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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잘안 Mar 08. 2022

"내 집 앞은 안돼!" 맞는 말인데, 씁쓸한...

아파트 생활의 한 조각

공원형 아파트로 홍보하며 아이들 키우기엔 최상의 조건이라던 아파트였다.


곳곳에 최신식 놀이터와 축구장, 배드민턴장이 설치되었다.

어린 자녀들을 키우는 집이라면 반드시 겪게되는 층간소음의 고통, 실내에 갇혀있던 아이들이 집 가까운 곳에서 안전하게 놀겠다는 환상(?)을 꿈꿨다.


입주 1~2년이 지날 무렵, 단지내 운동장에서 어른들의 몸싸움과 욕설이 오고갔다.

축구를 차는 아이들의 부모와 소음으로 고통을 호소한 주민의 다툼이었다.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 시작된 싸움은 서너시간을 지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전쟁의 서막일 뿐이었다.


단지내 활용도가 떨어지는 곳을 다목적 운동장으로 변경해달라는 요구는 묵살됐고, 안전상의 이유로 (소음 민원의 이유로) 아이들에게는 사용제한이 걸렸다.


항상 비어있는 그 넓은 공간엔 덩그러니 배드민턴 네트만 쳐져있다.

낮 시간 그 곳을 지나는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잠깐 공을 갖고노는 것이 시끄럽다는 민원에서 시작된 싸움은 결국 아이들이 쫓겨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입주 전부터 설계상에 그 곳은 운동시설이 있던 곳이었고,

배드민턴장이라고 하나, 넓은 공터이니 아이들이 뛰어놀 것은 당연했다.


어린 아이들의 자전거를 잡아줄 곳인 줄 알았고, 아빠와 아들이 처음 축구로 유대감을 느껴갈 공간인 줄 알았고, 엄마 손 잡고 인라인을 뒤뚱뒤뚱 배울 곳인줄 알았지만...공원형 아파트엔 그런 곳이 없었다.

그냥 비어있어서 안전하고, 조용해야  맞는 공간들만 있었다.




위험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아야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위험을 예방하는 게 목적이라면 다른 방법들을 고려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소음은 발생하지 않는 게 맞다.

하지만 공동으로 사용하는 마당에서, 개인의 정원같은 고요함과 적막함을 원하는 건 문제가 아닐까?

시간을 정해서, 저녁시간에 사용제한을 두는 것쯤은 당연한 상식일텐데..낮시간도 바깥의 활동 소음이 싫다면, 아파트에선 살 수가 없지 않을까?


비용절감과 목소리 싸움으로 결국 그 곳은 공터처럼 비었고, 아이들은 놀 곳이 사라졌다.


다른 곳으로 찾아가서 놀면 되는걸까?

대부분 비슷한 입장들이었다.


'내 집 앞은 시끄러워서 안돼!'


집 안에서, 집 밖에서도 아이들은 놀 곳을 잃었다.




스트레스가 극대화되어가는 시대이다.

층간소음으로 살인도 벌어지는 강팍한 시대이다.


모든 민원의 내용이 틀린 말은 없다.

맞는 말이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 왠지 마음이 씁쓸했다.


집 안에서 숨죽이고, 집 밖에서 뛸 곳이 사라지니..아이들은 휴대폰을 잡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멀리 자전거를 타고 가서 축구를 찬다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네 멀리까지 가는 거 안 무서워?"

"차들이 좀 무섭기도 한대요..축구 차려면 가야한대요.."


집단 이기주의같은 어른들의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배울까 안타까웠다. 조금만 서로 배려하며, 소음의 고충도 안전의 문제도 아이들의 놀 권리도 함께 조율해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오고가길 바랄 뿐이다.






덧) 안살아봐서 그렇지 라고 생각하실 분들을 위해 말씀드려요^^

저도 아이들 키우느라 초대형 놀이터와 축구장 앞에서 수년간 살아봤습니다. 당시 아무 문제없이 지냈던 경험이 있어서, 최근 상황들을 보니 마음이 씁쓸해 몇 글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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