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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잘안 Feb 24. 2022

왜 되지? 44살 첫 스케이팅!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

동계올림픽 영향인지 아이들은 스케이트장에 가고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무근육, 운동신경 제로인 나로써는 남편 없이 그런 곳에 가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몇 번을 미루다 결국 오전 일정이 취소된 어느 날, 아이들은 날 쉬게 놓아두지 않았다.


"엄마한테 놀아달라고 하지 마라! 절대 못탄다~~엄마는 인라인도, 롤러스케이트도 못타는 사람이야~"


나의 경고가 무색하도록 6살 막내 딸은 연신 행복한 표정으로 웃어댔다.

TV 에서만 보던 스케이트를 직접 탄다(?)는 생각에 벌써 마음은 김연아처럼 빙상 위를 날고 있는 표정이었다.


"엄마, 진짜 스케이트 타는 거야? 나 진짜 타는거지?"

 "어쩌냐...너한테 맞는 신발이 없을 수도 있는데..."


내 말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딸은 '빙상 위의 아리따운 소녀'를 꿈꾸며 마냥 웃고 있었다.

실망은 뒷 일이고, 일단 오빠들 노는 모습이나 구경하며 시간 떼우려는 나의 속셈은 현장에서 드러내면 그만이었다.





"6살 아이도 탈 수 있나요?"

"아...신발이 180 사이즈부터 있어요. 신어지면 탈 수 있어요"


"엄마, 나 170 신어, 180 신을 수 있겠다. 신어 신어!"


난데없는 총명함으로 우리의 대화를 알아들은 딸은, 무조건 빙상장으로 달려갔다.

이런 상황에서 거짓말로 속이기엔 엄마로써 못난 짓이었기에, 결국 딸은 난생 처음 스케이트 신발을 신게 되었다.

묵직한 신발을 신고 비틀대면서도 '재미있겠다'를 연발하는 당당함.

이 아이를 어찌해야할지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11살 둘째나 옆집 형아는 이미 빙상장으로 달아나버린지 오래였다.

입구에서 딸의 팔을 잡고 "저리로 밀고 가봐"를 외쳐봤지만, 딸이 그걸 해냈다면 그 자리에서 스카웃될 기적이었다.


44살이 되도록 인라인도 롤러스케이트도 못타는 내가, 거기서 딸을 도와줄 방법은 막막했다.

개인교습도 일주일 전에 예약해야 가능했기에, 아이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나를 졸라댔다.


"엄마가 들어와!!엄마가 밀어주면 되잖아!! 잡아주면 되잖아...."

"내가? 엄마 못탄다고 했잖니....엄마 신발 신어본 적도 없어..."

"안돼.....탈거야...탈거야...."

딸은 너무나 애절한 눈빛으로 내 팔을 잡고 있었다.


이 간절한 눈빛과 김연아를 꿈꿨던 상상을 무참히 짓밝기엔 내 마음은 그리 단단하지 못했다.


"하.......그래...그럼 해보자! 엄마도 신발 빌려오께"

"오예~~~~~"



너무나 무거운 마음으로 스케이트화를 신고, 빙상 위에 첫 발을 딛는 순간...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미끌미끌한 빙상장 위에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할지, 머리부터 발바닥까지 돌덩이가 된 기분이었다.


"엄마가 날 잡아야 돼, 알았지?"

"OO 아...엄마가 서 있지를 못하겠어, 있어봐 잠시만"

"저 엄마들처럼 밀어주라고~~~엄마도 탈 수 있어"


왜 아이들은 엄마가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딸은 빙상 위를 날아다니는 어른들을 보며, 자기 엄마도 분명히 저럴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나의 비틀대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에이 모르겠다. 일단 가보자!'

생애 처음 신어보는 스케이트화에 내 몸을 맡기고, 한 손으로 벽을 짚으며 한 발을 쭉 밀었다.

몸이 온통 경직되어 있었지만, 머리 속은 '김연아'가 되어야 했다.

'간다, 간다! 가자 가자!!!'


딸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난 나가야 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불가능을 가능케 만들어야 했다.

뇌의 모든 부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굳어있던 내 운동신경 하나하나를 자극했다.


달려!!!!





딸과 나는 3시간동안 열심히 빙상장을 달렸다.

달렸다기는 애매하고... 열심히 돌았다.


딸은 너무 신나서 소리쳤다.

"엄마, 우리 너무 잘 타지? 우리도 스케이트 진짜 잘 타지? 맞지?"


현실은 바들거리는 사시나무였지만, 딸의 긍정적 자아상은 우리가 김연아였다.

행복해 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내 발목쯤이야, 내 허리쯤이야 부러져도 좋을 정도였다.


거북이처럼 느린 속도였지만, 너무나 빨리 지나간 3시간을 즐겼다.

내일도 또 오고 싶다는 아이의 흐뭇한 표정을 보며, 나에게는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엄마'에게는 한계가 없음을 느꼈다.


평생 불가능할 것 같았던 달리는 신발(인라인,롤레스케이트,스케이트)의 운동 중 하나를 이뤄냈다.

엄마라는 이름, 그 사랑의 힘으로 44살 첫 스케이팅이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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