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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솜사탕 May 04. 2022

21화. 새로운 약과 동생

만 28세, 뇌경색 판정받았습니다.│얼렁뚱땅 써보는 투병일기

재입원 5일째

-22.05.02.월요일-


 혹시나 오늘 퇴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아주아주 잠시 했었는데, 새벽 5시에 날 찾아온 간호사가 새로운 수액으로 갈아 꽂는 것을 보고 단념했다. 처음엔 비몽사몽 피검사인 줄 알고 팔을 내밀었는데, 알고 보니 오른팔에 꽂혀있던 링거를 왼팔로 바꾸는 거였다. 지난번 입원 때도 그랬던 걸 보면 5일 정도 지나면 위생상(?) 링거 바늘을 꼭 다시 꽂아야 하는 것 같았다. 오늘 집에 가는데 지금 새 수액을 달진 않겠지. 집에 가긴 글렀구나 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오늘은 동생이 보호자로 오기로 한 날이었다. 게다가 주말이 지나고 평일이 왔으니 교수님의 회진도 있는 날이었다. 아침 7시쯤 꾸역꾸역 아침밥을 먹고 앉아서 기다리는데 전공의 선생님이 먼저 왔다가시고, 그다음에 전공의 선생님과 교수님이 함께 찾아오셨다. 나는 어제 써둔 메모를 참고해서 열심히 현재 상태를 설명했다.


 의사 선생님의 회진 내용을 정리해서 써보도록 하겠다. 우선 너무너무 다행인 소식은 내가 탈수초증이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검사에서 지난번의 뇌경색 외에 새로 발생한 병변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뇌경색 재발도 새로운 발병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물론 증상이 남아있기 때문에 완전히 100% 탈수초가 아니라고 얘기하긴 어렵지만, 일단 지금까지는 아닌 것으로 보이니 앞으로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이라고 하셨다.


 우선 탈수초증이 아니라니 한시름 놓았지만, 그럼 대체 왜 소름 돋는 증상이 생겼으며 이 증상이 아직까지도 이어지는지 궁금해졌다. 이 질문을 하자 교수님이 천천히 설명해주셨다. 사실 소름 돋는 증상이 뇌에 문제가 생기는 탈수초증일까봐 급히 입원시킨 건 맞지만 지금 척수 기능 검사나 뇌 MRI가 모두 정상인 것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편두통이 심한 환자들에게 찾아오는 신경감각이상증세 같다고 했다. 큰 병을 앓고 난 사람들에게 종종 찾아오는 증세인데, 머리가 하도 아프고 몸이 불편하다 보니 아무래도 과민해질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이런 신경학적인 반응이 일어나는 거라고 하셨다.


 그럼 이게 정신적인 문제라는 이야기인가...? 싶어서 멍해있는데, 교수님이 빠르게 말을 이어가셨다. 편두통과 소름 돋는 증세는 오늘부터 원래 복용하던 약 외에 추가적인 약물치료에 들어갈 거고, 시간이 지나고 경과를 보면서 약을 더 센 걸로 바꾸든지 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리고 탈수초가 아닌 게 너무나도 다행이란 말을 한번 더 강조해서 말씀하셨다.


 나는 소름 돋고 몸이 저린 증세가 혹시 뇌경색 후유증이거나, 뇌경색과 관련 있는 건 아닐지 여쭤보았다. 그랬더니 뇌경색과 너무 모든 것을 연관 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하시며, 그보다는 과민성 감각이상반응으로 보인다고 단언하셨다.(이렇게 조금만 아파도 혹시 뇌경색 때문인가..? 하고 두려워한 것이 곧 과민성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편두통소름 돋는 증세는 약물치료를 하기로 했고,  저림 증세는 많이 나아졌고, 이제 4가지 중 마지막으로 남은 증세는 흉통이었다. 교수님은 흉통에 대해 말하시며, 불과 두 달 전에 심장 검사를 정말  다 진행했고, 이번 입원에서도 심전도 검사를 여러 차례 했는데 정상인 것으로 보아 심장 문제가 아니라 식도 문제인 것으로 생각된다는 의견을 주셨다. 나 역시 식후에 더 심하게 아픈 것으로 보아 식도염을 의심했었다. 그래서 입원해 있는 김에 위내시경을 진행하기로 했다.(젠장... 싫은데...)


 교수님은 마지막으로 뇌경색은 단일성이라 앓고 지나가는 건데, 탈수초는 평생 고통인 질병이라 이렇게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게 행복한 결과인 거라고 한번 더 강조하시곤 병실을 떠나셨다. 행복한 건가..? 진짜 행복은 병원에 없는 거 아닌가.


 교수님이 가시자마자 진료 내용을 곱씹을 새도 없이 검사가 휘몰아쳤다. 심전도 검사를 다시 하고, 난데없이 피를 뽑혀서 심장효소검사도 당했다. 아무리 식도염이 의심된다고 해도 혹시 모르니 마지막으로 심장을 체크하는 듯했다.


 여전히 편두통은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고, 몸의 왼편에는 소름이 돋았다. 나는 이 증상들의 원인이 단순히 나의 예민해진 정신 때문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100% 아니라고 반박할 여지도 없었다. 발병 이후 항상 신경이 곤두선 채로 살았기 때문이다. 남들 앞에서는 안 그런 척하고, 일기는 세상 긍정적으로 써놓고서, 속으로는 혹시 뇌경색이 재발하진 않을까, 더 아파지진 않을까, 두려움 속에 살았던 것 같다. 자다가 손이 조금만 저려도 다신 일어나지 못할까 봐 무서웠고, 업무 도중 편두통에 시달리면 이러다 아무것도 못하고 다 놔버려야 할까 봐 걱정했다. 발병 이전이라면 순식간에 끝냈을 일을, 두통 때문에 자꾸 느리게 처리하게 되자 자괴감이 든 적도 많다.


 이번에도 증상은 있는데 신체적인 원인이 없었다. 지인들은 정신적인 문제가 원인이라는 게 말이 되냐며 다른 병원으로 옮겨보자고 했다. 나는 그냥 갑자기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싶었다. 나를 신경 쓰게 하는 것들을 다 없애버리고 싶었다. 진짜 내 정신이 문제인 거라면 최대한 편안히 살아보기로 했다.


 나는 혼자 병실에 앉아 그동안 미루고 미뤘던 사업자 휴업 신청을 했다. 예전에 개인 유튜브를 하면서 사업자를 냈었는데, 유튜브를 그만둔 뒤에도 사업자를 내버려 두어 세금 문제로 골치가 아팠다. 그리고 사실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두 번이나 병원에 오게 되니 내가 어느 순간 갑자기 일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의가 아니라 상황에 의해 그만두게 되면 사업자가 없어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이 와중에 이것까지 신경 쓰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렇게 갑자기 일도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실업급여가 유일한 수입이 될 것 같았기에, 자꾸 거기까지 미리 생각이 미쳤다.) 이렇게 계속 병원 때문에 일을 빠져야 한다면, 회사를 다니는 것도 나의 이기심과 미련 같고... 또 그렇게 다니더라도 지금 직장이 내 인생의 마지막 직장생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사업자 휴업 신청을 하고, 유튜브 채널 내 모든 영상의 수익 창출을 끄고, 구글 애드센스 계정도 해지했다. 이제 내 유튜브는 완전히 끝이다. 이걸 온전히 끝내 두지 않아서 계속 맘에 남았었는데 이제야 홀가분했다. 이 얘길 친구에게 전하자, 갑자기 왜 어디 떠나는 사람처럼 정리를 하냐며 되물었다. 채널을 그만둔 지 오래라 수익도 얼마 안 되는데 세금 문제고 뭐고 신경 쓰기 싫어서 다 멈춰버렸다고 했다.


 유튜브를 정리한 나는, 왠지 모르게 터키가 너무 그리웠다.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터키로 떠나고 싶었다. 나의 친구들과 가족들이 있는 곳.(10년도 넘은 사이인 터키인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 집에 자주 머물렀고, 그러다 보니 그 가족들과 친척들, 이웃들까지 모두 친한 사이다.) 22살에 처음으로 혼자 비행기를 타고 떠나 터키 부르사에서 머물던 그 시절이 자꾸 생각이 났다. 그냥 이 현실이 다 싫고 자꾸만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있다가 동생이 창구에서 보호자 등록을 하기 위해 기나긴 줄을 서 있다는 톡을 보내서 정신을 차렸다. 병원에 잘 도착했구나. 같이 점심을 먹었으면 했는데 줄이 하도 길어서 내가 점심을 다 먹을 때까지도 동생이 오지 못했다. 알고 보니 어떤 진상 아저씨 한 분이 창구를 붙잡고 떠나질 않았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동생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간호사가 찾아와 점심 약을 주었다. 난 원래 점심 약이 없는데...? 아침저녁 약만 챙겨 먹고 있던 나는 약봉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새로 처방된 약은 IndenolAlpram이었다.


대충 가려놓은 것은 내 환자등록번호이다. 병원이라 포토샵을 못 쓰니 일단 색칠...

 나는 이 약들이 너무 생소해서 무슨 약인지 네이버에 검색해보았.

인데놀의 효능효과

 음..인데놀은 고혈압이나 부정맥, 편두통 예방용이구나. 납득한 나는 다음 약물로 넘어갔다. 다음은 알프람이다.

 

알프람의 효능효과


 ...?? 왜 나한테 우울증 약을 주지...? 과민성 감각 이상이라는 게 그런 얘기였나...? 이걸 먹으면 안정되어서 편두통과 소름 돋는 증상이 없어지나? 이미 어지럼증 예방을 위해 신경안정제를 매일 복용 중이었는데, 그것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아예 불안증을 위한 약물이 새로 추가되니 의아했다. 그래도 일단 먹으라는데 먹어봐야지 뭐.


 약을 먹고 동생이 언제 오나 싶어 복도로 나가보려는데 한발 더 빠른 동생이 병실 커튼을 젖히고 나타났다. 왜 웃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그냥 별거 안 해도 실실 웃음이 터졌다. 오늘 이 조그만 침대에서 자고 갈게 걱정돼 한번 누워보라고 했더니 그 산만한 덩치로 구겨 눕고는 충분하다고 하는 게 너무 웃겨서 한참을 웃었다.


하필 머리도 저렇게 짧게 이발하고 와서는, 무슨 군대 같잖아.


 나는 난데없이 재입대한 동생을 이끌고 병원 3층의 야외정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그동안 가보고 싶었는데, 혼자 링거를 끌고 가기 좀 그래서 못 가봤던 곳이었다. 병원 안에서 책만 읽어서 바깥 날씨가 어떤지도 몰랐었는데, 햇빛이 맑고 나무가 푸르른 게 날씨가 아주 좋았다.

동생이 찍어준 사진


 오랜만에 광합성을 하고, 다시 병실로 돌아와서 쉬고 있는데 마침 터키 친구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내가 최근 터키에 가고싶고, 너희들이 보고싶다며 찡찡대는 문자를 보낸 탓이었다. 친구네 가족은 3자매고, 첫째는 프랑스에, 둘째는 독일에, 셋째는 이스탄불에서 살고 있는데 현재 라마단 명절 기간이라 모두 부르사 본가에 모여있다고 했다. 나는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 가족들 모습에 너무 반가웠다. 병실 내에서 떠들긴 좀 그래서 휴게실로 이동해 한 30분 정도 얘기를 나눴다. 친구는 너도 우리 가족이라며 언제든지 돌아오라는 얘길 했다. 나도 시간이 나면 꼭 가겠다며 맘을 전했다.(아줌마한테 왜 자주 전화 안 하냐고 혼났다. 자주 해야지...)


 통화를 마치고 병실로 돌아와 있는데 간호사 한 명이 급히 찾아오더니 날 검사실로 데려다 주기로 한 이송 기사님이 엘리베이터에 갇혔다며(?) 혼자서라도 2층의 신경 인지 검사실에 가라는 얘길 전해주었다. 그때가 4시 13분쯤이었고, 병원에서 모든 검사를 마무리하는 시간은 5시이니 얼른 움직여야 했다. 나는 동생과 함께 급하게 2층의 검사실로 향했다. 근데 신경인지검사가 대체 뭐지? 처음 들어보는 검사였다.


 2층 검사실에 도착해 들어가니, 검사 선생님이 무슨 시험을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날 책상에 앉혔다. 심각한 분위기에 나도 덩달아 긴장이 되었다. 그러더니 문제가 빼곡한 종이 몇 장과 펜을 주고서는 풀라고 했다. 뭐야 진짜 시험 치는 거야? 하는 생각을 하며 종이를 살펴보니 우울증, 불안증 테스트였다. 입 밖으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내 정신상태가 날 아프게 했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것만 같아서 괜한 반감이 들었다. 내가 진짜로 그렇게 우울한가? 아닌 것 같은데. 일단 풀라니 풀어야지 뭐.


 문항은 대부분 발병 이전과 이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묻는 내용이었다. 강한 반감 속에서 시작했는데 '나는 발병 이전보다 지금 더 두렵다.', '나는 발병 이전보다 지금 더 미래에 대해 걱정한다.' 등 내 마음을 읽고 그대로 쓴 듯한 문항들이 보이자 나도 모르게 '매우 그렇다'에 체크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고 나자 이젠 나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진짜 내가 신경학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인 건가?


 테스트를 마치고 돌아와 동생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동생은 보호자식을 신청해 나와 같은 병원밥을 먹었는데, 그 맛없는 걸 싹싹 비워냈다.

저렇게나 싹싹 비우고선 하는 말. "어우 입맛이 없어서 간신히 먹었네." 참나ㅋㅋ


 저녁을 먹고 나서는 같이 병원 1층의 편의점에 갔다. 가서 동생이 이것저것 사는 동안 편의점을 둘러보는데 내 눈에 장난감 하나가 들어왔다. 작은 자판기 형태의 사탕이었다. 안 그래도 브레드 이발소 좋아하는데..! 작은 미니어처 자판기도 엄청 좋아하는데...! 눈이 돌아간 나를 본 동생은 그것도 사라고 했다. 나는 슬며시 그 자판기도 함께 구매했다.

버튼을 누르면 캔디가 나오는 장난감이다. 아주 귀엽다.


 이 나이에 이런 걸 다 사고, 애냐고 놀려도 할 말은 없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작은 가구나 작은 집 같은 걸 좋아했다. 왜냐하면 작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내용의 책들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뤽 베송의 '아더와 미니모이' 시리즈나 사토 사토루의 '코로보쿠루 이야기' 시리즈가 있다.(둘 다 전권 소장 중이다.)

아더와 미니모이 시리즈 1권
코로보쿠루 시리즈 1권

 코로보쿠루 시리즈는 2001년쯤 발매되었던 책으로 절판되어 더 이상 구하지 못하는 것을 최근 중고나라에서 웃돈을 주고 간신히 구하기도 했다. 몸집이 손가락보다도 작은 소인들이 자그마한 집에서 생활하는 것을 떠올리면 너무나도 흥미롭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작은 자판기나, 작은 침대 같은 미니어처를 보면 너무 갖고 싶어 진다. 그걸 가지고 있으면 아무도 없을 때 소인들이 슬쩍 나타나서 써볼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도 안 물어봤는데 갑자기 벅차오른 오타쿠마냥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네. 결론은 어릴 적 그 책들에 대한 좋은 기억이 남아 아직까지도 미니어처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다.) 엄마는 내가 아직까지 이런 장난감을 좋아하는 게 유년시절에 사랑을 덜 받아서 그런 거 아니냐며 걱정하지만 아니라는 것을 꼭 밝히고 싶다. 나는 그냥 저 책들이 너무 흥미로웠던 거고, 어릴 적 사랑은 넘치도록 받고 자랐다.


 아무튼, 자판기를 사고 기분이 좋아진 나는 평소처럼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는 대신, 동생과 함께 핸드폰 게임을 했다. 온라인상에서 만나 숨바꼭질을 하는 게임이다. 한참을 웃고 떠들며 게임하다 보니 가지고 있던 걱정들이 잠시나마 잊혀졌다. 그러다 보니 평소보다 조금 늦게 잠에 들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병원에서 보호자와 함께한 밤이었다. 그렇게 재입원 5일째 날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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