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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솜사탕 May 05. 2022

22화. 엉망진창 수면내시경 후기

만 28세, 뇌경색 판정받았습니다. │얼렁뚱땅 써보는 투병일기

재입원 6일째

-22.05.03.화요일-


 보호자 침대에서 눈을 붙인 동생은 밤새 코를 심하게 골았고, 귀마개를 뚫고 들려오는 소음에 오히려 나까지 잠을 못 잤다. 병실 내 다른 사람들까지 다 깨울까 싶어 신경 쓰느라 계속해서 잠을 깨 동생을 확인했다. 일찍이 눈을 뜬 나는 옆자리 환자와 보호자 분이 "우리가 오늘 퇴원인 게 얼마나 다행이야..."라고 속삭이는 걸 들어버렸다.(너무 죄송해요...ㅠㅠ) 나는 오늘 다시 혼자 자더라도 동생을 집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와줘서 고맙긴 한데...너무 피곤하구나......)


 그러다 아침 식사가 왔길래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애를 깨워서 수저를 들었다. 잠도 못 자고 해서 먹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약을 먹어야 하니 억지로라도 밥을 입에 밀어 넣었다. 그렇게 밥을 두 숟갈쯤 먹었을 무렵, 간호사 한 분이 금식 표지판을 들고 허겁지겁 뛰어왔다. 이미 밥을 드셨냐며 절망하길래 두 숟갈밖에 안 먹었다고 했다. 소통에 오류가 있어 금식 얘길 미리 전달 못하고 조식이 나와버렸다며 죄송하다고 했다. 나 역시 오늘 위 내시경을 한다고 들었는데도 금식 생각을 미처 못하고 밥을 먹어버린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 뒤부터 철저히 금식에 들어갔다.


 그리고 식사시간에 의사 선생님이 찾아왔는데, 지금까지 한 모든 결과가 모두 깨끗하다고 전해주었다. 탈수초도 아니고, 신체적으로도 소름 돋는 증상이 나올만한 요인이 없다는 이야기다. 나는 그럼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증상들을 단순히 과민성으로 봐야하는지 여쭤보았다. 의사 선생님은 잠시 망설이시더니, 과민성이라기보다는 환자 분이 두통도 심하고, 그러다 보니 좀 예민해질 수도 있고 해서...예민성 감각이상 같다는 답변을 주셨다. (과민성이나 예민성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어쨌든 내 불안증 때문이란 소리니 단어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는 듯 했다. 그리고 신체적으로는 이상이 없으니 위내시경 검사만 끝내면 내일 퇴원하는 게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소량이라도 아침밥을 먹은 상태라 내시경을 오늘 할 수 있을지, 아님 내일로 미뤄질지 소화기내과와 이야기해보고 다시 알려줄 테니 우선 금식하고 대기하라고 했다.


 나는 잠을 못 자서 두통에 시달렸고, 소름 돋는 증세 역시 여전했지만 금식 중이라 약을 먹을 수가 없어서 그냥 참아야 했다. 너무 피곤해하는 동생을 집에 보내려고 했는데, 동생이 내일 퇴원이면 짐도 많고 힘들 텐데 혼자 퇴원하기 어려울 거라고 가지않고 버텼다.


 그렇게 대기하다가 병원 이전 이야기가 나왔다. 원래 이 병원에서 나의 증상들에 대한 원인을 또 못 찾으면 전원 하기로 했었다. (지난번 뇌경색도 상세 불명이었고, 현재의 편두통 및 소름 증세도 정신적인 문제라고 할 뿐, 신체적으로는 상세 불명으로 진단되었다.) 지난번 아산병원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았던 나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알아보기로 했다. 괜찮은 뇌경색 전문 의사를 찾아보고, 예약을 하려는데, 그냥 갑자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연락해 '나 그냥 이렇게 살까?' 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의사들도 원인을 모른다는데 이제 그만 매달리고 싶다고. 다음 병원이고 뭐고 이제 입원이든 검사든 모두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 뇌경색의 원인을 모르는 건 어쩔 수 없고, 이미 지나갔으니 시력향상과 정신건강에나 힘쓰며 살고 싶다는 의견을 전했다.


 엄마 역시 정신건강이 우선이라는 의견이었다. 수많은 검사를 했는데도 원인이 없다는데 우리가 너무 그걸 안 믿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멀쩡하면 믿겠는데...증상이 있으니...) 의사 선생님의 말을 믿고, 약물치료를 받은 뒤 경과를 지켜보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나는 뇌질환 환우 커뮤니티에 검색해 비슷한 사례들을 찾아보았다. 다들 현재의 상태가 어떤지를 중요하게 여기지, 나처럼 지나간 일의 원인을 찾으려 애쓰지는 않았다. 뇌졸중은 원래 앞으로의 관리가 더 중요한 질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살아남아놓고도 왜 그토록 원인에 집착했던 걸까. 혹시 백신 때문일까 싶어서 그랬던 걸까. 갑자기 그렇게 아픈 게 너무 억울해서, 그래서 대체 누가 옥순이를 죽였는지 알아내려 애썼던 걸까. 그 억울함 속에 나를 가두고 그 이상을 바라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인 없이 생겨난 병이라고 해도 믿지 못하고 있었던 걸까. 의사가 내 과민함과 예민함이 만들어낸 증상이라는 데도, 이 역시 옥순이의 죽음 탓으로 돌리고 있었던 걸까.

 

 커뮤니티에는 나처럼 발병 한 달 이후에 두통이나 어지럼증, 저림 현상으로 고통받는 환우들이 많았다. 대개 실제로 몸이 나빠진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였다. 한번 크게 아프고 나면, 재발에 대한 두려움, 평생 건강을 관리해야 하는 스트레스, 우울감,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합쳐져 몸을 과민하게 만든다고 한다. 나는 이런 글들을 보고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와 기나긴 통화를 나눈 나는 어쨌든 현재 검사 결과에 이상이 없고, 탈수초증도 아니라는 것에 방점을 찍기로 했다. 그리고 이대목동병원의 외래 진료를 다니는 것 외에 다른 병원을 찾는 노력은 그만하기로 했다. 지긋지긋한 검사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 진짜 내 정신이 문제라면, 끝없는 검사보다 날 쉬게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점심 식사 시간이 찾아오고, 금식이라 먹지 못하는 나 대신 동생이 침대에 앉아 밥을 먹었다.

 동생과 자리를 바꾼 나는 보호자 입장에서 보면 이런 느낌이구나 하면서 동생의 먹방을 지켜보았다.


 점심식사가 끝난 지 얼마 안 되어 이송 기사님이 찾아왔다. 이제 내시경을 하러 가야 한다고 말이다.(오늘 할지 내일 할지 알려준다더니 이렇게 갑자기!) 나는 무슨 중대한 수술을 하러 가는 환자처럼 이송 침대에 누워 실려갔다. 이미 예전에 수면내시경을 해본 적이 있고, 그냥 잠들면 되는 걸 알지만 왠지 모르게 입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보호자가 함께 가야 한다고 해서 동생도 같이 갔는데, 동생은 내가 실려가는 내내 실실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참내)


 곧 동생과도 헤어지고, 혼자 수면 내시경실 안에 남았다. 간호사가 들어와 기포 빼는 약이라며 시럽 같은 것을 주고 꿀꺽 삼키라고 했다.(EW) 그렇게 좀 기다리고 있으니 다시 여러 명이 우르르 들어와 이번에는 목구멍 마취제를 주고 입안에 머금었다가 삼키라고 했다. 아까 먹은 약보다 훨씬 더 맛없었다. 그리고 옆으로 누워 입에 내시경 카메라가 들어갈 수 있게 만드는 마우스피스(?) 같은 걸 물으라고 해서 물었다. 잠깐 머리가 굳어서 그럼 혓바닥은 어디에 놔야 하지 하고 생각했지만, 곧 아래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내 링거 라인을 들어 신경안정제를 넣는 간호사를 봤다. 팔에 뻐근하고도 시원한 느낌이 퍼져오면서 이제 잠들겠구나 했다.

 

 근데 잠이 안 드는 거다!!! 그냥 자고 일어나서 눈 뜨면 회복실일 줄 알았는데, 내시경 호스가 목 안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것까지 너무 생생히 느껴져서 계속 토악질을 해댔다. 간호사 여럿이 날 붙잡고 '그러면 안 돼요 안돼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너무 괴로워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호스를 입으로 깨물고 구토를 하고 난리 부르스를 쳐댔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스를 빼내는 느낌이 났다. 그리고 침대째로 바깥으로 옮겨졌다.


 침대를 옮겨주신 분이 나보고 누워서 대기하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분이 풀리지가 않아서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제정신 아니었음) 누워있으라는데 자꾸 몸을 일으켜서 지나가는 사람마다 다 붙들고 왜 수면 내시경인데 비수면으로 진행되었는지 물어봤다. 날 눕히려 애쓰던 간호사 한 분이 결국 "기억이 안 나셔서 그래요" 라고 답을 해주었는데, 내가 이렇게 검사 내내 한숨도 못잔걸 똑똑히 기억하는데 왜 기억 못 하는 취급을 하는지 너무 억울했다.


 그러다가 이송 기사님이 오셔서 병실로 이동되었다. 이때쯤에는 기억이 또렷하진 않고 그냥 수면내시경을 신청했는데 대체 왜 비수면으로 진행됐는지에 대해 엄청 화가 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송 침대에서 내 병실 침대로 옮겨 누웠다. 동생이랑 무슨 얘길 했던 것 같기도 한데...아무튼 그러고 있다 내가 잠에 들었다는 자각도 없이 까무룩 잠들었다 눈을 떴다.


 눈을 뜨니 동생이 옆에서 히죽히죽 웃으면서 날 쳐다보고 있고 목이 엄청나게 아팠다. 그리고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웃기다며 배를 잡고 웃는 동생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듣고 나니 이제야 상황이 파악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내시경 검사 시간은 5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동생은 내가 들어간 지 40분이 지나서야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비수면으로 진행한 게 아니라 수면으로 진행되었는데 끝날 무렵 잠시 깨어서 고통을 느꼈고, 그 순간이 검사 전체라고 착각한 거다. 잠에 들지 않은 채로 진행됐다고 말이다.  


 그래... 그건 그럴 수 있다 치자. 문제는 이거다. 동생의 말에 따르면 내가 검사 후 지나가면서 만난 모든 사람! Literally 모든 사람에게 수면내시경이 비수면으로 진행되었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그것도 약에 취해 어눌한 말투로, 내시경실 사람들에게도, 날 병실로 옮겨주는 이송 기사님한테도, 링거 줄을 봐주는 간호사에게도, 그리고 그때 때마침 전화한 내 친구에게도, 호출기를 통해 연락 온 간호사에게도!!!


 나는 내시경실 간호사 분께 왜 비수면이냐고 물어본 것 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 외의 다른 사람들과의 기억은 너무 희미했다. 심지어 핸드폰을 보니 친구랑 전화통화를 5분이나 했는데 그건 아예 기억이 안 난다.(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술 취한 사람처럼 똑같은 얘기만 계속하길래, 친구가 걱정이 돼서 동생한테 전화해 내가 아무래도 좀 이상한데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리고 상황을 알고 나서 깔깔 웃었다고.) 또 엄마한테 비수면으로 했다고 우기는 카톡이 수많은 오타와 함께 잔뜩 보내져 있었는데, 이것도 보낸 기억이 없다.  


 동생의 말에 따르면 내가 똑같은 얘기를 400번쯤 반복했다고 했다. 한국사람이라면 입에 달고 산다는 '아니', '진짜'를 남발하면서, 수면 내시경을 비수면으로 했으니 다들 사기꾼이라는 얘기를 말이다. 내 모습을 재연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다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내가 그랬다고?? 수면 내시경 하고 나서 헛소리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듣긴 했는데, 그게 나일 줄은 정말 몰랐다. 그 헛소리를 받은 병원 사람들은 모두 다 그러려니 하며 '어머 잠에 안 들었구나 힘드셨겠다' 하고 받아주셨다고 한다.(기억은 없지만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내가 완전히 정신을 차린 건 오후 6시였다. 카톡 기록을 보니 내시경이 끝난 시간은 2시 반이었다.(오랫동안 정신이 나갔군) 내시경 당시 하도 난리를 쳐서 그런지 입안과 목구멍이 너무 쓰라렸다. 금식을 해서 맛있는 걸 먹고 싶었는데, 내시경에서 무슨 증상이라도 나온 건지 저녁식사로 죽이 나왔다. 일단 죽으로 배를 채운 나는, 병실로 찾아오는 간호사나 의사에게 내시경 결과를 물었지만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나는 저녁 휴식 시간에 전날의 일기를 썼다. 약도 열심히 먹고 일기를 업로드 한 뒤, 쓰린 목이 얼른 낫길 바라며, 그리고 내시경 결과가 좋길 바라며 잠에 들었다. 다음날이면 집에 갈 거라 생각하자 맘이 조금 나아졌다. 동생은 오늘도 코를 골까봐 걱정이 됐는지 자기가 코를 골면 꼭 깨워달라고 했다. 민폐 끼치지않게 진짜 깨워야지. 내일이면 드디어 집에 간다. 재입원 6일째 날은 이렇게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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