나 긴장이 되었던지 처음 시범수업을 하는 날,
카페에 홍보 글을 올리던 날의 긴장과 불안감이 대학입시를 앞두고 느꼈던 그날과 같았고, 면접을 앞두고 느꼈던 그것과 비슷했다.
내 나이 44살이 되고, 이제 많이 살아봤으니 실패에 익숙해져야지, 처음 사업은 무조건 실패라는 것을 명심하자라고 생각했으나 여기서 실패하면 당분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것만 같았다.
독서교실을 준비하면서 그 기간이 꽤 길어졌다. 프랜차이즈를 하면 쉽게 지나갔을 일을 나는 왜 이렇게 겁 없이 뛰어들었을까.
후회를 해도 이미 늦은 거다. 나는 1년이 넘게 준비를 하고 말았으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카운트 다운 날짜를 정해 놓고 시작했다. 마침 이사를 했고, 새 아파트에 입주를 했다. 새로운 사람들이 곳곳에서 모여들었다. 모두 낯설고 모두 이곳에서 다시 시작하려고 짐을 풀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좋은 타이밍에 오픈할 수 있었다. 그렇게 3명의 아이가 모집되고, 두 개 반이 시작되었다. 한 반에 우리 꼬부기가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 주 2주 차 수업을 하려는데, 갑자기 노트북이 셧다운 되었다. 오!! 노!!!
안에 있는 자료는 다시 찾을 수 있겠지? 그런 생각으로 처음에는 별 걱정은 안 했다. 어찌어찌 해결되겠지. 다시 컴퓨터가 켜지겠지. 전원버튼을 눌러도 안 켜지던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뭐든 전조증상이 있으니 그때 정비했어야 하는데! 아무튼 닥쳐야 하던 천성을 어떻게 바꾸랴. 하지만, 이렇게 몇 번 겪고 나면 조금씩 바뀌더라.
p였던 내가 j로 조금씩 바뀐다. 적어도 1주일은 계획해놓으려 한다. 아니 적어도 하루는 계획해 놓는다. 미리 수업 준비 해놓는다. 큰 뼈대는 미리 해놓고, 잔가지들은 그날 당일에 하기도 한다.
대신 p라고 일하기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나는 즉흥적인 것에 강하다. 갑자기 주어지는 변화나 미션에 대처 능력이 빠르다. 남편은 당황하고, 망쳤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더 재밌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즉흥적으로 바꾸고 대처할 수 있어서 생각지도 못한 수확도 생긴다. 인생이 원래 그런 거니까.
그래도 내일 수업 프린트만 하면 됐었는데, 아침에 하려고 남겨둔 일인데...
오늘 당장 수업을 해야 하기에 노트북 수리를 알아보고 사설 업체에 연락을 해서 수리를 맡겼는데, 이게 일주일은 걸린다고 한다. 그럼 나는 일주일 동안 수업 준비를 어떻게 하지? 막막했고, 당장 오늘 수업을 어떻게 해결하나.. 컴퓨터 작업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독후활동지를 만든다고 해도, 자료는 전부 노트북 안에 있는데..
근처 도서관은 마침 서고정리로 컴퓨터실 운영을 안 했고, 얼른 주민센터로 가서 잠깐 컴퓨터를 만졌다. 그곳에서 ppt 열어서 조금씩 작업을 했다. 휴~~
내가 대상으로 삼은 초등 저학년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 아기아기했다. 우리 집 애들을 데리고 수업해 봤으니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생각했지만, 그 아이들을 수업해 보니, 우리 애들이 평균은 됐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글쓰기는 죽도록 싫어하고, 몸으로 놀기를 원했다. 첫날 2학년을 데리고 수업을 가까스로 한 뒤, 신문지로 독후활동을 했다. 먼저 신문지 격파로 몸풀기를 하는데, 한 남학생이 이 놀이에 적격이었다. 게다가 내가 시간을 잘못 생각하는 바람에 수업을 끝내야 할 시간에 독후활동을 이제 막 시작했다. 엄마는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 아이는 신문지로 격파를 한 뒤, 옷 만들기를 했다. 어찌나 급하게 했던지 아이는 아쉬움을 잔뜩 가지고 갔다. 이게 뜻밖의 좋은 효과가 됐는지, 다음 주에 오자마자 격파를 하자고 했다.
아이들과 읽은 책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는 핑퐁처럼 쉴 틈 없이 자꾸 주고받았다. 할 말이 많아진 아이들은 두 사람 동시에 얘기를 시작하기도 했다. 주제와 먼 얘기들을 더 많이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얘기가 하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대화를 끝낸 뒤 글쓰기 시간이 되면, 글쓰기를 너무도 싫어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들에게 글을 쓰게 한다는 것이 떼쓰는 아이 달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아이들이 쓰는 것은 고작 한 줄! 그리곤 다 썼어요. 뭐야! 이것밖에 안 쓰고?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이들이지 않나. 나도 어릴 때 글 쓰는 게 정말 싫었다. 컴퓨터 나온 뒤 양손으로 쓰기 시작하니 좋아하게 되었지 손으로 쓰는 것은 지금도 젬병이다. 그러니 아이들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
그런 아이들을 적당히 구슬리고 유혹하며 목표 점 도달 시 보상을 주면서 한 줄이라도 더 쓰게 만들었다.
그렇게 2주가 지나고 나자, 2주 전의 나와 많이 달라져있음이 보였다. 일단 독서교실에 대한 방향이 좀 더 보였고, 수업 계획을 짤 때, 한계치가 좀 보였고. 구체화되었다.
모의수업으로 머릿속 계획은 뭐든 마구 생각해 내야 하는데, 실제 수업을 하려 보면 시간제한과 아이들의 길어지는 얘기로 변수가 많아 다 하지 못하고 끝나곤 했는데, 이제는 적당한 기준 선이 세워졌다.
예비로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하려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자르거나, 독후활동을 생략하거나 하면 안 될 것이다.
내 사업처. 내 집에서 하는 이 독서교실이 아이들을 만나서 부딪히면서 2주 만에 조금은 독서교실 다워졌고 나도 선생님 다워지고 있다. 2주만 지나도 이러는데, 2년이 지나면 얼마나 더 좋아질까 생각에 벌써 기대가 된다. 타임머신을 타고 2년 뒤로 다녀온 뒤 지금 한걸음 시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편안한 마음과 익숙함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