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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솜사탕 Apr 23. 2023

뇌경색 1년, 그 후의 이야기

만 28세, 뇌경색 판정받았습니다. - 에필로그 -

이곳에 글을 쓰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흐르지 않을 것 같았던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뇌경색을 판정받은 지도 1년이 지났다.


큰 문제없이 1년을 보낸 것이 감사하기도 하지만,

아직도 눈을 감으면 병원 냄새가 코 끝을 스치는 것 같은데, 그 모든 일이 있고 나서 사계절이 흘렀다는 것이 정말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소회를 담아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2022년 2월 말에 쓰러졌으니, 1년이 된 건 지난 2월이다. 그동안 계속해서 글을 쓰려고 했지만 좀처럼 써지질 않았다.

그래서 1년 하고도 2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글을 쓴다. 그러니 정확히는 '뇌경색 14개월, 그 후의 이야기'다.(따지자면)


그간 어떻게 지냈냐고 물으신다면

그냥 오늘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1년 내내 자꾸 지나간 과거에 살고 있는 나 자신을 오늘로 이끌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1년 365일 생각이 끊이질 않는 INFP 인간의 머릿속은,

잘 지내다가도 아주 조금만 방심하면 금세 2022년 2월로 돌아가버렸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정명석 변호사가 쓰러져 119를 불러달라고 하는 장면을 봤을 때,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출근하던 중 길을 비켜달라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을 때,

회사 복도에 늘 틀어져 있는 아침방송에서 '뇌졸중 예방법'을 소개하고 있을 때 등등,

일상 속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자꾸 과거의 나와 맞닥뜨렸다.

(특히 드라마 우영우 장면을 처음 봤을 때는 아직 심히 불안정한 상태였던 터라 호흡이 어려울 정도로 쇼크를 받았다. 자꾸 이 모든 일에 내가 오버랩되어서. 같이 보고 있던 친구도 나도 굉장히 당황했더라지.)


나는 자꾸 과거의 한 장면 속으로 걸어 들어가 무력하게 서 있는 내 자신의 손을 꽉 쥐고 다시 오늘로 데려오는 일을 반복해 왔다. 물론 데려오는 나 역시 '나'였기에 쉽지 않았지만.


시간이 꽤 지난 요즘은 제법 오늘을 잘 살고 있다. 각기 다른 곳에서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다 그러하듯이 나 역시 그냥 오늘을 산다. (꼭 유튜브 '오느른' 홍보 같군요. 궁금하다면 한 번쯤 보세요ㅎ)


요즘은 남들처럼 운동도 한다. 주 2회 PT를 시작한 지 4개월 정도 되었다. 자꾸 손가락 발가락이 종종 집을 나가고(저리거나 아프다는 뜻이다) 편두통이 도져서 재활 겸 시작했는데, 덕분에 몸도 마음도 굉장히 건강해졌다. (Thanks to 은호쌤) 데드리프트도 65kg쯤 든다. 헬스장에선 아무도 내가 아팠던 사람이라고 생각 안 할걸? 아무튼 지금은 1년 전보다 훨씬 잘 살고 있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조금 더 얘기해 보자면,

작년 5월의 일기에서 드디어 백신이상신고를 넣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결과가 6개월 정도 걸린다 하여 11월까지 열심히 기다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했다.


나를 담당했던 의사 선생님이 갑작스레 병원을 그만두셨는데, 11월에 새로 배정된 선생님을 만나 여쭤보니

인수인계된 내용이 없어 수개월 전의 신고가 실제로 들어갔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으며,

이제는 백신 접종 후 너무 시간이 많이 흘러 다시 신고를 넣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 다 끝난 일인데 신고에 연연하는 날 이해하지 못하셨다. 그걸 뭐 하러 넣냐는 식의 태도로 일관하셔서 그냥 나도 더 이상 관련해서 말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지쳤기도 하고.


안될걸 알면서도 작은 액션이라도 취해보고 싶어 넣었던 신고였는데, 수개월간의 기다림 끝 결과가 이렇다니 너무 허무했다.



그리고 지난 2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백신부작용 피해자들에 대해 연구하시는 분을 만나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겹지인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내 이야기를 블로그 이외의 공간에서 직접 털어놔 본 적이 처음이라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그분이 만났던 다른 피해자들, 백신 때문에 가족을 잃은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주말마다 광화문에 모이고 있다고 한다. 나는 정말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았구나 하는 부끄러움과 함께, 이렇게나 피해자가 많다니 하는 생각에 잠이 쉽게 오지 않았던 날이었다.  




그리고... 일기를 쉬면서

정말 많은 연락들을 받았다.

블로그 댓글, 브런치 이메일, 쪽지 등등.

대부분 이런 내용이었다.


'제가, 혹은 가족이, 지인이 뇌경색으로 아픕니다.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을까요?'


가슴 아픈 사연들을 많이 보았다.

그렇지만 정말 죄송하게도 단 하나의 답변도 드리지 못했다.


아프다는 점, 아니 아팠다는 점을 상기시키기만 해도 멘탈이 흔들리기 때문에

늘 잊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나의 방어기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드릴 말씀이 없다는 거였다.


내가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하나, 운이 좋아서였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았고, 운 좋게 치명적이지 않은 위치에 발병해 빠르게 회복했다.


그런 내가 감히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

그분들이 얼마나 괴로우면 생면부지의 블로거에게까지 연락을 남겼을지 감히 상상도 가지 않는다.

그저 하루빨리 완쾌하시길 바랄 뿐.


그러나 이 얘기만은 꼭 말하고 싶다.

뇌경색 전조증상, 뇌경색 자가진단법이라고 유퀴즈 등 여러 매체에서 많이 다루던데

그걸 보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


왜냐. 나는 그 모든 요인에 해당되지 않았으니까.


TV에서는 60세 이상이거나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술, 담배의 다섯 가지 요인에 노출되어 있다면 뇌졸중 검사를 해보라 말한다. 물론 이 말이 틀린 건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60세 이하여도,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이 없어도, 술담배를 일절 하지 않아도,

누구나 뇌 건강을 잃을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나를 포함해 산증인이 꽤 많다.)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어? 나 좀 이상하네? 싶으면 나이를 떠나서 꼭 병원에 가보시길 바란다.

에이 나 술담배도 안 하는데 뭐~ 나 아직 이십 대인데 뭐~ 이런 안일함은 건강 앞에서는 버리시길 바란다.




어쨌든 '1년 후에 어떻게 살고 있나요?'에 대한 답을

'잘 살고 있습니다!'로 끝내고 싶으니

마지막으로 긍정적인 얘기를 써보겠다.


1년이 지나고 나니 이제야 드는 생각인데,

아프기 전과 후의 내가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의 나는 아주 작은 일에도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남들한테는 무한 수용적인 태도를 내세우면서 나에게만 차별적인 엄격함을 적용시켰다. 예상했던 범위에서 벗어나는 일이 생기면 돌이킬 수 없는 스트레스의 소용돌이로 속수무책 빨려 들어갔다.


그런데 지금은 이전과 달리 물 흐르듯 산다는 생각이 든다. 나쁜 일이 일어나도 눈이 안 보이고 걷지 못하던 때보다는 덜 나쁜 일인 거다. 뭐든지 상대적인 거니까.

이제는 예상을 벗어나 갑작스러운 일이 일어나도 그냥 그러려니 한다.


사실 대부분 '어떻게' 사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갈 텐데, 아프고 나서의 나는 그저 '산다'에 초점을 맞췄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사느냐를 생각하는 건 과분한 일인 거다.

무탈히 사는 것만 생각해도 바쁜 하루에.



최근 '아 나 진짜 괜찮아졌구나'를 가장 크게 느꼈던 건 의외의 순간이었다.


어느 날 퇴근을 하는데, 머릿속에 내내 업무 생각이 났다. 무언가 업무적으로 풀리지 않아서 집에 가는 내내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근데 그 순간 '나 지금 회사 일로 스트레스받는 거야?' 하는 생각과 함께 헛웃음이 났다.


'그러고 보니.... 내가 내 건강에 대해 걱정했던 게 언제지?' 싶어서.


아픈 뒤로는 늘 내가 건강하게 잘 사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살았었는데, 어느 순간 그런 걱정은 잊혀지고 회사 생활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던 거다.

마치 남들처럼!


사는 것에 대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단 것을 깨달은 직후 계속 웃음이 나왔다.

(누가 보면 미친 줄 알겠지. 일로 스트레스받을 때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지난 일기 마지막에 이런 글을 썼었다.


'그때쯤이면, 몸도 마음도 완치되었다며 웃고 있으려나. 모든 증상도 사라지고, 눈도 잘 보이려나. 내 발로 걸을 수 있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범히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해하고 있으려나.'


사실 모든 증상이 싹 사라지고 눈도 이전처럼 잘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을 사는데 크게 불편함은 없다.

복용약 때문에 못 먹는 게 좀 늘었을 뿐..(자몽, 케일 등..)


그리고 내 발로 걸을 수 있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범히 살 수 있는 것에 너무나도 감사하고 있다.

이 정도면 만족한다. 저 때의 나에게 돌아가 소원을 이루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도 이제 살아가는 것 자체에 대한 걱정보다 어떻게 하면 잘 살지에 대해 고민하며 산다. 남들처럼.

아직도 간간히 과거의 내가 괴롭힐 때도 있지만 이젠 금방 오늘로 빠져나와서 내일을 생각한다.

'어떻게' 사느냐를 고민하며 내일을 상상하는 것. 이보다 더 좋은 오늘이 있을까.


뇌경색 1년, 그 후의 이야기는 해피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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